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㉚1993년 1차지명 이상훈 입단과정과 LG 자율야구의 돌풍

『올 시즌 대학 졸업 신인 중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이상훈(고려대 좌완)이 28일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인 2억 원을 받고 LG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정민태(태평양)의 신인 최고 입단액(1억7200만 원)을 2천8백만 원 경신했다.』 <1992년 11월 28일자 동아일보>
1993년의 LG 트윈스를 떠올리자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이 바로 ‘야생마’ 이상훈이다.
서울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뒤 1차지명을 받고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그는 LG의 심장이자 트윈스를 상징하는 인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30번째 주제는 신인 최대어 투수 이상훈이 LG 1차지명을 받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루키 이상훈이 가세하면서 2년째에 접어든 이광환 감독의 마운드 분업화와 자율야구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게 된다.

◆주사위냐 OX냐…1차지명 우선권 추첨방식 놓고 옥신각신
“올해는 진짜 주사위 던지기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합시다.”-OB 베어스.
“아니, 주사위 던지기처럼 간편하고 공평한 방법이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LG 트윈스
“이번엔 ○, × 표를 제작해 무작위로 뽑도록 합시다. 저희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OB 베어스
“그냥 주사위 던지기로 해요.”-LG 트윈스
1992년 11월 4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KBO 사무실에 LG와 OB 구단 관계자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줄지어 들어섰다.
이날 1993년 신인드래프트 서울지역 1차지명이 예정돼 있었다.
KBO와 두 구단 관계자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1차지명 우선권을 가리는 방식 채택을 놓고 또 옥신각신했다. 1년 전 초고교급 투수인 휘문고 임선동을 놓고 1차지명할 때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OB가 이번에 새롭게 제안한 방식은 ‘○× 게임’이었다. 그러니까 ○와 ×가 새겨진 종이 각각 5개씩, 총 10개를 나눠가진 뒤 ‘○표’가 많은 팀에 우선권을 주자는 제안이었다.
사실 ‘주사위 던지기’나 ‘○× 게임’이나 거기서 거기. 운에 맡기는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OB가 필사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고집하고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986년부터 OB 베어스와 LG 트윈스(전신팀 MBC 청룡 포함)는 동전 던지기와 추첨, 주사위 던지기 방식으로 1차지명 우선권을 가려왔다. 그런데 1992년까지 7년 동안 LG가 5승2패로 압도적인 승률(71.4%)을 올리고 있었다.
그마저 OB가 두 차례 이긴 해에 먼저 뽑은 선수들(1986년 박노준, 1989년 이진)은 MBC가 후순위로 선택한 선수들(1986년 김건우, 1989년 김기범)보다 활약이 미미했다.
무엇보다 OB는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 연속 패하면서 당시 아마추어 최대어로 평가받던 김동수(1990년), 송구홍(1991년), 임선동(1992년)을 차례로 놓쳐 땅을 쳤다. 특히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패한 ‘주사위 던지기’ 방식은 자신들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OB는 1992년 1차지명 때에도 새로운 우선권 가리기 방식을 제안하며 LG 측과 옥신각신한 바 있다. 당시 OB는 "KBO가 임의로 정한 숫자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LG의 거부와 KBO 측의 중재로 결국 주사위 던지기를 했고, 끝내 패하면서 임선동을 놓쳤다.
“이번에도 주사위 던지기를 하자”는 LG 측과 “이번엔 OX 게임을 하자”는 OB 측의 주장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면서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시간만 1시간 넘게 흘렀다. 자칫 이날 서울권 1차지명이 유산될 위기에 놓이자 KBO가 다시 중재에 나섰다. 일단 ‘우선권 추첨 방식 결정’을 주사위 던지기를 통해 정하기로 합의한 것. 여기서 LG가 7-6으로 승리하면서 결국 OB가 제안한 ‘OX’ 대신 LG가 내세운 ‘주사위 던지기’ 방식이 채택됐다.

◆‘주사위 던지기’ 훈련까지?…LG 21-16으로 또 승리
“저로서는 그해 처음 주사위 던지기 주자로 나갔어요. 구단 어른들께서 용한 점집에 가서 점괘까지 보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단장님이 던질지, 정영수 선배가 던질지, 아니면 제가 던질지…. 그날 손 없는 사람이 누구냐를 따져 제가 낙점됐다고 들었어요.”
유지홍 전 LG 스카우트의 말이다.
유지홍은 선린상고와 고려대를 나와 1985년 MBC 청룡에 입단한 내야수로 1990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1991년부터 LG 스카우트를 맡아으니 2년차 되던 해였다.
“당시 주사위 던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본무 구단주님께도 보고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강정환 사장님이 저한테 ‘집에서 매일 주사위 던지기 훈련을 해서 승리 확률을 보고하라’고 지시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그해 1차지명은 구단의 운명을 건 일이었습니다. 사실 주사위 던지기에서 졌다고 죄인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도 부담감이 엄청나게 크더라고요.”

