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강 데이터' 책임지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여러분이 국민건강 국가대표"

서울 성북구 소재 교회 주차장에 국민건강영양조사 차량이 정차돼 있다./사진 제공=질병관리청

“오늘이 이 지역 국민건강영양조사 마지막 날이에요. 다음 주엔 인천 중구로 갑니다.”

서울 성북구 인근 한 주차장. 일반 버스보다 압도적으로 큰 버스 두 대가 자리하고 있다. 차량 외부 한 켠에는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라고 쓰여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이곳에 상주했던 이 버스는 이제 인천광역시로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소재 교회 주차장에서 ‘질병관리청 건강조사 기자단 아카데미’가 열렸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국민에게 알려 참여를 독려하자는 취지다. 직접 건강조사를 체험해 보며 현장 목소리를 들어봤다.

버스 2대로 권역 돌며 매년 국민건강조사

국민건강영양조사는 질병관리청에서 국민건강증진법 16조에 의거해 국민의 건강 및 영양상태를 파악해 통계를 생산하고 국가건강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수행하는 법정 조사다. 1998년 조사가 도입되고 3~4년마다 한 번씩 진행했지만 2007년부터는 매년 시행하고 있다. 매년 약 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조사 수행팀은 버스 2대당 1개조로 구성돼 총 8대, 4개조가 전국 권역별로 활동한다. 1개조당 인원은 총 11명으로 질병관리청 질병대응센터 소속 조사원 8명, 의사 2명, 방사선사 1명이 조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조사 수행팀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간 해당 지역에 머문다. 첫째 날은 조사를 위한 세팅을 진행하고 2박 3일간 검사가 진행된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접수 및 동의를 실시한다. 참여 대상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즉 아무나 검진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참여 대상은 국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전국에서 선정된 4800가구, 약 1만명이다.

대상자 선정은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먼저 표본추출틀을 선정하고 17개 시·도 중 동·읍면, 거주 환경(주택, 아파트 등)을 구분한다. 이후 192개의 조사구를 추출해 각 25가구씩을 선정한다. 이들은 약 1/4800의 경쟁을 뚫고 선정된 ‘대한민국 건강조사 국가대표’인 셈이다.

골밀도·영양검사 등 일반 건강검진보다 종류 다양

폐기능검사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 제공=질병관리청

"더더더더, 최대한 온 힘을 다해 빠르게 부셔야 해요."

조사 버스 안에선 조사원이 폐기능 검사를 진행 중인 조사대상자를 독려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버스 내부는 밖에서 본 압도적인 크기와 달리 협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시행하는 조사의 개수가 많기 때문이다. 웬만한 일반 건강검진보다 훨씬 다양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크게 검진, 건강설문, 영양 등 3개로 이뤄진다.

혈액검사(위)와 골밀도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질병관리청

검진조사는 올해 기준 △신체계측 △구강검사 △혈압 및 맥박측정 △소변검사 △혈액검사 △자동굴절검사 △체성분검사 △악력검사 △골밀도검사 △폐기능검사 등 총 10개로 이뤄진다. 다만 나이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검사가 다르다. 신체계측은 1세 이상의 검진자 누구나 받을 수 있지만 혈액·소변검사는 10세 이상, 악력·체성분·폐기능·골밀도검사는 40세 이상만 가능한 식이다.

신선했던 점은 골밀도와 폐기능검사였다. 대부분 검사는 일반 건강검진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검진들은 받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데 심지어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검사들이 무료라고 해서 허투루 이뤄지지 않는다. 예컨대 비교적 쉽게 검사가 가능한 혈압 및 맥박측정도 정확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5분 안정 후 실시한다. 개인적으로 참신한 충격이었다.

검진조사 종류 중 일부는 때때로 변경된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가 요구하거나 시기에 따라 필요한 조사를 넣거나 뺀다. 골밀도검사가 그 예다. 골밀도검사는 대한골대사학회와 협력 계약을 통해 올해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시행된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국민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비인후질환조사를 실시했다.

구강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질병관리청

건강설문은 성별, 연령대, 세대 유형 등 가구 조사를 실시한 후 연령대에 맞게 건강 관련 조사를를 진행한다. 검사는 전문 조사원이 개별 면접하는 방식과 자기기입조사로 이뤄진다.

영양조사에선 국민의 영양상태를 파악한다. 식사 내용 및 섭취량, 식습관 등을 면접 방식 조사를 통해 시급한 영양문제를 파악하고 영양관리 방안 마련 등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생산한다.

이민아 질병관리청 만성질환관리과 팀장은 최근 변화하는 60세 이상 국민의 식습관과 식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르신 세대에서도 배달·포장음식을 포함한 외식의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여기에 식사 동반 여부도 1인 가구가 아님에도 혼자 먹는 횟수 역시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건강 정책에 활용..."보람 있지만 현장 고충도 존재"

한 시간을 훌쩍 넘겨 검사 체험이 마무리됐다. 조사는 나이대와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1시간~1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관계자들은 아침 6시부터 8시까지가 검진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바쁜 시간대라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건강증진·만성질환 정책 목표 설정 및 효과 평가, 건강 수준의 국제 비교, 질병 예방 및 연구 등 국민건강에 관한 모든 곳에 기초자료로 쓰인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민건강영양조사를 소개한 논문이 사회과학일반분야 중 피인용수가 가장 높은 논문으로 선정됐다. 2020년 우리나라 사회과학일반분야 최다 피인용 논문으로 처음 선정된 이후 올해까지 5회 연속 선정이다.

이 팀장은 “이렇게 쌓인 데이터가 국민건강과 관련된 모든 연구 및 정책에 원시 자료로 쓰이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조사 대상자분들도 나라를 대표한다는 긍지를 가지고 꼭 편리하게 건강검진을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보람도 있지만 현장에선 고충도 분명 존재한다. 연중 상시조사 탓에 수행팀은 1년 중 절반 정도를 외부, 그것도 계속 이동하며 근무해야 한다. 최대한 직원의 상황에 맞춰 조사팀을 꾸리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의원면직, 부서 이동 등 이탈자도 발생한다.

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국민 참여 독려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해당 지역 주민센터 및 통장 등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도움을 요청한다고 했다. 또 수행 버스 크기가 워낙 커 조사 장소 섭외도 늘 고민이다.

조사 참여자는 국민건강영양조사의 결과를 4~6주 후에 우편이나 문자 메시지 등으로 받을 수 있다. 조사가 끝나면 답례품으로 주는 최대 4만원 상당의 상품권도 잊지 말고 챙겨야 한다.

천상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