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 발언’ 김태군, 그래도 지구는 돈다

팀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KIA 김태군은 좋은 선배이기보다 할 말을 하는 선배를 자처하고 있다. /김여울 기자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도 없다는 말, 사실 어른이 돼야 그 말의 뜻을 알게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가치는 있다.

프로야구 그라운드에서도 그렇다. 운동하는 환경도 달라지고, 기술도 달라졌지만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기술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기본과 야구는 팀 스포츠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가치다.

기본이 없으면 반짝할 수는 있어도 오랜 시간 경쟁의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처럼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홀로 ‘우승’이라는 목표에 이를 수는 없다.

‘어른’ 김태군의 작심발언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KIA 타이거즈의 씁쓸한 가을이다.

디펜딩 챔피언에서 ‘남의 잔치’ 관람자로 전락한 KIA, 2025시즌에 무엇이 부족했을까?

올 시즌을 앞두고 KIA는 V13의 단꿈을 꾸었다.

선수들은 12번째 우승과 함께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연봉 훈풍이 불었고, 두둑한 보너스에 구단은 연패를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KIA는 미국 어바인에 처음 캠프를 차린 프로야구팀이 됐고 선수들은 비즈니스석을 타고 새 시즌을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준비 과정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햇살이 먼저 떠오르는 오렌지 카운티라는 명성에 맞지 않는 이례적인 궂은 날씨가 선수들을 기다렸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는 게 일과가 됐고, 이어지는 비 때문에 연습장 찾는 게 중요한 업무가 됐다.

워밍업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어바인에서 만난 선수들은 입을 모아 “또 우승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우승이 얼마나 좋은지 직접 체험한 만큼 선수들은 굳은 의지를 보였다. 경쟁도 치열해진 만큼 긴장감도 엿볼 수 있었다.

우여곡절 비와 함께 한 1차 훈련을 끝내고 일본 오키나와로 건너간 KIA는 최대 화두였던 ‘부상’을 피해 꽤 만족스럽게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했다.

큰 부상자 없이 잘 끝난 캠프였기에 선수단의 기대감은 컸다.

장현식의 FA 이탈 공백은 조상우로 채웠던 만큼 KIA는 누구나 우선 꼽는 ‘우승 후보’였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 김태군은 ‘아니오’를 외쳤다.

“포장된 가식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는 그는 “욕을 듣더라도 할 말은 한다”고 말한다.

스프링캠프에서 김태군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친 발언을 했다.

빛나는 시즌을 상상하고 기대하던 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는 듣고 싶지 않은 ‘꼰대 발언’이 됐다.

기대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시즌을 보낸 뒤 김태군에게 다시 그 발언에 대해 물었다.

김태군은 “욕 많이 먹었는데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뿐이다. 욕을 들을지라도 현재 있는 현실적인 거를 얘기했기 때문에 ‘잘못 인터뷰했다’, ‘잘못 말했다’ 그렇게 생각은 안 한다. 내가 느낀 게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인터뷰를 했었고 또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다”고 밝혔다.

올 시즌 KBO 통산 72번째 15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김태군이 한준수(왼쪽)와 강민호(오른쪽)와 시상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할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조직 생활을 해보면 안다. 누군가를 이끌어 가는 입장이라면 더 잘 알 것이다.

애정이 없다면, 관심이 없다면 좋은 사람 또는 좋은 선배가 되는 것은 쉽다. 그 결과가 어찌 됐든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주면 된다. 방관 또는 침묵이라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애정으로 조직과 팀을 생각한다면 싫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선배라고 해서 선임자라고 해서 모든 게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험은 해 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물론 ‘요즘’ 시대에 ‘꼰대’가 되기 십상이지만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그 자리에 가보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김태군도 여러 팀을 거치면서 또 선배가 되면서 알게된 것들이 많다.

팀 승리가 아니라 개인성적만 생각한다면 내 것만 욕심내서 하면 편할 수 있다.

사람이니까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김태군은 진심을 내뱉는다.

김태군은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고, 분위기 흩트릴까 봐 말 안 하고 그럴 수 있다. 나도 좋은 선배하고 싶다. 좋은 소리만 하면서.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해서 팀의 미래가 있고 팀의 발전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해 같다”며 “작년에는 싫은 소리를 더 많이 했다. 너무 우승을 하고 싶어서 동생들에게 싫은 소리 더 많이 했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왜 못하는지에 대해서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끌고 갔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쉽지 않았던 시즌을 보낸 김태군은 우승이라는 결과를 냈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많은 이들의 조언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순한맛 김태군이 됐다. 결과적으로는 틀린 선택이 됐다.