현재 이태원에서 요식업을 하며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유지홍은 1992년 11월초의 추억을 더듬어 나갔다. 나이테가 벌써 33바퀴나 돌았지만, 당시 1차지명 상황을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엔 그때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LG와 두산이 1차지명에 사활을 건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해 최대어 투수로 급부상한 고려대 좌완투수 이상훈 때문이었다.
LG는 1986년부터 줄곧 정영수 과장이 추첨 주자로 나서왔는데, 그해 처음으로 유지홍 스카우트가 구단의 운명을 짊어지게 됐다.
OB에서는 김현홍 스카우트가 맞대결 상대로 등장했다.
김현홍과 유지홍은 선린상고 10년 선후배 사이. 하지만 얄궂게도 운명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문자 그대로 ‘주사위를 던져 승패를 건다’는 뜻의 ‘건곤일척(乾坤一擲)’ 현장. KBO와 서울 두 구단의 관계자들은 물론 취재진마저 마른 침을 삼키며 역사적인 주사위 던지기를 지켜봤다.

종이컵에 2개의 주사위를 넣었다. 그리고는 3차례씩 던져 합친 숫자가 높은 구단이 우선권을 갖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주사위 던지기(1차전)에서 OB가 10-8로 이겼다. LG가 3점과 5점, OB가 4점과 6점을 얻은 것. OB 측 관계자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마치 선취점에 성공한 팀처럼, OB는 모처럼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2차전에서 보기 드문 결과가 나왔다. LG가 2점과 3점을 얻어 합계 5점을 기록할 때만 해도 OB 측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LG 관계자들의 얼굴엔 낭패감이 번졌다.
하지만 OB 김현홍 스카우트가 던진 주사위는 둘 모두 1이 나오고 말았다. 36분의 1이라는 확률이 하필 이때 펼쳐졌다. 두 구단 관계자들의 표정은 완전히 상반됐다.
2차전까지 스코어는 LG 13점 vs OB 12점으로 LG의 1점차 역전. 그야말로 진땀 나는 살얼음판 승부였다.
3차전에 돌입했다. LG는 여기서 8점(3+5)을 얻었다. 그런데 OB는 4점(1+3)을 얻는 데 그쳤다.
LG의 21-16 5점차 승리. LG 관계자들은 마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두 팔을 들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OB 관계자들은 마치 죄인이나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LG 트윈스 지명하겠습니다. 서울고 고려대 투수 이상훈!”
LG 구단 관계자들은 서로 얼싸안고 다시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누군가는 KBO의 유선전화기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 흥분된 목소리로 구단 사무실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LG는 이로써 1986년부터 1993년까지 1차지명 우선권 추첨에서 6승2패(승률 75%)의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1990년 이후 4년 연속 승리이자 주사위 던지기에서만 1991년부터 3년 연속 승리였다.

◆고대 4학년 이상훈 14연속타자 K…한국야구사 신기록
『국내 야구사상 초유의 14연속타자 탈삼진 기록이 수립됐다. 고려대의 4학년 좌완 이상훈은 9일 전국 대학야구 봄철대회 4일째 C조 경기에서 성균관대를 맞아 14명의 타자를 내리 삼진아웃시키는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1992년 4월 10일자 스포츠서울>
LG와 OB가 고려대 투수 이상훈을 1차지명하기 위해 지명 방식부터 옥신각신할 정도로 신경전을 펼친 데에는 바로 이 경기가 결정적이었다.
물론 이상훈은 대학 1학년 시절이던 1989년 대만에서 열린 제2회 IBA(국제야구연맹) 회장배 야구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될 정도로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4학년 시절이던 1992년 4월 9일 대학야구 춘계대회 성균관대전에서 무려 14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아냈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복기해보자.
이날 고려대 선발투수는 신일고 출신의 1학년 고 조성민이었다. 초고교급 투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고려대에 진학한 조성민은 그러나 이날 1회와 2회 1점씩을 내주며 다소 흔들렸다.
고려대 타선이 2회초 3점을 뽑아 3-2로 앞선 상황. 여기서 이상훈이 4회부터 구원등판했다.
성균관대 4회말 선두타자 최인선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을 시작으로 8회말 2아웃(7번타자 이재중 삼진)까지 4.2이닝 동안 아웃카운트 14개를 모조리 삼진으로 처리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8회말 2사 후 김종대가 3루수 앞 땅볼을 치면서 ‘연속타자 K’ 퍼레이드는 멈췄다. 하지만 이상훈은 9회에도 등판해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몰아세우며 6-2 승리를 이끌었다.
상대한 18타자 중 17타자를 삼진으로 잡는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만약 김종대마저 삼진으로 잡았다면 18연속타자 탈삼진을 기록할 뻔했다.


