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부터 아버지와 형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던 꼬마 정우영 어린이는 야구가 좋아졌습니다. 유치원 가는 날보다 뜨문뜨문 있는 전국 고교야구 대회가 열리는 걸 더 기다리는 어린이가 됐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창단 직후에는 두 팀의 어린이 회원이 됐습니다. 아버지 응원팀과 어머니 응원팀, 이렇게 두 팀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우영 어린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야구장에서 데이트를 하셨는데 프로야구 창설 직후 서로 응원하는 팀에 대한 양보가 없으셨거든요.

개막하기 전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팀의 어린이 회원이 됐고(그때 정우영 어린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입을 하고 가입선물 보따리를 들고 왔습니다.), 전반기 마치고 후반기 시작하기 전에 어머니가
“어디 갈 데가 있다.”
고 했는데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머님 응원팀의 여름 캠프였습니다. 거기서 훗날 레전드가 되는 선수들의 사인도 받으면서 그 팀의 회원이 됐습니다

그 시절 정우영 어린이는 토요일, 일요일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토요일에 아버지와 낮에는 야구, 저녁에는 국내 복싱을 보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미국에서 열리는 복싱 위성 생중계를 시청했습니다. 그리고 또 야구를 봤죠.
아버지는 해설자였습니다. 선수들의 특징과 감독의 작전을 꿰고 있었습니다. 상황상황에 대한 비판도 많았죠.
“번트를 댔어야지!”
“변화구를 던졌어야지 왜 직구를 던져!”
“왜 저기서 땅볼을 치냐! 외야로 플라이만 쳤으면 한점 들어오는데!”
“저 감독 왜 저러는 거야! 투수를 바꿨어야지!”
물론 대부분이 이런 식의 결과론이었지만요.

정우영 어린이는 아나운서들의 중계방송 멘트를 따라 했습니다.
“센타 방면! 안타!”
‘굿바이 홈런!’
“크다! 크다! 크다! 홈~런!”
“높게 뜬 플라이볼! 좌익수 잡았습니다! 3루 주자 언더베이스! 홈에서 세잎 됐습니다! 세잎 됐습니다!”
정우영 어린이가 이러고 노는 걸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그 시절 정우영 어린이는 ‘언더베이스’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습니다.
중학생이 됐고, 소년은 청소년이 됐습니다. 학교에서 영어라는 과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언더’가 ‘Under’라는 전치사라는 것과 그 뜻이 ‘~~ 아래에’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대체 베이스 아래에 뭐가 있다는 거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야수가 잡고 주자가 뛰는데 왜 아나운서는 베이스 아래를 말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On’이라는 전치사를 알게 됐습니다. 이 뜻은 ‘~~ 위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정관사 ‘the’도 알게 됐습니다. 이걸 합치니 ‘on the’가 됐습니다. 한글로 표기하면 ‘온 더’와 ‘언더’. 비슷했습니다.
‘혹시 언더가 아니라 온더가 아닐까?’
이런 의심을 하고 듣기 시작하니 아나운서의 멘트가 그때부터 ‘온더베이스’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토요 예능 ‘놀라운 토요일’에서 아무리 들어도 안 들리다가 가사를 보고 듣는 순간 아나운서 뉴스멘트처럼 들려오는 마법처럼요.
뜻도 이게 더 맞아 보였습니다. ‘베이스 아래’가 아니라 ‘베이스 위’였던 겁니다. 야수가 잡는 순간 다음 베이스로 가기 위해서는 포구 이후 주자의 발이 베이스 위를 밟고 있다가 다음 베이스로 출발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걸 정우영 군은 6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그때가 1988년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습니다.
소년은 어른이 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하던 부모님께 예쁘게 보이려고 야구 중계방송 아나운서의 말을 따라 하던 그 소년은 스포츠캐스터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중계방송 용어도 그 당시와 비교하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일상언어도 그 당시와 비교하면 바뀌었으니 중계 언어도 바뀌는 게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포츠 캐스터가 된 정우영 씨가 소년과 청소년기를 거칠 때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던 ‘온더베이스’도 이제 중계방송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용어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였습니다.
언어는 변합니다. ‘온더베이스’가 사장된 이유는 KBO 허구연 총재가 해설위원 시절, ‘잘못된 일본어 표현을 올바른 용어로 바꾸려 했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일본어라서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일본어 표현을 올바르게 써보자’는 취지였던 겁니다.

