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가주 레이싱 특집③] ‘발상의 전환’으로 가득한 GR 팩토리

21세기 들어 토요타는 간판 스포츠카를 줄줄이 단종시켰다. 그러나 도요다 아키오의 지휘 아래 스포츠카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GR야리스가 대표적이다. 레이스카를 개발해 양산형으로 전환시킨 사례다. 공장도 아주 특별하다. 소위 셀 방식 생산이다. 대량생산방식을 고도화해 업계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한 토요타가 정반대 방식을 도입한 배경을 살펴본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토요타자동차

21세기 초 위기로 얼룩진 토요타

토요타 모토마치 공장 건설 당시 (1959년)

‘생산의 달인’ 토요타에 컨베이어 벨트 없는 공장이 있다. 일본 아이치현 토요타시에 자리한 ‘모토마치(元町)’ 공장이다. 거리명이 곧 공장 이름이다. ‘지역 공장 시절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다. 1959년 설립한 아시아 최초의 승용차 전용 공장으로, 토요타 생산방식의 거점이다. 그런데 모토마치 공장 단지의 ‘GR 팩토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거꾸로’다.

[출처] 토요타 타임즈(https://toyotatimes.jp/en/)

가령 차체 및 의장 라인에 대량생산의 상징인 컨베이어 벨트가 없다. 또한, 양산차 기반으로 고성능차를 만들지 않는다. 경주차를 밑바탕 삼아 양산차로 만든다. GR 팩토리는 토요타의 고성능 브랜드 GR의 차종을 만드는 공장이다. 2020년 GR 야리스 출시에 맞춰 설립했다. ‘발상의 전환’을 이끈 주인공은 토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회장이다.

토요타 수프라 4세대 (A80)
토요타 알테자 (XE10)
토요타 MR-S (ZZW30)

토요타자동차는 2000년대 팬덤이 두터웠던 스포츠카를 줄줄이 단종시켰다. 2002년 4세대 수프라, 2005년 알테자, 2007년 MR-S의 생산을 종료했다. 당시 토요타는 해외 판매량을 높여 양적성장을 추구하고 있었다. 따라서 ‘잘 팔리고 돈도 잘 버는’ 차종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극소수의 마니아층이 열광하는 스포츠카는 시나브로 설 자리를 잃었다.

2007년 토요타는 꿈에 그리던 1,000만 대 체제를 달성했다.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과 함께. 그러나 바로 이듬해, 4,600억 엔의 영업 적자를 냈다. 1937년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왜 다시 도요타인가>의 저자 최원석은 “미국발 금융 위기(리먼 쇼크)와 글로벌 확장 경영에 따른 생산 과잉(재고 300만 대), 환율 악화의 3중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출처: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VRTC 보고서 INRD-DP09001-51847P

2009년 6월, 창업 3세 도요다 아키오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안팎의 악재로 회사가 잔뜩 움츠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 두 달 뒤 미국에서 렉서스 타고 가던 일가족 4명이 가속 페달 오작동으로 전원 사망했다. 결국 1,000만 대 리콜로 이어졌다. 2011년 3월엔 동일본 대지진, 7월엔 태국 대홍수로 토요타 공장 3곳의 문을 닫았다.

‘더 좋은 자동차’의 토대 TNGA

2012년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위기의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규모의 불경제’다. 조직이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두 번째는 ‘복잡성의 폭발’이다. 업무가 지나치게 복잡해져서 한 순간 제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말한다. 조직의 업무뿐 아니라 나날이 고도화되는 자동차 기술에도 대입 가능한 문제였다.

도요다 사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방법으로,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를 제시했다. 핵심은 ‘개발과 공유’. ①새 플랫폼과 구동계를 동시 개발해 기본성능을 끌어올리고, ②폭넓게 공유해 개발비용을 20% 낮추며 ③아낀 비용은 기술개발 및 상품성 강화에 투자해 궁극적으로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개념이다.

비용을 높이지 않고 ‘더 좋은 자동차’ 만들 방법이다. 이를 위해 설계의 프로세스와 인재들의 사고방식을 바꿨다. 2015년 출시한 4세대 프리우스가 TNGA 1호차였다. 이후 CH-R, 캠리 등이 뒤를 이었다. 모두 저중심 설계와 고강성 차체로 거주성과 승차감을 확연히 개선했다. 무엇보다 조작과 반응의 간격을 좁히고 왜곡을 없애 운전의 ‘손맛’이 살아났다.

