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장르의 유행이 길어지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모델들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장르로 ‘스크램블러’를 꼽을 수 있다. 이 스크램블러는 네이키드 모델을 기반으로 오프로드까지도 달릴 수 있게 약간의 변형을 가한 형태로, 과거 카페레이서가 유행하던 1960년대 영국에서 온로드 경주에만 만족하지 못한 라이더들이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고 누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지를 겨루는 데서 생겨난 모델이다. 이를 위해 스포크휠이나 업스타일 머플러, 오프로더 스타일의 펜더 등을 채용하는 식으로 기존 온로드 모델과 차별화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들은 디자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어서 실제 이러한 스크램블러를 타고 임도와 같은 가벼운 오프로드를 즐기는 마니아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스크램블러를 원한다면 개인이 직접 제작하거나, 아니면 완성된 제품을 구입하는 두 가지 방법 중 선택할 수 있는데, 개인이 제작하는 것이라면 커스텀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시간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완성도를 보장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브랜드에서 내놓은 제품을 구입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동안은 유럽 브랜드들에서만 스크램블러를 선보여 제품 가격이 상당해 이 또한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고민에 빠져있던 소비자들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는데, 바로 혼다에서 스크램블러 스타일의 CL500을 출시한 것. 혼다가 이 고전 스타일의 모델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을지 시승차를 받아 직접 살펴보았다.

이번 CL500이 혼다의 첫 번째 스크램블러는 아니다. 이미 스크램블러의 문화가 유행하던 1960~1970년대에 CL이라는 이름으로 스크램블러 스타일의 제품을 만들었지만, 1976년 CL360을 끝으로 한동안 CL의 이름을 라인업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CL500의 제품개발을 담당한 프로젝트 리더 히로시 후루세는 “우리는 CL500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모델이자 개성 표현의 한 형태로 개발했다. 젊은 세대가 일상에서 부담 없이 사용하고 즐길 수 있으며,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즐겁고 필수적인 요소가 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외관은 보편적인 스크램블러의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우선 클래식한 스타일의 원형 헤드라이트와 계기판, 사이드미러, 날렵하게 다듬어낸 연료탱크, 높게 장착한 머플러와 너클가드, 앞바퀴를 길게 덮은 펜더 등 필요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다만 실제 사용 비중은 오프로드보단 온로드가 훨씬 많은 만큼 휠은 캐스트휠로, 타이어도 비포장길 정도에나 적합한 온로드 비중이 높은 타이어를 장착해 실용성을 강조했다. 시트는 앞뒤가 일자로 연결된 방식인데, 개인적으로는 키가 좀 큰 편이라 포지션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시트고가 820mm로 제법 높아 키가 작은 사람이라면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차량 무게가 195kg으로 가벼워 그렇게까지 다루기 어렵진 않을 것이다.



헤드라이트나 계기판 모두 디자인만 클래식일뿐, 탑재된 건 현대식이다. 헤드라이트는 LED 방식에 주간주행등이 더해졌으며, 계기판은 흑백 LCD로 주행에 필요한 정보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크기를 달리해 표시한다. 그리고 보통 계기판 아래로 키박스가 보여야 하는데, CL500은 좌측면 연료탱크 아래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선 시동을 켜고 끄는 것만 가능하고, 핸들을 잠그려면 핸들을 좌측으로 틀면 앞 포크 우측면에서 잠금용 키박스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핸들락을 분리한 방식은 일부 아메리칸이나 꽤 오래된 모델에서나 볼 수 있던 것이어서 추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CL500은 레블500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엔진과 차대인데, 혼다의 최근 생산방식인 원소스 멀티유즈 방식이 적용된 것이다. 엔진의 경우 레블 500과 같지만 세팅을 차량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둔 것으로, 471cc 수랭 2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46.6ps/8.500rpm, 최대토크 4.4kg·m/6,250rpm의 성능을 낸다. 혼다의 500cc급 모델들의 특징은 전천후 성능에 경제성까지 갖췄다는 것으로, 시내는 물론이고 교외에서 중장거리를 소화하는데도 문제없고 와인딩을 즐기기에도 충분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이번 시승에서 이를 확인했는데, 왕복 200km 이상의 코스에서 이 세 특성을 모두 경험해보니 배기량이나 성능에 욕심을 조금 덜어내면 충분히 즐겁게, 편하게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얻게 되는 건 가공할만한 연비다. CL500의 공인 연비는 43km/L(60km/h 정속 주행시)로, 탑재된 연료탱크가 12L로 그리 큰 사이즈는 아니지만 1회 주유로 최대 500km 넘게 달릴 수 있을 정도여서 장거리 주행도 문제없다.