그 노력으로 사라지게 된 대표적인 표현들이 ‘포볼’, ‘데드볼’, ‘바스타’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들을 수 있었던 ‘포볼’은 원래 ‘볼 포’가 미국에서 쓰는 표현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볼넷’ 혹은 ‘베이스 온 볼스’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데드볼’은 몸에 맞으면 볼 데드 상황이 되면서 그걸 일본인들이 ‘데드볼’로 불렀던 것으로 추측하는데 이 또한 ‘몸 맞는 공’ 또는 ‘힛바이피치트볼’로 완전히 대체됐습니다.
또 번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공격으로 전환하는 걸 말했던 ‘바스타’는 이제 ‘페이크번트 앤 슬래시’, ‘슬래시’, ‘강공전환’, ‘공격전환’ 등으로 쓰입니다.

그러면 ‘온더베이스’는요?
최근 중계방송을 듣다 보면, 캐스터들은 3가지 방향으로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외야수가 잡은 다음의 상황입니다.
“3루 주자! 태그업! 홈으로! 홈으로!”
“3루 주자! 스타트! 홈으로! 홈으로!”
“3루 주자! 리터치! 홈으로! 홈으로!”
이후 해설위원은 주자의 행위를 묘사하는 두 번째 항목은 빠지고 주로 ‘태그업’과 ‘리터치’로 상황을 설명합니다.
“지금은 3루 주자가 태그업을 할 수 있게 타자가 충분히 타구를 멀리 보내줬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주자의 리드폭이 너무 커서 리터치를 할 수 없었어요. 충분히 리터치를 할 만한 플라이였는데요.”
먼저 ‘태그업(Tag up)’은 ‘터치업(Touch up)으로도 씁니다.
어감 그대로입니다 베이스를 발로 태그 혹은 터치를 한 다음 UP!
다음 베이스를 향해 가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럼 ’ 리터치(Retouch)’는요?
말 그대로 다시 터치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KBO의 룰북에도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리터치는 ‘귀루’입니다.
65. RETOUCH (리터치·귀루)
주자가 규칙이 정한 베이스로 돌아가는 행위를 말한다.
[주] 리터치는 진루하거나 역주할 때에 타격행위 이전의 베이스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또 타자가 플라이 볼을 쳤을 때 주자가 야수의 포구 이후 다음 베이스에 가려고 베이스를 밟고 있는 것도 리터치라고 한다. 포구보다 먼저 베이스를 떠났을 때에는 정당한 리터치를 하지 않은 것이 된다.
즉, 리터치는 이전 베이스로 돌아가는 행동까지를 의미하지 그다음 베이스로 향하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희생플라이 상황에서 3루 주자가 다음 베이스로 향하는 행위는 ‘태그업’이지 ‘리터치’가 아닙니다. ‘리터치’로 표현을 하려면 이후 다음 베이스로 향하는 것도 표현을 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3루 주자 리터치! 베이스 밟고 홈으로 뜁니다! 홈으로!”
하는 식으로요.

저는 수십 년 간 친하게 지내왔던 ‘온더베이스’(한때 ‘언더베이스’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를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태그업’이라는 올바른 표현이 명확하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송뿐 아니라 기사를 통해서도 '리터치'를 '태그업'과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를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장이 3루 주자의 태그업 득점 상황을 놓고 '리터치에 성공했다.'라고 표현하는 건데요. 저 문장은 '귀루에 성공했다'는 뜻으로 득점 상황 묘사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됩니다.
올바른 용어를 적절한 상황에서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야구팬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잘못된 용어를 강요받지 않을 테니까요.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