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통증이 가방 탓?"...의사 6명 '암 증상' 무시해 17세 사망, 무슨 일?

정은지 2024. 10. 7. 22: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국 GP들에 의해 여러번 무시된 암 증상...이후 림프종과 백혈병으로 사망한 소녀의 사연
밝고 활기찼던 10대 소녀가 몇 주동안 계속되는 암 증상에도 불구하고, 그를 진료 본 6명의 의사가 줄줄이 증상을 무시하다 이후 림프종과 백혈병을 진단 받고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사진=영국 일간 더선 보도 캡처]

밝고 활기찼던 10대 소녀가 몇 주동안 계속되는 암 증상에도 불구하고, 그를 진료 본 6명의 의사가 줄줄이 증상을 무시하다 이후 림프종과 백혈병을 진단 받고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이 사연은 영국에서 2020년 비슷한 사례, 즉 의사들이 여러 번 증상을 무시하다 사망에 이른 제스 브래디에 의해 촉발된 '제스 법(Jess's Law)' 추진에 다시금 무게를 싣고 있다. 제스 법은 동일 증상으로 여러 번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에 대해 자동으로 긴급 검토 대상으로 지정하는 법을 말한다.

영국 일간 더선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19년 당시 열 일곱 살이었던 루비 풀러는 몇 주 동안 계속되는 어깨 통증, 피로, 얼굴 부종을 겪었다. 이전에 특별히 아픈데 없어 8년 동안 병원을 가본 적도 없던 루비는 어디 잘못된건가 싶어 3개월 동안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했다.

하지만 루비의 몸을 살핀 의료진은 단지 "몸이 안 좋은 것"이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루비의 어깨 통증은 무거운 학교 가방 탓이라 했고, 눈꺼풀 부종은 알레르기 때문이라며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를 처방해줬다. 혈액 검사도 진행됐지만, 눈에 띄는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루비의 엄마인 엠마 존스는 너무 걱정돼 의사들에게 계속 "암일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엠마의 말을 비웃으며 "열 일곱 살에게는 그럴 일 없다. (암에 걸리기엔) 너무 어리다"고만 대답했다. 이런 무시 반응은 루비를 진료한 의사 6명에게서 7번이나 반복됐다.

엠마는 "점점 더 걱정이 됐다. 루비의 증상을 검색하다가 흉부에 있는 종양이 정맥을 압박해 부종을 일으키는 폐암 사례를 알게됐다. 다시 의사에게 갔다. 하지만 의사가 웃으면서 암일 리 없다했다. 안심이 됐어야 했지만 불안했고, 루비의 증상은 계속 악화됐다"고 털어놨다.

8번째 방문한 의사가 루비의 상태 자세히 진료...검진 결과, 급성 림프모구 T세포 비호지킨 림프종 3기

이후 여덟 번째 방문한 의사로 부터 제대로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의사는 8년 동안 병원에 가본 적 없던 루비가 갑자기 3개월 동안 여덟 번이나 병원을 찾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루비의 상태를 철저히 살폈다. 그 결과 루비의 림프절이 부어있고, 복부에 원인 불명의 멍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루비는 긴밀한 검진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급성 림프모구 T세포 비호지킨 림프종(acute lymphoblastic T-cell non-Hodgkin lymphoma) 3기 진단을 받았다.

이 때가 2019년 7월이었다. 루비의 흉부에는 3.5인치(약 8.9cm) 크기의 종양이 자라있었다. 종양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채 커져 있어 언제든지 호흡을 막을 수 있는 상태였다. 급성 림프모구 T세포 비호지킨 림프종은 림프계의 T세포에서 발생하는 암의 한 유형으로, 림프구라는 백혈구의 한 종류인 T세포에 악성 변화가 생기면서 발생하며, 급성으로 진행되어 빠르게 증상이 나타난다.

루비가 림프종을 진단 받기 전 찍힌 사진을 보면 목에 림프절이 부어 있다. 엠마는 "목이 부어있는 것이 림프종의 주요 증상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을 테고, 설명되지 않는 멍 역시 혈액암의 경고 신호였다. 왜 이런 것들이 이전에 발견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이후 루비는 화학요법과 줄기세포 이식 치료를 받았고 잘 견뎌내는 것 같았다. 예후는 희망적으로 보였고, 루비는 2020년 3월에 퇴원했다. 그러나 6주 후, 종양이 재발했다. 다시 루비는 말기 백혈병을 진단 받았다. 안타깝게도 루비는 3주 후인 2020년 5월, 1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루비를 잃은 그의 부모는 현재 암 증상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진단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엠마는 "루비가 진단받기까지 총 8번의 의사 방문이 필요했다. 증상들은 무시당했고, 과민한 10대 소녀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나 마저도 예민한 엄마처럼 취급됐다. 루비가 더 일찍 진단을 받았다면 살 수 있었을지 우리는 결코 알수 없다"고 말했다. 엠마는 이어 "GP가 부모의 걱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동일한 문제로 3회 이상 병원 방문하면 긴급 검토 대상으로 지정하는 법 촉구 중

평소 환경 보호에 열정적이었던 루비는 '친절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라 (Live Kindly, Live Loudly)'는 좌우명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가족은 루비를 추모하며 이 좌우명을 소아암 및 백혈병 그룹(CCLG)을 지원하는 모금 활동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선단체의 수석 간호사인 자넷 호킨스는 "루비의 사례는 극단적 예시이지만 드문 일도 아니다. 같은 증상으로 5번 이상 GP를 찾아갔다가 결국에야 병을 진단 받은 아이의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루비의 부모는 '제스 법(Jess's Law)'을 법제화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제스 법은 환자가 동일한 문제로 3회 이상 병원을 방문하면 GP가 해당 사례를 긴급 검토 대상으로 지정하도록 요구하는 법이다. 이 법은 항공우주 엔지니어였던 제스 브래디가 27세의 나이로 여러번 암 증상을 무시당한 후 사망한 사건을 기리며 이름 붙여졌다. 제스는 지속적인 복통, 기침, 구토로 고통받았지만 4명의 GP에 의해 6개월 동안 20번이나 증상을 무시당했다. 후에 다른 의사를 방문한 후에야 진행성 선암 진단 받았고, 이후 3주만인 2020년 12월 사망했다.

영국의 GP(General Practitioner) 시스템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핵심적인 의료제도 중 하나로, 대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가정의학과 의사들로 구성돼 있다. 이 GP 시스템은 NHS를 통해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되며, 진찰, 처방, 예방접종 등의 대부분의 1차 의료 서비스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NHS를 통해 GP에 등록돼야 하며, GP에게 진찰을 받은 후 더 전문적인 진료나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만 환자를 전문의에게 의뢰한다. 전문의를 방문하려면 반드시 GP의 의뢰서(referral)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GP는 모든 종류의 증상과 질환을 다루는 일반 의사이기 때문에, 희귀 질환이나 비정형적인 증상을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로 영국 GP는 자신의 진료 중 5년~10년에 한 번 정도 소아암 사례를 본다는 통계도 있다. 이 때문에 아이가 암 증상을 보이더라도 GP는 심각한 암 질병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전문적인 검사나 치료를 위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 점이 영국의 GP 시스템에서 암과 같은 중증 질환에 대한 진단 지연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정은지 기자 (jeje@kormedi.com)

Copyright © 코메디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