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시장의 10배…하이브가 스토리에 베팅하는 이유는 [K-팝 서사의 시대]
군입대·스캔들 등 휴먼 리스크에도 대비
K-팝 팬덤 확장시키는 통로 역할까지 해
![엔하이픈 [빌리프랩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5/ned/20260515161927181chzt.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군입대, 연애, 사건 사고, 멤버 이탈….
K-팝은 ‘리스크’가 큰 산업이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고, 감정을 다루는 산업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아티스트의 일거수일투족은 ‘리스크’가 된다. 그래서 K-팝 그룹 기획사의 도처엔 지뢰밭이 많다.
국내 최대 기획사인 하이브도 지난 2024년 창사 이래 가장 큰 시험대에 올랐다. 주요 소속 가수인 방탄소년단(BTS)의 군백기가 시작되면서다. 매출은 흔들렸고, 영업이익은 급감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하이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정상 그룹이 군입대를 하거나 인기 절정의 그룹이 열애설 혹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회사의 매출과 주가는 출렁인다. K-팝은 본질적으로 ‘휴먼 IP(지식재산권)’ 산업이기 때문이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지난 몇 년 사이 대형 기획사에서 ‘IP 확장’을 시도하는 것은 워낙 리스크가 크고, 아티스트의 컴백과 공백, 구설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이브는 올해 매출 4조원, 영업이익 6000억원 돌파를 앞두며 ‘아티스트 리스크’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고질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그 해답 중 하나가 ‘스토리 IP’다.
박대호 넥스트엔터테인먼트 사업 대표는 “하이브가 스토리 사업을 기획한 지 10년이 됐다”며 “네이버웹툰과 수퍼캐스팅 프로젝트를 통해 웹툰 전개를 본격화한 지는 이제 5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시리즈 IP로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방탄소년단 ‘화양연화’ [빅히트뮤직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5/ned/20260515161927428urmw.jpg)
시작은 2015년이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시절,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을 통해 아티스트의 음악적 메시지와 서사(세계관)을 연결하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한다. ‘청춘’의 보편적 정서에 공감하는 메시지를 개발,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에 녹이자 팬들을 자발적으로 방탄소년단의 스토리에 뛰어들었다.
K-팝 세계관의 성공 모델인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를 시작으로 하이브는 ‘오리지널 스토리 모델’을 정립했다. 2022년부터 방탄소년단 ‘7페이츠(7FATES):착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크림슨 하트’, 엔하이픈, 엔팀, 르세라핌, 아일릿 등 6개 팀의 웹툰, 웹소설 등 연이어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관련 사업의 변곡점이라 할 만하다. 일본 애니플렉스와 협업해 엔하이픈 세계관 기반 웹툰 ‘다크문: 달의 제단’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서다. 하이브는 이미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사로서 음악 분야의 수익이 막강하지만, ‘스토리 IP’ 역시 하이브 미래 사업의 전초기지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됐다.
하이브가 스토리 사업에 베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시장의 체급 차이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포괄하는 글로벌 서브컬처 시장은 음악 산업의 약 10배 규모에 달한다. 이 시장의 1%만 잠식해도 음악 산업으로 환산하면 10%의 순증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공룡인 애니플렉스(Aniplex)가 엔하이픈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웹툰 ‘다크 문’을 제작한 하이브와 손 잡고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을 선보였다. [하이브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5/ned/20260515161927688unnv.jpg)
박 대표는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만 봐도 음악 시장의 4~5배는 큰 규모”라며 “이 시장으로의 진입이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 IP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시장 크기만은 아니다. 음악은 순간 소비되는 콘텐츠이나, 스토리 IP는 ‘장기 체류’를 가능하게 만드는 콘텐츠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고 군입대 걱정도, 국경 이동 제약도 없다. 웹툰은 번역되고, 애니메이션은 현지화되며, 굿즈와 게임은 24시간 소비된다. 심지어 아티스트의 부재조차 수익 구도 안으로 흡수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이론적 관점에서 모든 스토리 IP는 반영구적 수명 주기를 가진다”며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고한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유함으로써 다양한 확장 가능성이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봤다.
