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원 육박한 평양냉면...원가는 4000원인데 왜 이렇게 비쌀까?
날씨가 급격히 따뜻해진 요즘, 생각나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냉면인데요. 최근 유명 평양냉면 가게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리면서 ‘평뽕족’(평양냉면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2일 한국소비자원 가격 정보 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지역의 냉면 1인분 평균 가격은 1만692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평균 가격(9962원)과 비교해 7.3% 인상됐습니다. 2년 전 같은 달과 비교하면 무려 18.8%가 오른 모습입니다.
통상 냉면 가격 인상은 여름 성수기를 맞기 전 곳곳에서 이뤄져 왔습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본점을 둔 을밀대는 올해 초 2년 만에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가격을 각각 기존의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2000원씩 높였죠.
올해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서울 충무로 필동면옥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냉면 가격을 1000원 인상했습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본점을 둔 봉피양은 지난달 평양냉면과 비빔냉면의 가격을 기존 1만5000원에서 1만6000원으로 6.7% 올렸습니다. 지난해 초 가격을 1000원 올린 데 이어 2년 연속 인상인데요. 메밀 100%인 순면으로 변경하면 2000원이 추가되고, 만두 3개를 추가한다면 가격은 2만4000원에 달합니다.
70년 전통으로 유명한 우래옥은 올해 가격 조정이 없었지만, 기존에도 냉면을 1만6000원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우래옥까지 포함하면 서울 상당수의 유명 냉면집은 냉면 한 그릇을 1만5000원 이상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물가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평양냉면은 유독 비싼 가격을 자랑합니다. 화려한 고명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가격은 왜 매년 오름세를 보이는 걸까요?
업주들 “평양냉면 가격 인상 어쩔 수 없어”
원가는 4000원 안팎
평양냉면을 파는 업주들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메밀 가격을 비롯한 식자재값과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비가 크게 올랐다는 건데요.
먼저 식자재값을 살펴보면 메밀값 인상이 큰 영향을 줬습니다. 평양냉면 원재료 중에서 중요한 건 면과 육수인데요. 냉면 면에 사용되는 메밀 가격은 생산량 감소로 쉼 없이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내산 메밀만을 사용하는 평양냉면 가게는 드뭅니다. 국산 메밀이 비싼 탓에 미국산, 중국산 등 수입 메밀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외국산 메밀도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중국과 함께 세계 5대 메밀 생산국이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수입 메밀 도매가는 ㎏당 평균 4704원을 기록했습니다. 2년 전과 비교해 12.3% 오른 건데요.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메밀 도매가격 통계를 집계한 2004년 이후 최고치이기도 합니다.
평양냉면의 꽃은 육수입니다. 육수의 핵심은 고기에서 비롯되는 육향인데, 이 육향을 긴 유통 과정을 거치는 수입산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유명 평양냉면집들은 한우로 육수를 내는데, 한우는 식자재 원가의 70~80%를 차지합니다.
한우를 썼을 때 육수 원가는 대략 3000원 정도라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인데요. 메밀면이 800원, 반찬은 200원 정도인 것을 고려했을 때 평양냉면의 원가는 4000원 안팎으로 추산되죠. 여기에 임대료나 전기·가스비, 인건비 같은 고정비가 추가되기에 지금 가격이 결코 과한 것은 아니라는 게 관계자들의 항변입니다.
서민 울리는 ‘누들플레이션’
유명 노포 따라 가격도 상향평준화
사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평양냉면 뿐만이 아닙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장면, 칼국수 등 면 요리 대부분의 가격이 올랐는데요. 이에 ‘누들플레이션’(누들+인플레이션의 합성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그러나 평양냉면은 다른 면 음식에 비해서도 유독 비싼 가격을 자랑합니다. 업계에서는 평양냉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육수만 하더라도 고기 선별, 핏물 제거, 육수 제조, 수육 분리, 간 맞추기 등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겁니다. 면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대부분 평양냉면 가게에서는 제분·반죽·숙성·제면 등을 거쳐 직접 면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메밀 100%인 순면은 반죽하기도 힘들고 손실도 커 가격이 높은 편입니다.
여기에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노포들의 가격 인상 행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 역사로 평뽕족을 대거 양성한 우래옥을 필두로 평양면옥, 필동면옥, 부원면옥, 을밀대 등 유명 노포들의 냉면 가격이 기준이 된 건데요.
신생 점포들도 상향평준화 된 이들 가격을 쫓아가는 경향이 있고, 아직 가격을 인상하지 않은 업체가 있더라도 유명 업체에서 가격을 인상하면 함께 가격을 올려받을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유명 노포가 평양냉면 가격을 올리면 덩달아 가격을 올리는 후발 주자들이 있다는 거죠.
평양냉면 가격은 매년 오름 추세를 보이면서 대표적 여름철 보양식인 삼계탕 값과의 격차도 줄어들었습니다. 일부 업체에서는 평양냉면이 삼계탕보다 비싼 경우도 목격되죠.
평뽕족이라면 끝없이 오르는 평양냉면 가격에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 같다”고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평양냉면, 앞으로도 가격 오를 듯…
외식 물가 전방위적 상승세
평양냉면 가격 상승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고 있어 악재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고, 물가 상승으로 부담이 더욱 커졌기 때문입니다.
최근 빵, 과자,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에 이어 햄버거, 치킨 등 외식 가격도 잇따라 인상되고 있습니다. 외식·가공식품 등 먹거리는 지난해부터 공공요금과 함께 전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왔습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월 기준 외식물가지수는 115.45로 지난해 동월보다 7.5% 올랐습니다. 지난해 외식 물가 상승률은 가파르게 오르며 9월에는 9.0%까지 치솟았고, 1992년 7월(9.0%) 이후 30년 2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이 같은 흐름이 물가 둔화 흐름에 대한 기대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됐습니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는 올해 2월 일부 메뉴 가격을 각각 5.4%, 5.1%씩 인상했습니다. 버거킹은 지난달부터 일부 가격 제품을 평균 2% 올렸죠. 또 하이트진로는 음식점과 술집 등에서 판매되는 수입주류 출고가를 평균 15.9% 올렸고, 하이네켄코리아도 업장용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9.5% 인상했습니다.
롯데제과와 빙그레, 해태아이스크림 등도 아이스크림 가격을 올렸으며, 제주삼다수 등 생수 가격도 높였습니다. 특히 올해 2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10.4%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월(11.1%)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품목별로 봤을 땐 치즈 34.9%, 식용유 28.9%, 밀가루 22.3%, 빵 17.7%, 커피 15.6%, 스낵 과자 14.2%, 아이스크림 13.6%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는 식품기업들에 원가를 절감해 가격 인상 요인을 자체 흡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의 부담으로 가격 인상이 추가 단행될 가능성은 여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