‘G바겐’이라는 클래스

수많은 물음표에도 결국 명품으로 존재하는, 박스 카의 정석.
ⓒ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 매거진 편집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나의 애마가 무엇인지, 그리고 드림 카가 무엇인지.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차는 마음껏 타볼 수 있는 직업 때문인지, 의외로 열렬히 갖고 싶은 차는 없다.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흥미가 점점 떨어진다. 비교적 탁해진 애정에도 굳이 하나의 차량을 떠올린다면, 메르세데스-벤츠 G 클래스(이하 G바겐)라 답하겠다.

자동차에 조예가 깊은 이라면 의아할 것이다. 운동 성능과 승차감의 아쉬움, 겉만 그럴싸한 G바겐이 왜 누군가의 로망으로 자리 잡은 것인가.


전쟁을 거쳐 무르익은 남성미

전쟁이 끝나고 일상에 안착한 ‘밀리터리’는 멋의 상징이 되었다. 워커, 카고 팬츠, 보머 재킷 등이 대표적이다. 밀리터리는 굵직한 카테고리가 됐고, 세월이 이를 클래식으로 정착시켰다. G바겐도 이 공식을 거쳤다.

G바겐은 1979년 군용으로 탄생했다. G는 독일어로 험지(Gelände)를 뜻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군대에 실제로 투입됐다. 메커니즘은 특별할 것이 없다. 무조건 튼튼하게. 험한 지형을 주파하려면 골격이 단단해야 했고, 섀시(Chassis)의 강성(剛性)을 가장 높일 수 있던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을 채택했다. 지금도 G바겐은 이를 고수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기에, G바겐을 타는 것만으로 강인한 이미지를 얻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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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라는 거칠게 지나온 세월 덕에 나름의 노련함도 지녔다. 이런 옛것을 고집하다 보니 이는 곧 헤리티지가 됐다. 최근에는 소재와 설계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모노코크 방식(일반 승용차 포맷)으로도 충분한 강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무게도 줄일 수 있다. 메르세데스가 제작 비용을 아끼는 방법은 간단하다. 크기가 비슷한 GLE나 GLS의 하체와 파츠를 공유하고, 껍데기와 실내만 밀리터리 뉘앙스가 나도록 꾸미면 된다. 어차피 G바겐을 타고 오프로드로 향하는 탐험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메르세데스는 여전히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을 고수한다. 쉬운 길 대신 시작부터 나침반이 가리킨 길을 따라가는 것이 명품으로 향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성의와 정성은 곧 하이엔드에 닿는다. G바겐을 타고 바위를 올라타는 경우가 많지 않더라도, 본연의 DNA를 지켜야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다. 철학이 가득하니, 소유주는 자신의 차에 대해 실컷 이야기할 수 있다. 현시대에 들어 G바겐이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 액세서리, 거창하게는 지위재가 된 이유다. 그렇다면 G바겐은 상징으로서의 가치만 존재할까.

G바겐 보디 온 프레임 구조의 핵심인 사다리꼴 섀시 ⓒ 메르세데스-벤츠

높은 시점이 주는 우월감

G바겐은 시트 포지션이 마을버스 수준으로 높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욕망하고, 물리적 높이는 사회 시스템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언덕 위 집이 비싸고, 최고층이 펜트하우스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삼각 별을 품고 내려다보는 우월함에 대한 비용이 G바겐 가격에 포함돼 있다.

무게중심이 높은 탓에 주행 감각은 같은 가격대 S클래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다. 하지만 G바겐의 출신 성분을 따지면 비교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 자체가 G바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온라인에서는 승차감을 두고 도저히 탈 수 없는 정도라고 말한다. 실제로 타본 이가 몇이나 될까. 나를 포함한 전문가 사이에서는 승차감이 생각보다 준수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구조를 이해하면 성능이 보인다

가장 인기가 많은 G63 AMG 모델을 예로 주행 성능을 보자. V형 8기통 엔진에 터보차저 두 개를 얹어 괴력을 뿜는다. 급가속을 하면 차 앞머리가 치솟으며 달려 나간다. 오프로드를 염두에 둔 서스펜션 세팅 때문이다. 험지에서 충격을 흡수하려면 서스펜션이 크게 움직여야 하고, 스프링도 부드러워야 한다. 그래서 가속할 때 차체가 뒤로 쏠리며 앞이 들린다. 이론상 앞바퀴 접지력이 약해지는 상황이라 위험해 보이지만,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무섭지 않다. 운전대를 통해 앞바퀴가 노면을 붙잡는 감각이 전해진다. 이래서 G바겐 운전이 재미있다.

고속 안정감에 대한 불만도 없다. 이전 세대는 고속에서 급하게 차로를 바꾸면 차체가 좌우로 크게 출렁였다. 노면의 잔진동이 차체에 오래 남아 있기도 했다. 현행 모델은 이 약점을 보완했다.

코너링 능력이 궁금한 이들을 위해 말하자면, 예상보다 코너에서 바깥으로 밀리는 현상이 심하지 않다. 차체 세팅 덕분이 아니다. 코너에서 차체가 기울면 안쪽 바퀴의 접지력이 빠진다. 보통의 운전자는 이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코너에 진입할 수 없다. 그러려고 만든 차가 아니라는 걸 인지한다면,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운전대를 휘저어도 좋다.

