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골목길에서 차량끼리 마주쳤을 때 누가 먼저 비켜줘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주택가 이면도로가 많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길 양보 다툼’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경찰청이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더 이상 기싸움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도로교통법에 명시된 명확한 기준 존재
많은 운전자들이 모르고 있지만, 도로교통법 제21조와 제23조에는 좁은 도로에서의 양보 규칙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경찰청 교통국 관계자는 “일방통행로가 아닌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좁은 길에서 차량이 마주쳤을 때는 명확한 우선순위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탈길에서 마주쳤다면 오르막길 차량이 우선권을 갖는다. 내리막길 차량이 후진하여 양보해야 한다. 둘째, 평지에서 마주쳤을 경우 더 넓은 공간으로 비켜설 수 있는 쪽이 양보한다. 셋째, 한쪽에만 장애물이나 주차 차량이 있다면 장애물이 있는 쪽이 양보해야 한다.
2025년 9월부터 단속 강화,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더욱 주목할 점은 지난 9월부터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이 규정에 대한 단속이 크게 강화됐다는 것이다. 서울시 도봉구와 관악구에서는 시범적으로 좁은 골목길 25곳에 CCTV를 설치하고, 양보 의무를 위반한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과태료는 승용차 기준 4만원, 승합차 및 화물차는 5만원이 부과된다. 특히 양보 거부로 인해 5분 이상 교통 정체가 발생하거나, 상대 운전자와 언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과태료가 2배로 가중된다. 시범 운영 3개월간 도봉구에서만 총 127건의 단속 사례가 적발됐으며, 이 중 42건은 가중 과태료가 부과됐다.
블랙박스 영상으로 신고 가능, 적극적 시민 참여 유도
경찰청은 이와 함께 ‘안전신문고’ 앱을 통한 신고 제도도 활성화하고 있다. 운전자들은 골목길에서 양보 의무를 위반한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촬영해 신고할 수 있으며,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영상을 검토한 후 과태료를 부과한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김모(42)씨는 “우리 동네 골목길은 너비가 3미터도 안 되는데, 양쪽에서 차가 동시에 들어오면 매번 실랑이가 벌어졌다”며 “이제는 명확한 기준이 있으니 서로 양보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법규 인식 개선이 교통 문화 향상의 핵심”
교통안전공단 김재현 박사는 “좁은 골목길에서의 양보 문화는 단순히 교통 소통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시민의식의 문제”라며 “법규를 명확히 인지하고 지키는 것이 성숙한 교통 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5년 교통문화 인식 조사’에 따르면, 골목길 양보 규칙을 정확히 알고 있는 운전자는 전체의 3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규칙을 인지한 후 실천율은 82%로 높게 나타나, 홍보와 교육이 중요함을 보여줬다.
지방자치단체별 추가 조치도 잇따라
부산시는 12월부터 해운대구와 남구 주요 골목길 40곳에 ‘양보 우선권 표지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표지판에는 오르막 방향 표시와 함께 “오르막 차량 우선”이라는 문구가 명시된다. 대구시도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며, 내년 상반기 중 전 구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경기도 수원시는 한발 더 나아가 ‘스마트 양보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골목 입구에 센서를 설치해 차량이 진입하면 반대편에 LED 신호를 띄워 대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시범 구간인 팔달구 행궁동 일대에서는 교통 정체가 67%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양보 문화 정착으로 사고율도 급감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양보 규칙 단속이 시행된 지역에서 골목길 접촉사고가 평균 4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서울 도봉구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접촉사고가 53% 줄어들어 가장 큰 효과를 보였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좁은 골목길에서의 접촉사고는 대부분 경미한 수준이지만, 보험 처리와 합의 과정에서 당사자 간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명확한 규칙이 정착되면서 이런 분쟁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운전면허 학과시험에도 관련 문항 추가
경찰청은 2026년부터 운전면허 학과시험에 골목길 양보 규칙 관련 문항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시험 문제 은행에 5개 문항이 신규 등록됐으며, 면허 갱신 시 의무 교육 과정에도 포함될 예정이다.
운전면허시험장 관계자는 “기존에는 주로 대로나 고속도로 상황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생활 밀접형 교통 규칙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특히 주택가 이면도로에서의 안전 운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 의식 변화가 가장 큰 성과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시민들의 의식 개선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8%가 “골목길에서 양보 규칙을 인지한 후 운전 습관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또한 “상대 운전자와의 갈등이 줄었다”는 응답도 71%에 달했다.
인천시 연수구에 거주하는 이모(35)씨는 “예전에는 골목길에서 차가 마주치면 서로 눈치 보고 기다리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규칙대로 움직이니 훨씬 편하다”며 “다만 아직 모르는 운전자들도 많아서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히 교통 소통 개선을 넘어 상호 존중의 교통 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서의 양보는 법적 의무인 동시에,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작은 실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운전자들은 골목길에서 차량과 마주쳤을 때 더 이상 기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도로교통법에 명시된 명확한 기준을 따르면 되며,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라는 제재도 따른다. 법규 준수와 배려의 문화가 하나로 만나 대한민국의 교통 문화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