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역사 속 가상공간의 특징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인류 역사상 모든 국가와 사회는 그들의 사상과 시스템을 정당화해줄 '유토피아'라는 가상적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규칙, 법, 도시, 건축 등의 다양한 형태와 시도로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공간으로 구현해 왔다. 기독교적 세계관, 공상적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시대와 가치관, 사회를 지배하는 제도가 무엇인지에 따라 각각 추구하는 이상 세계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가상의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무엇을 꿈꾸고 희망하든, 현실로 실체화되고 구현되기 전까지는 모두 상상의 세계인 가상공간에서 기획되고 설계된다.
시대마다 가상공간들은 각 이상향의 공간에 맞게 구상되고 현실에서 실체화되기도 했다. 각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가상적 객체들과 그 규모도 다르고, 가상공간의 프로그램과 구현하는 행위도 모두 다르다. 이제 시대에 따라 다르게 탄생했던 가상공간의 특징을 살펴보자.
시대별 가상공간의 특징과 그들만의 유토피아
기독교적 관점에서 가상공간의 규모는 앞서 언급한 여러 가상공간 중 가장 크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안드레아 포조의 '성 이그나시오의 승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묘사되는 천국과 지옥은 인간이 만들어낸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광활한 우주 그 자체다.
그래서 공간은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무한의 규모로 보면 된다.
천국의 구성 재료는 구름, 공기, 바람 등이며, 지옥은 흙, 불, 암석, 물 등으로 모두 자연의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가상의 객체들은 세상의 모든 인간이다. 세상의 남녀노소와 모든 인종을 포함한다.
인간은 죽어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되고, 심판의 결과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게 된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가상공간의 프로그램에 따라 각각에 걸맞은 벌을 받거나 축복받는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묘사된 가상의 공간과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탄생시킨 가상의 공간은 샤를 푸리에가 제안했던 공동체적 커뮤니티인 팔랑스테르와 같이 건축공학적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 규모는 인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공시설과 공동 주거의 건축물 정도의 규모, 즉 건축의 스케일이다. 물론 팔랑스테르가 여러 채 건축되면서 도시 전체로 확장할 가능성도 있기에, 그 규모는 하나의 도시 수준까지 커질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과거에 천국과 지옥을 다뤘던 공간 규모와 비교할 때 매우 작으며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스케일이다.
샤를 푸리에가 제안한 팔랑스테르의 건축 재료는 당시에 많이 쓰인 벽돌이나 돌, 유리 등으로 예상되며, 당시 유행한 건축양식인 프랑스 고전주의(French classicism) 양식을 사용했다.
작업장과 생산 시설, 교육 시설, 놀이 시설 등 시설의 대부분이 공동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돼 있는 것으로 보아 공간적 프로그램은 공동체적 생활로 이뤄진다. 물론 현대적 개념의 아파트처럼 각각의 주거 공간이 독립적으로 갖춰져 있으니 공동체 생활 속에서도 개인적인 영역은 존중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상공간에서 객체는 기본적으로 유럽인들이며 그중에서도 절대왕권 사회에서 빈민층을 형성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가상공간은 어떤 특별한 사상이나 정치체제가 강조되기보다는 돈과 권력으로 자신들을 억압하던 대상에게서 해방되고, 자신의 의지로 주체적으로 살며 공동체 안에서 안정과 화합을 이루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공산주의와 가상공간
토마스 모어에서 시작한 유토피아의 개념은 유럽의 공상적 사회주의의 후예들에 의해 계승되고, 공산주의 개념으로 완성됐으며,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결국 국가 형태로까지 건설된다. 공상적 사회주의의 가상공간이 건축과 도시의 규모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개념이라면, 공산주의 국가의 가상공간은 이러한 도시들의 집합체인 국가의 규모로 확장된다.
게다가 공산주의자들이 주창하던 개념은 어떤 특정한 공간적 장치보다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경제와 사회시스템에 이야기의 중심이 좀 더 집중되면서 담론이 거시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즉, 국가적, 민족적, 역사적, 문명적으로 사상의 규모가 확장됐다.
그래서 그들이 구현하려는 가상 세계는 특정한 물리적 공간보다는 더욱 확장된 이상적 개념의 공간이었다. 물론 나중에 국가를 건설할 때는 국가, 도시, 건축의 단계별로 매우 구체적인 건축 스케일도 함께 다뤘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유토피아적 가상공간을 실제로 건설하게 된다.
이렇듯 공산주의의 가상공간은 국가적 스케일로 확장되면서 여기에 참여하는 객체들은 한 나라의 국민 전체가 됐다. 게다가 그들의 공산주의적 사상과 경제·사회시스템을 전 세계로 확장할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객체들 또한 인류 전체로 확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도시적 스케일에서 혁명 광장을 건설하고 수많은 혁명의 상징물을 세웠다.
상징적인 탑이나 동상, 거대 조형물은 그들의 사상을 전파할 완벽한 가상적인 존재였다. 이때 공산주의자들은 새로운 사회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유럽의 전통 스타일과 동양의 스타일을 혼합하기도 했고, 러시아 구축주의(Russian Constructivism, 1920년대 러시아에서 주류를 이룬 전위예술 운동으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형식을 특징으로 하지만, 산업적 재료와 실용성을 추구하며 예술이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표명)를 제안하기도 했다.
공산주의는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보다 훨씬 더 큰 가상적 공간의 스케일을 다뤘으며, 전 세계의 인류 중 핍박받던 하층민들이 중심이 되는 가상적 객체를 다뤘다. 이러한 가상성에 기초한 사회, 정치, 경제 시스템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면서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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