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맴매' 어디로 향하나?...갈등 격화
"매 좀 맞고" 이후 '윤 대통령 신호' 발언까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정말 열심이다. 정치인이 아닌 만큼 매우 투박해 보여도 혁신안을 밀어붙이는 자세만큼은 상당히 전투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 신호' 발언이 나왔다. '윤심' 발언이 나온 건 지난 15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인 위원장은 꽤 힘주어 말했다.
라디오 진행자가 먼저 "대통령과 친한 분들, 특히 지도부나 영남 중진들이 희생해 달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대통령실과 교감 뒤 나온 얘기냐?"라고 물었다. 이에 인 위원장은 아주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다. 먼저 "대통령에게서 직접 연락이 온 건 아니고, 돌아서 온 말씀이 '만남은 오해의 소지가 너무 크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임무를 소신껏 끝까지, 우리 당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했다. 직접 들은 건 아니고 누군가를 통해서 온 대통령의 신호를 읽었다는 의미다.
'윤심' 발언이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진행자가 놓칠 리 없다. 계속해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다.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을 두고는 "(혁신위가) 지적할 건 지적하고, (대통령이) 전혀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윤 대통령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엔 "뵈어야 한다, 아직 희망을 갖고 있다"며 "(혁신위가) 끝날 무렵에 (혁신안을) 요약해 좀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 의견을 거침없이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혁신위 결과물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시다.
'윤심' 발언이 있었던 15일은 혁신위가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압박한 '윤핵관'의 적극적인 반발이 한창일 때였다. 특히 '윤핵관 중의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의 산악회 동원과 교회 간증 내용이 알려진 이후다. 장 의원은 버스 92대에 지지자 4,200명을 동원한 지난 11일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고 했고, 바로 다음 날 부산의 한 교회에선 "우리가 뭐가 두렵고 어렵나, 권력자가 뭐라 해도 제 할 말은 하고 산다"며 혁신위 요구를 강하게 밀어냈다.
이 같은 반발이 잇따르자 인 위원장의 '맴매' 발언이 나온다. 그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우유를 마실래 아니면 매를 좀 맞고 우유를 마실래 이런 입장입니다"라고 재차 압박했다. 윤핵관 핵심인 장제원 의원을 '몸에 좋은 우유를 안 먹는 아이' 정도로 격하했다. 윤 대통령 '신호' 발언은 이 '맴매' 발언 이후 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 국민의힘 지도부와 연일 대립각을 세우는 이준석 전 대표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YTN에 출연해 "만약에 뒤에 큰 힘 없이 이걸 하고 있으면 그냥 공갈인 것이고, 뒤에 만약 힘이 담보돼 있으면 당무 개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인요한 위원장이 말실수를 한 것"이라며 "애초에 정치적 훈련이 안 돼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발언들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공식 입장까지 나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핵심 관계자발로 "그런 것은 없었다" "당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 "혁신위 방향에 공감을 하고 말고도 없고 당무일 뿐이다"라는 말이 보도를 통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인 위원장의 '윤심' 발언은 대통령실로서도 큰 부담인 셈이다.
인 위원장의 '윤심' 발언이 사실이라면 집권 여당의 가장 복잡한 정치 현안에 윤 대통령을 직접 끌어들인 것이다. 혁신위 활동이 윤 대통령 지시 또는 대통령실과의 교감 하에 이뤄진 것처럼 비치거나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혁신위가 만들어진 계기 자체가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의 후폭풍 때문이다. 구청장 후보에 대한 사면과 출마에 '용산의 뜻'이 많이 담겼다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이를 국민의힘이 집권여당으로서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야권 쪽에서는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은 법 위반'이라는 공세를 불러오고 있다. 무엇보다 '윤심'이 사실이라면 혁신위 활동의 명분 자체가 약해질 수 있는 중대 사안일 수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인 위원장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전격적으로 만났다. 둘이 공식 석상에 마주한 건 혁신위원장 임명 후 25일 만이다. 공식적으로 전해진 두 사람의 공통적인 입장은 열심히 해달라는 거였지만 갈등의 불씨가 사라졌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같은 날 인요한 혁신위는 4호 혁신안을 내놨다. '대통령실 인사도 예외 없는 상향식 공천'과 '전략공천 원천 봉쇄'가 핵심이다. '용와대' 출신 인사도 예외가 없다는 걸 강조하려는 거 같다. '윤핵관'과 당 지도부, 중진을 '윤심'까지 앞세워 압박했다면 이번엔 '용와대' 출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일종의 정치적 균형을 맞추려는 듯 보였다. 2016년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중심에 있던 김무성 전 대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혁신위원들과의 비공개 논의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정당 민주주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고, 정당 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천권을 국민한테 돌려드리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한 혁신위원도 YTN과의 통화에서 김무성 전 대표의 영향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전략공천을 모두 배제하면 인재 영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당 안에서 나온다. 큰 선거에서 전략 공천의 원칙적 배제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4호 혁신안은 2호 혁신안(중진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3호 혁신안(청년비례대표 50%)과 마찬가지로 지도부가 직접 의결하는 대신 공천관리위원회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당장 김기현 지도부가 감당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현재까지는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징계 취소를 담은 '1호 혁신안'만이 당에서 받아들인 상태다.
'윤심'과 '맴매' 발언 이후 궁금해졌다. 국민의힘의 김기현 체제가 유지된 상황에서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까? 물론 '대충대충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윤핵관, 국민의힘 지도부, 영남 중진들과 직접 맞서는 인 위원장의 모습이 좀 생경하게 보일 뿐이다. 투사의 모습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절박함은 이해되지만 당 안팎 사정을 고려하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제대로 된 혁신안을 던져 놓고 그걸 국민의힘이 따를지 말지는 결국 당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혁신안이 괜찮은데 당이 거부하면 당이 부담을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고, 반대로 내놓는 혁신안들이 시원치 않으면 국민의힘은 혁신의 기회를 잃게 된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 집권 여당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한편으론 김기현 대표 표현대로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렇게까지 '급발진'하는 건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게 한다. 그게 당심일지, 아니면 민심일지, 대통령실이 부인한 윤심일지는 확인할 수 없다. 확실한 '뒷배'가 있든 없든 인요한 위원장이 정말 열심히 하는 건 분명하다. 또 하나 확실한 건 언제 끝난지도 잘 모르는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보다 주목을 더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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