직선에서는 규정속도 이상의 속력을 내기에도 문제없고, 오르막 와인딩에서도 변속만 적절히 해주면 스포티한 주행을 즐길 만한 속력을 내기에도 충분한 실력이다. 여기에 혼다 특유의 차체 밸런스 덕분에 차량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쉽다. 너무 예민하거나 너무 둔하지 않은, 정확하게 중간 정도에 위치한 밸런스는 예상대로 움직여주기 때문에 코너에서 라인을 머릿속으로 그리면 정확하게 그 라인을 따라갈 수 있다. 서스펜션도 운동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안정성과 충격 흡수에 초점을 맞춘 앞 정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뒤 듀얼 쇼크 업소버 구성인데도 이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휠은 앞 19인치, 뒤 17인치 구성으로 본격적인 오프로드보다는 가벼운 임도 수준에 적합한 구성이지만, 타이어를 보다 오프로드 비중이 높은 것으로 선택한다면 온로드 승차감은 약간 떨어지겠으나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며 본격적인 임도 주행을 즐기기에도 충분하겠다. 여기에 성능까지 높으면 더 좋겠지만, 오프로드를 맹렬하게 질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랠리’나 바위를 타 넘거나 하는 ‘하드 엔듀로’라고 하는 본격적인 오프로드가 아닌 한에야 성능은 ‘거기서 거기’ 정도의 조건일 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면 슈퍼커브나 CT125 같은 모델들이 경제적인 면에선 더 좋겠지만, 오프로드까지의 이동도 함께 고려한다면 CL500 정도의 수준이 반가울 것이다. 여기서 좀 더 오프로드 쪽의 비중을 높인다면 CRF300L 같은 모델을, 온로드에서 중장거리 이동의 비중을 높인다면 CRF1100L 아프리카 트윈 같은 모델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최종적으론 125cc 온로드에서 고배기량 오프로드로 입문하는 지점에선 어드벤처 스타일을 원하면 CB500X를, 네이키드 스타일을 원하면 CL500을 선택하면 된다.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디스크에 앞 2피스톤 캘리퍼, 뒤 1피스톤 캘리퍼 구성으로, 차체가 그리 무겁지 않아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곳에 멈춰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제동력을 보여주고, 여기에 2채널 ABS로 안정성을 더했다. 또한 급제동 시 안전을 위해 후방 차량에 경고를 보내는 긴급 제동 신호(ESS) 기능도 갖췄다. 어시스트/슬리퍼 클러치는 시내나 교외 모두에서 빛을 발하는 기능으로, 시내에서는 클러치 레버의 조작을 가볍게 하기 때문에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손의 피로를 줄여주고, 교외에서는 하단 변속 시 백 토크를 줄여 뒷바퀴가 튀는 현상을 억제하기 때문에 코너 진입 전 차체가 안정된 상태로 적극적인 엔진 브레이크 활용이 가능하고, 코너를 빠져나올 때는 보다 빠른 탈출 가속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없어도 괜찮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엔진 회전수가 높을 때 하단 변속을 하고 클러치를 바로 연결해 뒷바퀴 쪽이 불안해지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어시스트/슬리퍼 클러치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가격적인 면은 CL500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CL500의 가격은 920만 원(부가세 및 개별소비세 인하분 포함, 7월 1일부로 932만 원)으로, 형제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CB500 시리즈나 레블 500과 마찬가지로 가격 부담이 낮아 고배기량 입문을 꿈꾸는, 합리적 가격의 미들급을 원하는 라이더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만한 가격이 매겨졌다. 물론 경쟁 제품이 있는 다른 브랜드에서는 이런 CL500의 등장이 부담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스크램블러 시장의 입문 기종으로서의 역할을 CL500이 충분히 해낼 수도 있는 만큼 시장의 크기를 더욱 넓혀주는 역할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독특한 매력의 스크램블러인 만큼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려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