김태군은 “결국에 눈에 보이면 눈에 보이는 대로 얘기를 하는 게 맞다라는 걸 올 시즌 1년 하면서 느꼈다. 자신감과 자만감은 종이 한 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자신감은 연습량에서 나온다. 자신감을 가지려면 자기 스스로가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철저히 해야 된다”며 “매년 신인들은 육성 선수까지 12~14명 정도 들어온다. 그리고 매년 그만큼 팀을 나가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으면 좋겠다. 충격 요법이라고 하면 요즘 ‘꼰대’라고 하지만 쉽게 자리를 얻고,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18년 차 김태군도 자신감 넘치는 순간을 보내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 보기도 했고,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면서 절망도 해봤다.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을 경험했고, 많은 이들이 화려한 순간을 뒤로 하고 또는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매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안다. 노력과 팀의 힘을.

김태군은 “여기는 팀이고, 팀의 룰이 있다. 한 팀에만 있던 선수들은 잘 모르는 데 나 같은 경우에는 4개 팀에 있었다. 해야 할 것, 안 해야 할 것 팀 룰이 있다. 팀 룰, 팀의 플레이에 대해서는 그냥 보이는 대로 바로바로 지적해야 되는 것 같다. 안 그러면 골프나 테니스 같은 개인 운동하러 가야한다”며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1군에 올라왔을 때 이제 다 된 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첫해에 그런 느낌을 받았었는데 결국에는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또 준비를 했다. 그렇게 경험을 해보니까 안 좋았던 것밖에 없었다. 나도 건방 떨어보고, 많은 실패도 해보고, 많이 혼나기도 해봤다. 해봤으니까 너무 눈에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쓴소리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팀의 일원이기 때문에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간절하게 다른 결과를 빌었다.

김태군은 “누구보다 잘 됐으면 하는 생각이 강했다. 특히 6월에 그 마음이 누구보다 강했다. 다른 팀들, 야구 관계자들이 ‘6월부터 떨어질 거다’, ‘그때부터 곤두박질 칠 거다’라고 했을 때 오히려 어린 친구들하고 중간에 (박)찬호나 (전)상현이 이런 친구들하고 한 번 더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됐으면 했다”며 “임시 주장으로 찬호가 잘 해줬다. 애들 데리고 잘 했었다”고 기대감으로 달리던 6월을 떠올렸다.

하지만 KIA는 그 분위기를 잇지 못 하고 사람들은 예상치 못했던, 김태군은 우려했던 가을을 맞았다.

위기의 전반기를 보내면서 김태군은 ‘지금 와서 하면 늦었다’는 말을 했었다.

경험이 부족해서 나온 실패, 결국은 쓴 경험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김태군의 설명이다.

김태군은 “일단 올해는 이렇게 지나갔고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조금 못 한다고 연습 많이 하고 그런 게 아니라 꾸준하게 자기 루틴에 맞춰서 흘러가게끔 준비를 해야 한다. 잘할 때도 못할 때도 꾸준하게 해야 한다. 잘할 때도, 못할 때도 100개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루틴을 확실하게 정립해야 한다. 프로에서 3~4년 정도 커리어 낸 선수들의 루틴 말고, 충분히 더 할 수 있다. 더 해야 한다”며 “집에 1시간 빨리 가서 쉰다고 회복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야구 쪽으로 배울 선배도 많겠지만 어린 선수들이 1군이라는 자리에 왔을 때 라커에서의 모습, 웨이트 이런 생활하는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그런 선배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경기장에 등장하고 가장 마지막에 떠나는 선수가 김태군이다. 보고 배울 선배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다’라는게 자신의 평가다.

김태군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었다. 나 스스로는 너무 가혹하게 하는 편이다”라고 웃었다.

2024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프로 첫 만루홈런을 친 뒤 기뻐하는 김태군과 동료들. <KIA 타이거즈 제공>

지난해 김태군은 우승팀 포수로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냈다.

프로 첫 만루홈런을 한국시리즈에서 장식한 그는 간절하게 원했던 우승이 확정된 뒤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그라운드에 쏟았다.

그래서 올 시즌은 아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김태군은 “개인적으로는 고비를 잘 넘긴 것 같다. 솔직히 올 시즌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작년에 많은 시간을 뛰었는데 큰 부상 없이 무난하게 잘 넘겼다고 생각한다”며 “컴퓨터로 하면 리셋해야 한다. 모든 걸 다 지우고 모든 걸 다 꺼야 할 것 같다. 계획을 세우고 다시 스위치를 켜는 시기는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 KIA 선수들에게 이범호 감독에게 간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따뜻한 비시즌을 보냈던 만큼 ‘다시 또 우승’이라는 꿈은 컸다.

하지만 새로운 시즌은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야구는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상대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간과했을지 모른다.

이겼으니까 누렸으니까 다시 또 오르고 싶은 정상의 꿈, 누군가는 놓쳤기 때문에 더 간절하게 노력하고 준비했을 지도 모른다.

물 흐르듯 모든 게 흘러갔던 2024시즌이 함정이 됐을지도 모른다. 쉽게 한 우승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황무지에서 만든, 위기를 넘고 또 넘고 만든 우승은 아니었다.

KIA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잘 풀렸던 우승이었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시즌이 끝났다.

실패를 경험한 KIA 선수들은 알 것이다. 끝났지만 새 시즌은 이미 시작됐다는 걸.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