로버트 그린은 저서 <권력의 법칙>을 통해 ‘이미지와 상징을 앞세우라’고 주장했다. 도요다 아키오의 TNGA가 좋은 사례다. 방향을 제시하되 스스로 방법 찾게 만든 묘안이다. 또렷이 각인되면서도, 여러 층위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토요타와 렉서스 거의 전 차종이 TNGA로 거듭났다. 토요타 툰드라나 렉서스 LM 등 픽업과 미니밴도 예외는 없다.

토요타의 전 마스터 드라이버, 고(故) ‘나루세 히로무(成瀬弘)’도 비슷한 사례다. 도요다 아키오는 나루세의 생전 활동과 어록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모터스포츠 조직과 활동 전반을 ‘하나의 팀’으로 단단히 결속 중이다. 나루세의 사진을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의 팀 피트에 걸고, 경주 마친 뒤 기념 촬영 때 품에 안는 ‘시각화’의 센스도 돋보인다.

레이스 우승 꿈꾸는 양산차 도전

도요다 아키오는 회사가 가장 어려울 때 취임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며 실력을 입증해 왔다. 불과 1년 만에 시설 재배치로 300만 대 과잉 생산을 해결하고, 원가 개선 및 고정비 감축을 통해 최악의 적자를 흑자로 바꿨다. 1,000만 대 리콜은 반년 만에 완료했다. 대지진을 겪고 백업체제를 구축했다. 나아가 설계 전략 및 조직 개편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취임 6년 차인 2015년, 토요타는 79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약 310조 원의 매출도 놀랍지만, 30조 원 넘는 영업 이익은 세계 자동차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록. 도요다 아키오는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미션을 완수했다. 이후 진정 하고 싶은 일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유일한 마스터 드라이버 ‘모리조’로서의 책임이기도 했다.

바로 스포츠카의 부활이었다. 이미 2012년 86, 2019년 GR 수프라를 선보였지만, 절반의 의미에 머물렀다. 다른 회사와 공동 개발한 데다 정작 토요타가 만들지 않는 까닭이다. TNGA로 완성한 ‘가슴 뛰는 자동차’를 넘어 모터스포츠에서 ‘이길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 차례. 이 같은 야망의 첫 결실이 2020년 선보인, 3도어 사륜구동 해치백 GR 야리스였다.

레이스에서 우승할 수 있는 스펙의 차를 양산형으로 전환한 처녀작이었다. 양산차는 1만 시간 주행 후 고장 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GR의 개발 프로세스는 망가질 때까지 달리고 고치길 반복한다. ‘발상의 전환’을 구현하기 위해 공장의 혁신도 필수. 따라서 2020년 10월부터 경주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GR 팩토리 가동에 들어갔다.

앞서 언급한 TNGA는 GR 팩토리를 비롯한 토요타의 생산시설에도 적용 가능한 사상이다. TNGA 개념을 녹여 넣은 토요타 공장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바로 ①단순함(Simple)과 ②가벼움(Slim), ③유연함(Flexible)이다. 환경에 따라 늘이거나 줄일 수 있는 생산라인, 빠르게 이동시켜 재설치할 수 있도록 소형화한 설비 등을 뜻한다.

컨베이어 벨트 없는 토요타 공장

GR 팩토리는 여기에 경주차 특유의 제작 방식을 접목했다. 이를테면 양산차의 통상적 기준을 넘는 ‘오버 스펙(Over Spec)’과 초정밀 공정이다. 약 1만6,000㎡ 부지에 들어선 GR 팩토리는 현재 GR 야리스와 GR 코롤라, 렉서스 LBX 모리조(MORIZO) RR 등 3개 차종의 생산을 맡고 있다. 2024년 10월 기준, 400여 명의 직원이 월 1,857대를 만든다.

GR 팩토리는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모터스포츠 중심 접근 방식을 구현했다. 기존 공장의 흐름 생산을 위한 컨베이어 벨트나 행거는 찾아볼 수 없다. 개별 작업자 또는 소규모 팀이 각 공정을 담당하는 ‘셀(Cell)’ 생산 방식인 까닭이다. 덕분에 최신 기술을 추가로 도입하거나 레이아웃을 바꾸고, 수요변화에 맞춰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쉽다.