종전까지 이 부문 아마야구 최고 기록은 1975년 철도고의 이진우가 오산고를 상대로 작성한 10연속타자 탈삼진이었다. 이상훈이 17년 만에 이를 넘어섰다. 추가로 4타자를 더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14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는 과정에서 던진 공은 총 59구. 타자 1명당 4.2개꼴일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그날 동대문구장에 가서 이상훈 피칭을 보는데 다들 깜짝 놀랐어요. 물론 이날 마지막 경기로 치러져 일몰 시간에 접어들면서 약간 어둑어둑해지는 시점이긴 했어요. 그런 영향도 없지 않아 있긴 했겠죠. 그렇더라도 14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이날 현장에서 이상훈의 역사적인 탈삼진 퍼레이드를 직접 지켜봤던 유지홍 전 스카우트의 회상이다.

◆당시 사상 최고 계약금…LG 이상훈 시대 개막
이상훈은 그해 대한야구협회에 키 180㎝, 몸무게 73㎏으로 등록돼 있었다. 하지만 최고 구속 150㎞ 안팎을 찍는 좌완인데다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사용하면서 언터처블 투수로 진화하던 상황이었다. 대학 4학년 때 21경기에 등판해 95.2이닝을 던져 12승2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했다.
이상훈은 홀어머니 밑에서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 성장했다. 전화기 한 대 없었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을 겪은 이상훈은 1차지명 후 언론 인터뷰에서 “계약금을 받으면 당장 집부터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훈은 LG 측과 입단 협상을 하면서 계약금 3억 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1년 전 임선동이 4억 원을 호가했었기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자 이상훈은 구단 제시액에 군말없이 찍었다. 계약금 1억8800만 원과 당시 신인 최저연봉 1200만 원을 맞춰 정확히 2억 원에 사인했다.
종전 KBO 신인 최고 계약금은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정민태의 1억600만 원. 이상훈은 이를 넘어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 신기록을 썼다.
이로써 KBO 역사에 신인 몸값 2억 원의 시대가 열렸다.


매년 1차지명 선수들은 구단과 몸값 흥정을 하면서 입단 계약이 늦어지곤 했다. 하지만 이상훈은 달랐다. 11월 4일 1차지명을 받은 뒤 LG와 5차례 만나 협상을 벌였는데 불과 24일 만에 입단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입단식을 했다.
언론에서는 이런 이상훈의 시원시원한 결단에 '강속구만큼 빠른 화끈한 일면'이라면서 역대 1차지명 중 최단시일 계약이라고 평가했다.
-입단소감은.
“가장 좋아하는 LG에 입단하게 돼 기쁘다는 말 이외는 할 말이 없다.”
-프로야구 사상 최고 계약금을 기록했는데.
“계약금에 대단히 만족한다. 몸값만큼 열심히 해 구단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
-역대 1차지명 선수 가운데 초고속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솔직히 지난 며칠 동안 계약금 때문에 물의를 빚어 죄송한 마음이다. 서로 원했던 상대라 계약이 쉽게 이루어졌다. 좋은 이미지로 입단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프로에 적응하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점은.
“변화구 개발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프로는 게임수가 많아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체력보강이 절실하다. 빨리 입단한 이유도 프로는 훈련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점도 크게 작용했다.
-내년 시즌 목표는.
”타이틀을 따겠다는 목표보다는 10승 이상을 올려 팀에 공헌하는 선수가 되겠다. 신인왕은 그 다음이다.“

◆역대급 신인의 해…LG도 구단 최초 개막엔트리 신인 4명
1993년은 LG에 입단한 이상훈뿐만 아니라 초특급 선수들이 대거 입단한 해로 기록된다.
1차지명 선수만 놓고 보더라도 빙그레 이글스는 구대성(대전고-한양대), 삼성 라이온즈는 양준혁(대구상고-영남대-상무), KIA 타이거즈는 이종범(광주일고-건국대), 태평양 돌핀스는 김홍집(인천고-단국대)을 선택했다.
LG에 1차지명 우선권을 내준 OB는 거포 추성건(서울고-건국대)을 지명했다. 롯데가 1차지명한 김경환(마산고-경성대)은 프로 무대에서는 부상 여파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마산의 최동원’이라 불리던 국가대표 출신 투수였다.
여기에다 동대문상고 졸업반이던 1990년 OB에 1차지명을 받은 김경원도 중앙대로 진학했다가 중퇴를 한 뒤 1993년 OB에 입단해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2차지명 선수들도 알짜들이 많았다. 쌍방울 성영재와 최태원(1라운드), 삼성 박충식(1라운드)과 김현욱((3라운드), 롯데 마해영(1라운드) 등이 있었다.

