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 빚은 북한여성들의 슬픔·좌절·희망… 150명 심층 인터뷰[출판평론가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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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창비)는 분단의 현실 속에 '가부장제의 억압과 체제 경쟁의 최전선'을 살아낸 여성들의 삶을 직조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과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수많은 북한 여성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온 저자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북조선 여성으로서의 공통된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적극적인 행위 주체성을 발현"하는 한 개인으로서 "나름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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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창비)는 분단의 현실 속에 ‘가부장제의 억압과 체제 경쟁의 최전선’을 살아낸 여성들의 삶을 직조한다. 저자는 서두에서 안보가 최상의 가치였던 시대의 자화상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감”을, 이어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거리감”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한다. 이런 상황은 내일을 담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과 미래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수많은 북한 여성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온 저자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북조선 여성으로서의 공통된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적극적인 행위 주체성을 발현”하는 한 개인으로서 “나름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들이 쏟아낸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의지와 좌절”에는 “국가와 개인, 과거와 현재, 가부장제와 어머니 노릇” 등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켜 있지만, 결과적으로 “분단의 폐해”에 적잖은 기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우선 북한 매체에서 선전을 목적으로 소개한 인물들을 조명한다. 그중 “천리마 노동영웅” 길확실은 1959년 5월 “생산 현장의 노동자와 기술자가 생산활동의 질적 제고”를 위해 시작한 ‘천리마작업운동’에 참가했다. 놀랍게도 그녀가 담당한 작업은 두 달여 만에 ‘천리마 작업반’ 칭호를 얻었다. 생산율 70%, 출근율도 78%에 머물던 작업반은 그녀의 “의식사업, 군중 문화사업, 정치사업 등을 통해서” 불과 수개월 사이에 출근율 100%, 생산계획 달성률 140%에 이르렀다. 그 공로로 길확실은 1960년 3월 국제부녀절(세계 여성의 날)에 김일성 수령을 만나기도 했다. 저자는 길확실의 수기를 재해석하면서 “식민지 시기,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국가건설기가 중첩되어 있는 시기”를 살아낸 북한 여성들의 내적 갈등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2년 만난 순영 할머니는 “북조선 여성들의 일자리와 그들이 잠시 기거할 만한 곳을 알선”해주는, 북한 커뮤니티에서 중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1960년대 초반 북한에 정착했지만 “우리 조선 여성”이라는 말로 북조선 여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청진제강소 노동자를 시작으로 무려 68세까지 직장생활을 한 강인한 여성인 순영 할머니는 조선로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에도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남한에 정착했고, 여전히 적잖은 돈을 북조선 자녀들에게 송금했다. 중국에서의 호기로운 모습은 오간 데 없었지만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더 약한 타자를 돌아보는 것의 숭고함”만은 변함이 없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저자가 북·중 접경을 다니며 오랜 시간 15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한 끝에 완성한 책은 분단의 현실과 우리가 함께 열어가야 할 미래를, 과거와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북한 여성들의 눈을 통해 매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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