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안’으로 인도 간 삼성전자, 기다린 건 강성 노조
인도 타밀나두주(州) 첸나이에 있는 삼성전자 가전 공장 주변에선 지난 9일부터 파란색 삼성 유니폼을 입은 직원 수백명이 출근을 거부한 채 3주 가까이 천막 시위를 벌이고 있다. 25일 기준으로 17일째다. 첸나이는 삼성전자가 TV·냉장고·세탁기 등을 생산하는 인도 가전 핵심 기지로 제조 인력 20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현재 임금 인상과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인력은 1000여 명이다. 첸나이는 삼성전자의 인도 연매출 120억달러(약 16조원) 가운데 19%를 차지하는 주요 시설로, 현재 일부 직원이 업무에 복귀하긴 했지만 여전히 강성파는 “무기한 파업”을 주장하고 있어 사태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무리한 요구 앞세워 장기 파업
글로벌 기업들은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의 인건비 상승 등을 피해 인도를 새로운 대안으로 보고 진출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도 1995년 인도에 처음 진출한 이후 스마트폰, 가전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지속 확장해왔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저임금, 평균연령 28세의 젊은 노동력을 갖춘 매력적인 생산 기지였던 인도는 최근 현지 강성 노조의 파업이 잇따르며 기업들의 ‘아픈 손가락‘이 되고 있다.
삼성에 따르면, 현재 월평균 3만5000루피(약 55만원)를 받고 있는 첸나이 공장 제조 인력들은 3년 내 100% 이상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3년간 월 3만6000루피씩을 추가로 인상해 달라는 것이다. 동시에 현재 주 6일 48시간 근무 체제를 주 5일 35시간으로 줄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도는 노동법상 소정 근로시간이 주당 48시간이다. 근무시간을 주당 13시간 줄이는 동시에 임금은 2배로 올려달라는 주장이다. 첸나이 지역 제조 인력의 평균 임금은 1만9000루피로, 이미 삼성 직원들은 그 1.8배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삼성 측은 설명했다. 이 외에 직원 사망 시 해당 직원의 가족을 채용하고, 사립학교 학비 지원 연간 5만루피 등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파업은 인도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현지 강성 노동단체 인도노동조합센터(CITU) 산하의 SILWU(삼성인도노동복지조합)가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파업 현장에는 망치와 낫이 그려진 붉은색 공산당 깃발이 내걸려 있다. 현지 기업 관계자는 “인도는 상급 노조 간 경쟁이 치열한데, 강성파인 CITU는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앞세워서 노동자를 끌어모으고 파업을 주도한다”며 “현지 진출 글로벌 기업들에 아주 위협적인 존재”라고 했다. 현대차, 롯데 등 인도 지사에도 이미 CITU 배후의 노조들이 설립돼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노조 상대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 대체 인력 투입 등을 통해 버티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생산·경영 차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인도 내부서도 “글로벌 경쟁력 저하” 목소리
인도는 제조업 육성 정책인 ‘Make In India’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앞세워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했다. 한국도 1980년부터 2023년까지 총 106억3000만달러(약 14조원)를 투자하며 대(對)인도 투자국 가운데 13위에 올랐다. 현지 진출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이 인도에 투자한 것은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 거대한 내수 시장의 매력 때문이었다”며, “지금처럼 대규모 노사분규가 지속되고 임금이 급격히 올라가면 투자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삼성뿐 아니라 이미 수많은 글로벌 기업은 강성 노조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차에는 2007년 CITU를 배후로 한 비공식 노조가 설립됐다. 이후 임금 인상과 해고 노동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2010년 생산 라인 점거, 2012년과 2019년 파업에 이어 올 7월에도 조업 거부가 발생했다. 수익성이 없다며 현지에서 철수한 GM의 공장을 인수할 때도 GM 노조가 추가 보상을 요구하며 반발해 계약에 진통을 겪기도 했다.
포스코 마하라슈트라주 공장은 지난 2021년 직원들의 임금 인상, 지역 주민들의 채용 요구로 몸살을 앓았다. 이들은 직원들의 출입과 물품 반입을 방해해 자동차용 철강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롯데의 첸나이 초코파이 공장에서도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수개월간 파업을 벌였다. 이륜차를 만드는 일본 야마하, 애플용 충전기를 생산하는 미국 플렉스 등 여러 기업도 임금 인상, 노조 인정 등의 문제로 이미 파업을 비롯한 노사 갈등을 겪었다. 현지 업체 관계자는 “인도는 지방정부의 힘이 세서 중앙정부가 통제하기 어렵고, 지방정부도 선거 표를 의식해 기업보다 노동자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노조 갈등을 가장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 현지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도 매체 파이낸셜 익스프레스는 “인도 전자 제조 산업이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시기에 발생한 이 같은 산업 불안은 글로벌 기업들에 나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도 싱크탱크 조직인 GTRI도 “노조 파업 문제로 글로벌 제조 강국이 되려는 인도의 야망이 위기에 처했다”며 “인도 내 일자리가 감소하고 제조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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