하이브가 만드는 스토리IP의 강점은 탄탄한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IP를 결합한다는 점이다. 아티스트 IP가 가진 리스크를 상쇄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만나 “폭발력을 지원하는 화학 촉매”라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스토리를 만들어갈 때도 작품의 주제의식과 세계관 설정, 음악 등을 아티스트의 활동과 공유한다. 앨범 안에선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캐릭터 개개인의 서사가 독립적으로 확장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박태호 하이브 넥스트엔터테인먼트 사업 대표 [하이브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5/ned/20260515161927964uaax.jpg)
박태호 대표는 “ 3~5년 내에 사업 목표는 K-팝 산업으로 대규모의 신규 유입을 발생시켜 미래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고, 음악을 결합한 새로운 팬 경험모델을 제안하며 시장 차별성을 갖추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독립적인 사업 확장 재원과 인력을 갖추는 질적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최대 리스크는 아티스트의 공백기다. 하지만 스토리 IP는 24시간 365일 가동된다. 하이브는 아티스트와 스토리의 관계를 ‘캐스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아티스트가 스토리 속 캐릭터에 캐스팅된 구조를 취하며, 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리는 독자적인 시퀄, 프리퀄, 스핀오프를 통해 무한히 확장된다.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의 핵심은 ‘독립성’이다. 박 대표는 “예술가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 오리지널 스토리의 설정 때문에 선택의 제약을 받거나 한계가 생기면 안 된다”며 “주제를 공유하나, 그것을 유지한 채 분리와 합체를 반복하는 형식”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각 스토리에서 “아티스트를 ‘캐스팅’했다”고 설명한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웹툰 작품에 ‘위드 엔하이픈(with ENHYPEN)’이라는 표기를 하며 아티스트와의 유연한 관계구조를 설명한다”고 귀띔한다. 아티스트가 세계관 자체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이같은 시스템은 기존 K-팝 산업의 구조와 비교할 때 차별점을 가진다. 과거 엔터 산업이 특정 스타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였다면, 하이브의 시도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중심으로 팬덤 구조를 재설계한다. 아티스트라는 ‘휴먼 IP’의 가용성에 의존하지 않고, 캐릭터와 서사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 IP를 육성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드는 전략이다.
![그룹 엔하이픈 [빌리프랩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5/ned/20260515161928168nrsm.jpg)
엔하이픈의 ‘다크 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본편 종료 후에도 프리퀄, 스핀오프, 후속작으로 확장해 독립 IP로 살아 움직인다. ‘밤 필드의 아이들’(프리퀄), ‘바르그의 피’(고대 서사), ‘두 개의 달’(속편) 등을 연달아 내놓으며 팬들의 몰입을 유지했다. 덕분에 독일 웹툰 차트 1위를 차지했고, 북미·라틴아메리카 상위권에 올라와 있다.
박 대표는 “스토리 IP의 확장성이나 아티스트 성장 서사 차원에서 상호 제약을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는 없다”며 “각자 최대한의 성장을 추구하되 즐거운 팬 경험을 창조한다는 차원에서 공고한 협업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하이브가 만들어낸 ‘오리지널 스토리’가 K-팝 팬을 넘어 일반 독자들까지 세계관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브가 지난 10년간 단기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IP를 육성, 투자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본 애니플렉스(Aniplex)가 엔하이픈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웹툰 ‘다크 문’을 제작한 하이브와 손 잡고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을 선보였다. [하이브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5/ned/20260515161928422qesl.png)
박 대표는 “스토리 IP의 성장은 K-팝 시장에 새로운 고객을 유입시키는 핵심 동력이 된다”며 “매력적인 스토리 IP를 육성하는 것은 K-팝 팬덤의 저변을 넓히는 거대한 유입 창구를 확보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스토리 IP를 통해 팬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스토리 독자가 K-팝 팬이 되고, K-팝 팬이 다시 스토리 소비자로 이동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다크문’ 시리즈는 엔하이픈과 엔팀(&TEAM)의 서사를 함께 엮으며 서로 다른 그룹의 팬덤까지 교차 유입시키고 있다.
하이브가 이같은 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데 있어 유리했던 것은 경쟁사에 비해 글로벌 팬덤 인프라가 공고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K-팝 기업들은 지난 20년간 글로벌 단위에서 팬덤과 소통하고 운영해온 경험을 축적해 왔다”며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고객 경험 전체를 설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웹툰과 웹소설,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IP 확장이 아니다. 음악과 굿즈, 공연, 기술과 팬 경험까지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장기적 서사 생태계’ 구축에 가깝다. 박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음악과 기술, 스토리가 결합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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