[출처] 토요타 타임즈(https://toyotatimes.jp/en/)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 전문대학원의 박정규 겸직 교수는 “셀 라인은 하나의 공정으로 제품을 완성할 수 있는 ‘자기 완결 공정’에 어울린다”고 설명하고, “반면 자동차는 조립해야할 양이 많다. 따라서 GR 팩토리는 한 대의 차를 조립하기 위해 몇 개의 셀 라인을 운영한다”고 말한다. 셀 사이의 차체 및 부품 이동은 ‘무인 운반 차량(AGV)’이 맡는다.

[출처] 토요타 타임즈(https://toyotatimes.jp/en/)
[출처] 토요타 타임즈(https://toyotatimes.jp/en/)

모토마치의 GR 팩토리는 크게 바디와 조립, 검사의 세 가지 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 바디 공정에서는 일반 양산차보다 한층 높은 강성의 차체를 만든다. 첫 단계는 프런트 프레임에서 트렁크 바닥을 잇는 하부 구조 용접. 이때 GR 야리스 차체 길이(3,995㎜)의 약 9배에 달하는 35m의 구조용 용접 재료를 사용한다. 일반 야리스보다 10m 더 많은 양이다.

이후 상부 구조인 본체를 먼저 ‘스팟 용접’한다. 전류를 특정 지점에 흘려 금속을 접합하는 방법이다. 일반 야리스의 용접 지점은 약 3,700개. 반면 GR 야리스는 4,500개다. 제작팀은 전문 드라이버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 강한 접합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용접 지점을 추가했다. 여기까지 마친 GR 야리스 차체는 방청 처리한다.

경주차 수준 생산 및 품질 관리

이 가운데 일부는 토요타에서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World Rally Championship, 이하 WRC)’를 관장하는 핀란드 이위베스퀼레(Jyväskylä)의 지사로 보내 랠리2 경주차로 만든다. GR 야리스의 골격이 랠리2 머신과 거의 같다는 방증이다. GR 야리스 차체 제작의 마지막 순서는 정밀 검사. 완성한 프레임을 설계도와 대조해 꼼꼼히 확인하는 과정이다.

모든 제품에서 허용 오차 범위 내의 편차는 숙명이다. 그러나 레이싱에서는 결과에 영향 미칠 변수다. 따라서 GR 야리스 차체는 0.1㎜ 단위의 3차원 측정으로, 볼트 구멍의 정렬 오류를 가늠한다. 측정 데이터를 전문 분석 시스템으로 전송하면, 오류를 가장 잘 보상할 부품을 골라 짝을 맞춘다. 그 결과 의도한 설계 값과의 오차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출처] 토요타 타임즈(https://toyotatimes.jp/en/)
[출처] 토요타 타임즈(https://toyotatimes.jp/en/)

일반 공장에서는 작업자가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매달린 차체에 서스펜션을 조립한다. 반면 GR 팩토리에서는 반대다. 평평한 바닥에 서스펜션을 자리 잡고, 차체를 얹어 조립한다. 작업자가 바닥에 안정적으로 지지할 때 조립이 더 안전하고 정밀하다고 믿는 까닭이다. 이처럼 기존 공장과 다른 방식 때문에 GR 팩토리는 인력 양성의 요람 역할도 한다.

한편, GR 팩토리에서 출고하는 모든 차량은 시험장에서 엄격한 테스트를 거친다. 운전 평가 기술 훈련을 받고 자격증 취득한 16명의 검사관이 차량을 평가한다. 레이싱 드라이버는 시속 120㎞ 직진 안정성, 조정 안정성, 제동 시 거동 및 소음 등 14개 항목 평가를 감독한다. 나아가 모든 결과는 개발 및 생산에 대한 피드백 제공을 위해 기록한다.

GR 팩토리의 완벽주의는 그야말로 상상초월. 매일 생산하는 차량 정보를 쌓고 있다. 좌우와 전후 밸런스 알고리즘 변화를 추적해 조립 부품을 선정하기 위해서다. 라인이 꺾기는 모서리마다 턴테이블도 빙글빙글 돈다. 운전대 조작으로 인한 서스펜션 부싱의 불균형 하중을 막기 위해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GR 야리스가 사무치게 궁금해졌다. 나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