이렇게 운전하려면 브레이크가 뒷받침돼야 한다. 브레이크 페달이 제법 무거워 처음엔 반응이 느린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500마력 이상의 스포츠카처럼 미세하게 컨트롤할 수도 있다. 페달을 깊이 밟을수록 제동력이 강해지도록 세팅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강하게 밟아야 한다. 오프로드 차량도 브레이크 컨트롤이 중요하기에 이렇게 튜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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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

흔히 G바겐은 ‘감성으로 타는 차’라고 말한다. 자동차에서 ‘감성’이라는 단어가 언급된다면, 그 지분의 8할은 배기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배기음과 더불어 G바겐이 지닌 여러 아이템이 특유의 감성을 자극한다.

첫 번째는 와이퍼. 흔히 타는 승용차는 윈드실드가 낮은 경사도로 누워 있고 곡률도 있어 커다란 와이퍼가 시원하게 움직인다. G바겐은 윈드실드의 경사도가 높고 곡률이 없는 탓에 와이퍼 자체도 작다. 작은 소품에 불과할지라도 이런 이색적인 경험이 클래식 카를 타는 듯 착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도 비 오는 날 G바겐 타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G바겐의 원형 헤드램프는 사실 디자인을 위한 게 아니다. 옛날에는 헤드램프를 동그랗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BMW 미니, 폭스바겐 비틀, 포르쉐 911의 ‘눈’이 동그란 이유다. 서클 헤드램프를 가진 현역 모델을 나열하자면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모두 각 브랜드에서 한가락 하던 녀석들이다.

도어가 닫힐 때의 감각과 소리도 유명하다. 메르세데스는 현행 G바겐의 힌지도 이전 세대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기계로서의 힌지 부품이 아닌, 닫히는 감각 그 자체를 그대로 계승하고 싶었던 거다. 외부 패널에 그대로 마운트된 힌지는 극한 상황에서 도어를 빠르게 탈거하기 위한 설계다. 간단한 설계에도 헤리티지를 담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각각의 요소를 설명했지만, 결국 G바겐의 매력은 하나의 아이콘을 갖는 경험이다. 흔히 차가 세워져 있을 때, 즉 ‘하차감’과 연결되는 경험도 마찬가지다. 틀이 정해진 고급 프레임 디자인은 그 자체가 아이콘이다. 세대가 거듭되어도 대체되지 않는 파격적인 비주얼이 G바겐을 꿈꾸게 만드는 힘이다.

ⓒ 메르세데스-벤츠

클래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다

G바겐 하나만으로 이야기할 게 많다. 역사와 철학이 담긴 차는 그 자체로 가치가 높다. 메르세데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끌어올렸다. G바겐에 AMG 배지를 붙인 것이다.

AMG는 메르세데스의 고성능 브랜드다. 원래 레이싱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군용차 태생의 G바겐에 레이싱 브랜드를 붙이다니,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최고급’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정통 오프로더에 고성능 엔진을 얹는 의외의 조합, 이 결과물이 G63 AMG 모델이다. 명품 라인업에 성능까지 끌어올려 소비자들의 소유욕을 자극한 것이다.

나아가 G바겐 전기차 모델인 G580 EQ까지 선보였다. G바겐의 상징인 ‘옆구리 배기구’가 사라졌다. 8기통 엔진 특유의 굵은 배기음도 없다. 클래식에 시대 흐름을 반영한 셈이다. 그러나 G580 EQ 모델은 애매한 장단점이 엇갈리며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전기차의 가장 큰 장점은 유류비 절감이다. 그러나 G바겐 오너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G580 EQ는 분명 주행 성능도 좋고 조용한 데다 유지비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G바겐은 응당 박력 넘치는 배기음으로 도로를 울리며, 이에 대한 일종의 세금으로 주유비를 납입하는 게 무언의 합의다.

비단 G바겐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유류비 절감을 목적으로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과거 내연기관 모델은 가격과 성능이 비례했다. 비싼 차가 실린더 수도 많고, 큰 힘을 발휘해 몸집도 키울 수 있었다. 지금은 전기모터 하나로 8기통 이상의 엔진 힘을 뿜어내는 시대다. 그만큼 소비자들은 더 이상 출력 크기에 따라 돈을 쓰지 않는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는 높은 가격표가 붙지 않는다. ‘전기차는 경제적’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탓에, 과감한 지출이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G바겐 전기차 모델인 G580 EQ 외관 ⓒ 메르세데스-벤츠

결국 G바겐

왜 여전히 G바겐이 인기를 끄느냐 묻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명품이 갖는 헤리티지. 그게 G바겐을 선택하는 이유다. 요즘은 무엇이든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 효율만 따지면 과거의 방식은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비효율을 ‘전통’이라 부르며 가치를 인정한다.

G바겐은 차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사랑받는다. 어쩌면 더 이상 차라고만 부를 수 없는 존재다.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그 꿈속에서 G바겐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만의 가치를 뽐낸다. G바겐은 원래 군인을 가족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늘날 G바겐은 우리를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ㅣ 덴 매거진 2026년 2월호
글 안진욱(<모터트렌드 코리아> 편집장)
에디터 정지환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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