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가게서 “누가 초상집에 놀러오겠나. 지원책 절실”…무너진 이태원 상권에 호소
“아직도 귓가에 비명소리 들려” 트라우마 호소도
오세훈 “생계 위협 상황 파악”…저리융자 등 지원 논의 중
“아직도 귓가에 희생자들 비명 소리와 울음소리가 맴돌아요. 월세도 비싸고 매출은 안 나와 지금 빚투성이인데 어찌할지 몰라서 그냥 앉아만 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8시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골목의 가게 하나가 환한 조명을 밝히고 있었다. 출입통제선이 해제된 후에도 골목 쪽에 위치한 편의점 등은 여전히 문을 열지 않았지만, 옷가게를 운영하는 남인석(80)씨는 이날도 나와 조명을 켰다.
남씨는 “허망하게 떠난 젊은이들한테 미안해서 장사는 못하고 있다”며 “가게를 닫고 싶어도 그냥 있으면 그날 젊은 애들의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계속 떠올라 여기에 나와 새벽까지 불만 켜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일 “애들 밥 한 끼 먹여야 한다”며 경찰들의 제지를 무릅쓰고 현장에 제사상을 차린 바 있다.
참사 후 3주가 흐른 이날까지도 남씨는 여전히 선잠밖에 들지 못한다고 전했다. 1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골목이 낯설게 다가온 적은 없다고 한다.
매달 임차료로 500만원 이상을 내고 있다는 그는 “보통 찾아오는 고객이 젊은 층인데, 그 친구들이 지금 어떻게 이곳에 와 가격을 물어보고 물건을 고르겠나”며 “나는 또 어떻게 그들에게 물건을 팔고 내 몫을 챙기겠나”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는 몇몇 음식점을 제외하고 다수의 상점이 영업을 재개해 환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소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가게마다 텅 빈 테이블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국가 애도기간이 끝난 직후 찾는 이들이 많아져 북적이는 모습을 보였으나 추모객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손에 국화를 들고 거리를 지날 뿐, 선뜻 가게로 들어가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참사 전과 비교해 매출이 80~90%가량 줄었다”며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지도 못하고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애도기간 당시 아예 영업을 못했을 때보다 매출이 10% 정도는 회복됐지만, 여전히 어렵다”며 “지금도 원래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인데, 방문 고객이 거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직원들 월급이며 재료값이며 나가는 돈이 만만찮은데, 배달 주문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에서 고생하는 경찰 등에게 무료로 음료를 제공해 화제가 된 프랜차이즈 빵집도 매출 회복은 여전히 더딘 상태라고 전했다.
정부에 빠른 진상 규명과 더불어 지원책을 촉구하는 이도 있었다.
참사 현장 골목에 위치한 건물에서 기념품 매장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누가 남의 초상집에 웃고 떠들고 쇼핑하러 오겠느냐”며 “하루 빨리 예전의 이태원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인데, 정치인들은 싸우고만 있고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씨는 “참사를 몸소 겪은 상인들에게도 지원책이 필요한 실정”이라며 “상권이 다시 코로나19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면 손 쓸 수 없이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상인들의 우려에 참사 후 서울시는 용산구가 집계 중인 현황을 토대로 소상공인 지원 방안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이날 시에 따르면 용산구가 추진하는 저리융자 관련 기금 지원 등을 검토 중이다.
앞서 지난 17일 오세훈 서울시장도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이태원 상권 회복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오 시장은 “이번 주 들어 이태원 상인분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정도라는 상황 판단이 있었고, 전화와 대면 등으로 해당 부서에서 접촉을 시작했다”며 “영업 재개도 죄책감 때문에 수월하지 않고, 문을 열어도 영업이 안 된다고 한다. 심리적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용보증재단을 통한 지원(특별 보증) 등의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아직 수습단계라 언제 상권 회복 운동에 나서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지만, 그 전에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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