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개월 만에 숨진 치매노인, 통장에선 56억 사라졌다
노인 아들 “심신미약 아버지 현혹해 재산 탈취”…부인 측 “수많은 반박 물증 있다”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치매에 걸려 숨진 80대 남성의 재산 50여억원을 빼돌린 의혹을 받는 조선족 여성이 경찰 수사망에 올랐다. 아직 수사 초기 단계지만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발견된다. 부인이 남편의 사망 2개월 전에 혼인신고를 했고, 남편을 강제 퇴원시킨 뒤 거액을 인출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담당 경찰관이 수사 절차와 관련해 현재 감찰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사건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과 진술서·녹취록 등에 따르면, 인천의 자산가 권아무개씨(89)는 전처와 사별한 후 30년 넘게 독신으로 살아왔다. 유일한 자식인 아들 A씨와도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러다 4월26일 조선족 여성 이아무개씨(67)와 돌연 혼인신고를 했다.
이후 5월10일 이씨는 권씨를 데리고 인천 서구의 한 정신병원에 들러 치매 검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중등도 치매'였다. 병원 측은 권씨에 대해 언어 유창성, 기억력, 인지기능 등을 검사한 뒤 "해당 연령대의 기준치에 못 미치는 매우 빈약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치매 진단 뒤 "부인에게 전재산 준다" 유언
그날 오후 이씨는 권씨가 등장하는 유언 영상을 만들었다. 해당 영상에는 '자식이 아닌 부인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씨는 권씨를 데리고 수차례 병원을 옮겨 다녔다. 그사이 이씨는 권씨의 계좌에서 40억원을 뽑았다. 작년에 현금화한 16억원을 더하면 총 56억원이다. 권씨는 7월1일 숨졌다. 결혼 후 약 2개월 만이다.
경찰은 이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권씨가 사망하기 전에 아들 A씨가 이씨를 강요죄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게 발단이었다. A씨는 "이씨가 심신미약 상태의 아버지를 현혹해 재산을 탈취했다"고 보고 있다. 그 정황은 권씨 생전에 이씨가 보인 행적에서 드러난다.
당초 권씨는 5월28일 인천 서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앞서 정신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나서다. 이후 6월4일 A씨가 병원을 찾아 권씨와의 접견을 신청했다. 사전에 은행에서 '부친 계좌에서 의심스러운 자금 유출이 있다'고 통보받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권씨를 접견하러 간 그때 이씨를 처음 대면했다고 한다. 이씨는 A씨를 보자마자 돌려세웠다. '보호권은 우선적으로 배우자에게 있고, 남편은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3일 후인 6월7일, 이씨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권씨를 퇴원시켰다.
강제 퇴원 정황은 관계자의 대화와 자퇴서약서에 나와 있다. 퇴원 당일 권씨 아들과 간호사가 나눈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간호사는 "아침 8시는 병원 업무가 시작될 시간이 아닌데 다짜고짜 (이씨가) 퇴원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권씨)는 여기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잘 지냈다"며 "면역치료 받는 분이라 균도 들어가면 안 되고 영양제 주사 아니면 생존이 안 되는데 집으로 일단 모셔 가더라"고 했다.
또 당시 병원이 작성한 자퇴서약서에 는 권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씨와 동거 중인 B씨다. 그는 이씨가 권씨와의 혼인 전에 들인 사위다. B씨는 권씨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B씨가 서명한 자퇴서약서에는 "계속적인 치료 권유에도 불구하고 퇴원함에 있어서 병원 측에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씨가 40억원을 인출한 시점은 바로 이날이다. 그는 병원을 나온 직후 은행으로 향했다. 당일 권씨의 계좌내역을 보면, 새마을금고 서인천지점에서 5억원짜리 수표 6장이 연달아 출금됐다. 이씨가 권씨의 신분증과 인감증명서 등을 갖고 있었기에 대리 인출이 가능했다고 한다. 3일 후인 6월10일 이씨는 추가로 10억원을 출금했다. 권씨 계좌의 잔액은 '0'이 됐다.
더욱 이상하게 여겨지는 대목은 이에 대한 경찰의 수사 절차다. A씨가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인천서부경찰서에 접수한 건 6월25일이다. 이어 26일 수사관이 배정됐다. 그런데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인 27일 수사관이 교체됐다. 바뀐 수사관은 고소인인 A씨와 출석 일정을 조율했다. 그런데 정작 먼저 조사를 받은 사람은 다음 날인 28일 참고인으로 소환된 권씨였다.
고소인 "수사 과정 편파적…감찰 진행 중"
이에 대해 현직 수사관으로 있는 경찰 관계자는 "고소장 내용이 충실하다면 고소인 조사를 건너뛸 수도 있지만 보통 잘 그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령인 '경찰 수사규칙' 22조에는 "경찰관은 서면으로 제출된 고소·고발을 수리했으나 추가 진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고소인·고발인으로부터 보충 서면을 제출받거나 추가 진술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고소인 조사 전에 참고인을 먼저 부른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참고인 신분의 권씨는 A씨가 제출한 고소장에 연락처도 나와 있지 않았다.
절차의 정당성을 떠나 권씨의 경찰 진술은 이씨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권씨는 '의사소통이나 의사 표현에 어려움이 있나'라는 수사관의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또 "이씨와 같이 산 지 오래됐다" "혼인신고는 내 의사에 따라 했다" 등 결혼이 강요에 의한 게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 재산은 마누라(이씨)가 다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당시 진술 현장에는 이씨의 사위 B씨가 동석했다. 권씨는 진술 3일 후에 사망하면서 이때의 진술조서가 그의 입장이 유일하게 기록된 공식 문건으로 남았다.
A씨는 시사저널에 "수사 과정이 편파적이라고 생각해 수사관 기피 신청을 하고 국가수사본부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진정서를 냈다"며 "진정이 받아들여져 아버지를 조사했던 (인천서부경찰서 소속) 수사관에 대해 감찰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 일환으로 권씨의 진술 현장이 녹화된 CCTV 영상의 존재 여부가 현재 확인 중에 있다고 한다. 인천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외부 기관의 감찰 여부는 우리가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알려줄 게 없다"고 했다.
A씨가 고소장을 제출한 이후 추가 의혹도 드러났다. 권씨는 치매 진단을 받기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씨와 결혼하기 전에 위암 말기란 사실이 대학병원에서 확인된 것이다. 암은 간으로도 전이된 상태였다.
그런데 권씨가 사망 직전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의 진료기록에 따르면, 이씨는 권씨의 사망일인 7월1일 오전에 음식을 싸가지고 왔다. 죽 형태의 병원식만 먹던 권씨가 바깥 음식을 먹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 혈중 산소농도 저하 증세를 겪던 권씨는 사망에 이르렀다. 합병증에 의한 자연사로 추정되나 서류상 정확한 사인은 불명이다. 현재 A씨의 요청으로 부검이 진행 중이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은 "이씨를 살인죄로 추가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금의 용처는 상속세?…"잘못된 주장"
그렇다면 이씨는 권씨의 계좌에서 인출한 수십억원의 현금을 어디에 썼을까. A씨는 "아버지의 부동산 재산을 넘겨받는 데 필요한 상속세를 내기 위해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권씨는 서울·경기 등지에 100억원대 건물과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이씨에 대한 고소 건은 상급기관인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배당된 상태다.
이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내가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대화를 회피했다. 이씨 측 법률대리인은 "A씨 측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수많은 반박 물증을 경찰에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경찰 조사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며 "진실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기사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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