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미납, 10년간의 갈등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의 공동 개발 파트너십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6년 1월 KF-21 개발비의 20%인 약 1조 7,000억 원을 2026년 6월까지 부담하기로 약속했으나, 경제 사정을 이유로 수차례 미납하며 한국의 속을 태워왔다.
2017년부터 지속적으로 분담금 납부를 미뤄온 인도네시아는 2024년 5월에는 아예 분담금을 깎아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2025년 6월 한국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분담금을 기존 1조 6,200억 원에서 6,000억 원으로 3분의 2나 삭감하는 개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인도네시아는 2025년에 5,000억 원을 납부했고 1,000억 원이 남아 있지만, 그 대가로 원래 받기로 한 시제 5호기조차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됐다.

UAE, 21조 원 들고 한국을 찾다
인도네시아가 분담금 문제로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며 한국의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자금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모두 갖춘 UAE(아랍에미리트)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2025년 8월 이브라힘 나세르 모하메드 알 알라위 UAE 국방차관이 한국을 방문해 KF-21 시제기 후방석에 직접 탑승했고, 11월 이재명 대통령의 아부다비 방문 시 양국은 150억 달러(약 21조 3,000억 원) 규모의 '완성형 가치사슬 파트너십' 모델에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니라 공동 개발, 현지 조립, 미래 파생형 공동 수출까지 포함하는 전방위 협력이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협력 모델 구축으로 150억 달러 규모 이상의 방산 수출 사업에 우리 방산 기업의 수주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언론 "UAE에 자리 빼앗기나" 위기감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은 UAE의 급부상에 위기감을 표출하고 있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언론들은 "KF-21 사업에서 밀려날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며, UAE가 인도네시아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 개발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는 애초 총 개발비 약 8조 원 중 20%인 1조 6,200억 원을 부담하는 대가로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확보하기로 했으나, 분담금 삭감으로 시제 5호기 인수 권한을 상실했다. 반면 UAE는 한국이 제시한 '100대 + 50대' 규모의 도입 방안을 검토 중이며, 1단계 40대 도입의 계약금만 45억 달러(약 6조 4,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인도네시아가 수년간 미적거린 분담금 6,000억 원의 10배가 넘는 금액이다.

UAE와 인도네시아, 무엇이 다른가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는 '자금력'과 '파트너십 모델'에 있다. 인도네시아는 경제난을 이유로 분담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단좌형 시제기 대신 복좌형 전투기를 요구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반면 UAE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 중 하나를 보유한 오일머니 강국으로, 프랑스 라팔 80대에 184억 달러를 이미 지출했음에도 추가로 KF-21에 1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여력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협력의 질이다. 걸프인터내셔널포럼에 따르면 UAE는 단순 구매국이 아니라 KF-21 블록 3 이후의 공동 개발 파트너까지 노리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기술 습득에만 관심을 두고 실제 투자는 꺼렸다면, UAE는 현지 조립 공장, MRO 센터 공동 투자, 제3국 공동 수출까지 포괄하는 진정한 산업 파트너십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 동남아에서 중동으로
이번 사태는 한국 방산의 무게중심이 동남아에서 중동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파이낸스에 따르면 국방부가 2025년 4월 UAE와 'KF-21 포괄적 협력 의향서(LOI)'를 전격 체결한 것 자체가 분담금을 안 내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경고 메시지였다. 한국 입장에서 UAE는 인도네시아보다 몇 배나 매력적인 파트너다.
첫째, 자금난이라는 고질적 리스크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중동이라는 거대한 수출 거점을 확보해 사우디, 카타르, 쿠웨이트 등으로의 도미노 수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UAE가 요구하는 기술 이전과 현지화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시장과 공급망을 열어준다. K-방산 전문가들은 "UAE와의 협력이 성사되면 인도네시아가 속을 끓이며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도 생산 슬롯이 없어 못 살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KF-21, 글로벌 프로젝트로 격상되다
결국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미납 사태는 역설적으로 KF-21을 더 큰 무대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2025년 4월 체결된 한·UAE 포괄적 협력 의향서를 바탕으로 양국은 KF-21의 단순 도입을 넘어 공동 개발국 지위까지 논의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성사된다면 KF-21은 한국-인도네시아의 지역적 프로젝트에서 한국-UAE-잠재적 중동 국가들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격상된다.
KOTRA에 따르면 양국의 협력 프레임은 KF-21의 공동 개발, 현지 조립, 미래 파생형 공동 수출까지 포함하는 총 150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 방산 협력이다. 이는 한국 방산 역사상 단일 프로젝트로는 최대 규모이며, 인도네시아가 10년간 미적거린 사이 UAE가 21조 원을 들고 한국의 문을 두드린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