LG 역시 2차지명에서 뽑은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1라운드에서 선택한 포수 김정민(북일고-영남대)을 비롯해 4라운드 좌완 강봉수(부산고-중앙대)와 6라운드 외야수 김경하(신일고-고려대)가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1차지명 이상훈을 포함해 신인이 4명이나 개막전 1군 엔트리에 들어간 것은 LG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포수 김정민은 시범경기 7경기에 출장해 상대의 도루 시도 13개 중 11차례나 저지해 도루저지율이 무려 84.6%에 달했다. 1990년 신인왕 김동수와 함께 안방을 책임질 다크호스로 평가됐다.

현 라온고 감독인 강봉수(부산고-중앙대 출신)는 ‘그라운드의 개그맨’으로 통하는 이병훈을 연상시킬 정도로 '괴짜 선수'로 주목 받았다. 자신이 이상훈 못지 않다며 계약금 8500만 원을 주장하다 가장 늦게 계약했는데 정작 받아낸 계약금은 1800만원.
강봉수는 ‘야생마’ 이상훈과 같은 좌완인 데다 덩치는 더 컸다. 하지만 스타일은 극과 극. 당시 신인 강봉수를 처음 본 선배들은 “힘 좋아 보이는 대단한 녀석 하나가 들어왔다”며 불같은 강속구를 기대했지만, 불펜에서 첫 피칭을 하는 그를 보고는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훈은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졌지만 강봉수는 시속 130㎞대에 불과했다.

“야야, 슬슬 던지지 말고 전력으로 한 번 던져 봐.”
선배들은 강봉수가 힘을 빼고 일부러 천천히 몸 풀듯 던지는 줄 알았다.
“선배님, 이게 전력피칭입니다!”
그 순간 주변에 폭소가 터졌고, 일부 선수들은 배꼽을 잡고 굴렀다.
알고 보니 입만 열었다 하면 웃음을 빵빵 터지게 만드는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배짱과 함께 묘한 디셉션 동작과 독특한 투구폼, 모든 공이 포수 무릎 근처에서 노는 제구력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교란하는 장점이 있었다.
이광환 감독은 이 부분에 주목했다. 상대 좌타자를 제거하는 원포인트 릴리프로 구상하고 개막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투수 분업화를 통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김용수 부상 회복, 루키 이상훈 가세…성적과 세대교체 ‘두 마리 토끼 사냥’
1992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전지훈련을 했던 LG는 1993년엔 일본 오키나와에서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다. 이광환 감독 체제에서 한 시즌을 소화한 기존 선수들은 자율야구에 익숙해져 갔고, 새롭게 가세할 전력들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전년도에 갑작스러운 ‘요추 추간판탈출증(허리 디스크)’ 부상으로 이탈해 5승4패, 평균자책점 5.16(61이닝 35자책점)에 그쳤던 에이스 김용수의 몸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점이 가장 반가웠다.
김용수를 마무리로 돌리고, 김태원-정삼흠-이상훈 삼각 편대를 축으로 방위 복무에서 해제되는 좌완 김기범까지 선발 로테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여기에 1992년 2차 1라운드에 지명했던 2년차 투수 차명석은 시범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06(17이닝 2자책점)을 기록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분류됐다.

타선에서도 시범경기부터 ‘검객’ 노찬엽(0.333)과 ‘로보캅’ 송구홍(0.321)이 좋은 타율로 기대를 품게 했다.
전년도 타자 전향 후 최다안타 1위에 오르는 등 잘 나가다 손목 골절로 시즌아웃이 선고된 비운의 스타’ 김건우는 1993년 시범경기 홈런(2개) 부문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희망을 부풀렸다.
1991년 시즌 도중 영입한 재미교포 윤찬도 시범경기에서 쏠쏠한 활약으로 눈길을 모았고, 고졸 3년생 이종열과 2년생 박종호는 공수에서 기량이 급성장해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LG 벤치는 전년도 ‘20-20클럽’을 달성하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3루수 송구홍을 주전 유격수로 돌리고, 젊은 야수들을 두루 기용하면서 내야진의 뎁스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1992시즌 후 스위치히터로 변신한 박종호가 주전 2루수로서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은 큰 소득이었다.

시범경기에서 3승1무3패로 예열을 마친 이광환 감독은 1993년 개막전을 앞두고 “목표는 3위”라며 당찬 출사표를 밝혔다.
4월 10일 개막전 상대는 해태 타이거즈. 시즌 개막에 앞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팀이었다. 전년도에 부상(어깨 건초염)으로 이탈했던 선동열이 완벽하게 회복됐고, 대졸 루키 이종범과 고졸 루키 이대진이 가세한 해태는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어차피 도약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쌍둥이 군단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광주)로 들어갔다.
[엘팬알백] ㉛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