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이 결국 감독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 들며 시즌 초반부터 이어지던 불안한 흐름에 급제동을 걸었다. 컵대회 우승으로 올 시즌 가장 주목받던 팀 중 하나였지만 정규리그에서 단 1승 8패라는 부진에 빠지며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팀을 이끌던 김호철 감독은 끝없는 연패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2021년 말 팀 내홍을 수습하기 위해 부임했던 그가 약 4년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IBK기업은행의 ‘김호철 시대’는 조용한 막을 내리게 됐다. 김 감독의 사퇴 발표와 동시에 팀은 여오현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 역할을 맡기며 당장의 혼란을 수습하고 후임 감독 선임을 위한 시간을 벌게 됐다.

IBK기업은행의 추락은 단순한 성적 부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개막 전 컵대회 우승으로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대감이 최고조로 올랐으나, 정규리그 첫 경기부터 경기력은 급격히 흔들렸다. 시즌 시작과 동시에 주축 레프트 이소영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고, 외국인 선수의 기복, 세터 운영의 난조, 리시브 라인의 불안, 선수 구성의 무게 중심 이동까지 모든 요인이 동시에 무너지며 경기력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팀의 밸런스가 한순간에 무너진 데다 흐름을 바꾸려는 선택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상대 팀과의 격차는 경기마다 점점 벌어졌다. 특히 리그 중반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연속된 셧아웃 패배는 선수단의 정신력까지 흔들어 놓았다.
김호철 감독은 경기마다 솔직한 진단을 내놓았다. 공격에 힘을 싣자니 리시브가 흔들리고, 리시브를 보완하면 공격이 무너지며, 어느 한 포지션만의 문제가 아니라 팀 전체의 구조적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그가 도로공사전 패배 후 구단에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지금의 흐름을 끊기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은, 더는 기존 방식으로는 팀을 살려내기 어렵다는 지도자로서의 자각이었다. 그의 사퇴는 단순한 책임 회피가 아니라, 팀을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읽힌다. 아직 시즌 초반인 만큼, 변화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 시간이 있다고 판단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퇴를 감독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컵대회 우승 직후 같은 선수단이 정규리그에서 최하위로 내려앉았다는 사실은 팀 전체의 시스템, 선수 구성, 훈련 방식, 경기력 관리, 멘털케어까지 전방위로 되짚어야 한다는 의미다. 7연패는 단순한 경기력 부진이 아니라 선수들의 자신감 붕괴, 조직력 와해, 경기 후반 집중력 상실까지 겹친 결과다. 외국인 선수의 기복, 국내 공격수들의 기량 편차, 수비 라인의 흔들림 등 선수단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김호철 감독이 떠나더라도, 코트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주체는 선수들이다. 감독 교체가 분위기 전환의 계기가 되려면 선수단 스스로 주도적인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구단은 발표에서 “후임 감독 선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잦은 감독 교체와 팀 운영의 혼란 속에서 뼈저리게 느낀 현실이기도 하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몇 해 동안 감독 이슈로 지나치게 흔들려 왔다. 내홍 사태, 코치진 이탈, 시즌 중 지도자 교체, 그리고 김호철 감독 체제의 실패까지 겹치며 팀 정체성 자체가 흔들린 상태다. 이제 구단이 선택해야 할 감독은 단순히 이력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장기적인 구단 철학을 세우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한다. 국내 선수 육성, 외국인 선수 활용, 장기 로스터 플랜, 팀 컬처의 재정비 등 전반에 걸쳐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지금 IBK가 마주한 현실은 냉정하다. 시즌 초 우승 후보라는 기대를 받던 팀이 불과 몇 주 만에 최하위로 추락했고, 감독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 상황이 곧 ‘끝’은 아니다. 오히려 팀이 스스로를 다시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감독이 누구든,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오든,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또다시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IBK기업은행이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어떤 팀이 되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지금 이 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