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영웅’ 불렸던 간호사 “소모품 취급, 바뀐 게 없어요”

김세훈 기자 2023. 6. 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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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엔데믹 이후
3년간 고군분투 주목 받았지만
나아진 것 없는 노동환경 허탈
서울 동작구 서울대 보라매병원에서 근무 중인 김경오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본인 제공

“코로나19 때 밥도 거르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현장을 뛰었어요. 방호복을 입으면 10분 만에 온몸이 땀에 젖었어요. 사명감으로 버텼지만 팬데믹 때와 지금(엔데믹)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코로나19의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낮아진 지난 1일부터 사실상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을 맞았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 세계가 ‘K방역’에 주목하기도 했다. K방역의 성취 뒤에는 의료진이 있었다.

간호사들은 3㎏에 달하는 전신 방호복을 입고 최일선에서 환자들과 소통했다. ‘방역마스크에 쓸려 상처가 난 콧등에 밴드를 붙인 간호사’ ‘고령의 격리환자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함께 고스톱을 친 간호사’ 등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의 사연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시민들은 이들을 ‘영웅’으로 불렀다. 정부도 공공의료 확대, 의료진 확충·처우 개선 방안 등을 쏟아냈다.

그뿐이었다. 간호사들은 지난 3년간 실질적인 처우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의료현장서 ‘엔데믹’ 체감 안 돼
여전히 이중·삼중 보호구 입어
다음 전염병 대처 가능할까 의문
인력 ‘돌려막기’ 구조 바뀌어야

서울 동작구 서울대 보라매병원에서 근무하는 김경오 간호사(30)는 2일 “엔데믹이 됐다고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잘 체감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병동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마주하며 이중·삼중 보호구를 착용하고 코로나 검사를 한다. 그는 “열악한 공공의료 현실을 보면 다음 전염병을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했다.

김 간호사는 팬데믹 기간 중환자실에서 일했다.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 기계장치를 달고 점검하는 일을 맡았다.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못하고 격리돼 죽어가는 환자들을 마주했다. 그는 “3차 대유행 때가 가장 힘들었다. 전체 병원의 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에서 전체 코로나 입원환자의 90%를 수용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병원의 만성적 인력난도 가감없이 드러났다. 지역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당 환자를 30명 넘게 보는 일도 있었다. 김 간호사는 “코로나 초기 2년 동안 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서울의료원에서 사직한 간호사 수만 500명에 달한다. 평소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했다.

김 간호사는 간호사 처우가 코로나 이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꼈다. ‘영웅’이라는 칭호보다 더 절실한 것은 노동환경의 개선이라는 것이다.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법제화하는 ‘간호인력인권법’ 국민청원이 지난해 10월 시민 10만명의 동의를 받았으나 이후 후속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김 간호사는 의료 인력을 돈이 드는 ‘소모품’으로만 보는 게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숙련된 간호사를 채용하려면 병원으로서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병원 고용 시스템이) 신규 간호사를 뽑아서 이들을 대체하고, 또 몇년 뒤에 이 과정을 반복하는 식으로 돌려막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사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허울 좋은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력 확충과 근로조건 개선”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간호사들의 노동환경 개선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영국 국영의료보험서비스(NHS) 간호사들은 지난달 임금 인상과 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영국간호사노조가 106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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