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과 통화를 끝내고 나면 이상하게 집 안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다툰 것도 아니고 모진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가슴 한구석이 헛헛해진다.

부모 자식이 멀어지는 데는 거창한 사건이 필요하지 않다. 매일 무심코 주고받는 짧은 말들 속에 진짜 이유가 숨어 있고, 특히 세 마디는 사랑으로 건넨 말인데도 자식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3위 "너 신경 쓰일까 봐 말 안 했다"
몸이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혼자 삼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뒤늦게 알게 된 자식은 오히려 자신이 부모를 챙기지 못한 사람이 됐다는 자책과 서운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식은 안부를 물을 때마다 부모가 또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아픔을 숨기는 게 배려가 아니라, 자식에게 곁을 지킬 기회조차 주지 않는 셈이다.

2위 "누구네 자식은 이렇다더라"
모임에서 들은 다른 집 자식 이야기를 무심코 꺼내는 경우가 있다. 속마음은 그저 오늘따라 내 자식이 더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었지만, 자식에게는 비교와 꾸중으로 들린다.
나름대로 애써 챙기고 있던 자식은 그 한마디에 노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면 부모를 보러 가는 길이 반가운 만남이 아니라 성적표를 검사받으러 가는 걸음이 되어버린다.

1위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
자식이 찾아오겠다고 할 때마다 습관처럼 괜찮으니 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속마음은 너무 보고 싶으면서도 자식이 힘들까 봐 사양하는 말부터 앞세우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말이 반복되면 자식은 그때마다 거절당했다고 느끼고, 결국 찾아가겠다는 말 자체를 꺼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자식에게는 매번 답을 맞혀야 하는 시험지처럼 부담으로 남는다.

자식이 부모를 멀리하게 되는 건 정이 식어서가 아니다. 배려하려고 건넨 말들이 오히려 서로의 마음을 가로막는 벽이 되지 않도록,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