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만 웃고 D램값 제자리...삼성전자에 쏠린 눈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웨이퍼가 가공되고 있다. /사진 제공=SK하이닉스

인공지능(AI) 수요에 힘입어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반면 범용 D램은 가격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다. 범용 D램의 매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는 HBM 사업화 지연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애초 계획한 공격적인 HBM 공급 확대 역시 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내년 HBM3E(5세대) 12단에서 성과를 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4분기 HBM을 제외한 범용 D램의 가격 상승 폭이 0~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직전분기 8~13%의 성장률에 비해 가격 변동이 정체되는 흐름이다. 서버용 D램의 오름세가 둔화하고 개인용컴퓨터(PC)와 스마트폰용 D램 가격은 전방수요 부진으로 직전분기와 비슷하거나 하락하면서 하방 압력이 커진 결과다.

서버용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가격은 올 3분기 13~18%에서 4분기 3~8%로 성장세가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용 저전력(LP) DDR5X, PC용 DDR5는 전 분기와 비슷한 가격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D램 공급 업체들은 HBM에 집중된 생산능력을 근거로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스마트폰과 PC 제조사들은 유리한 계약 가격을 확보하기 위해 소극적인 구매전략을 펴고 있다고 트렌드포스는 분석했다.

범용 D램 가격이 다시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HBM과의 양극화가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HBM을 포함한 전체 D램의 가격 상승 폭은 3분기 10~15%에서 4분기 8~13%로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범용 D램의 낙폭은 8%p지만 HBM을 포함하면 2%p로 줄어든다. HBM이 시장에서 범용 D램 대비 고부가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전체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는 양상이다. HBM이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기 6%에서 4분기에 7%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시장조사 업체의 전망도 비슷하다. 옴디아는 4분기 서버용 64GB(기가바이트) DDR5 모듈 가격이 전 분기 대비 4.8% 상승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직전분기의 21.6%에 비하면 성장세가 크게 둔화된다. 이어 4분기에 스마트폰용 8GB LPDDR5는 3.9% 하락하고, PC용 16GB DDR5 모듈은 보합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D램 가격 동향 /자료 제공=트렌드포스

하지만 HBM은 내년에도 높은 수요에 비해 제한적인 생산량 증가세를 보이며 가격 상승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범용 D램 시장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옴디아는 내년 D램 시장 규모가 역대 최대인 1200억달러(약 163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에는 엔비디아의 신규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공급된다. 벌써 1년치 판매가 예약됐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반도체에는 HBM3E 8단과 12단이 채용될 예정이다. HBM이 신제품인 HBM3E 8단과 12단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평균판매가격(ASP) 상승세 역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HBM3E 공급을 본격화하지 못한 상황이다. 마이크론 역시 생산능력 제약과 수율 문제가 있어 사실상 SK하이닉스의 독무대가 이어지고 있다. 범용 D램을 중심으로 가격 둔화가 가시화되는 상황은 HBM 매출이 빈약한 삼성전자에는 부담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하반기 공격적인 HBM3E 공급을 예고했지만, 엔비디아의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최근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이후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 명의로 발표된 성명에서도 HBM3E의 사업화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됐다.

앞서 삼성전자는 내년 업계를 선도하는 생산능력 확보를 목표로 올해 대비 2배 수준의 공급확대를 계획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은 수율 개선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생산능력을 갖추더라도 실제 공급량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며 "삼성전자가 생산능력을 앞세우기보다 수율과 품질 개선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HBM 투자계획도 조정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생산능력 확보를 위해 예고된 내년 HBM 생산 목표를 약 10% 하향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HBM3E 공급확대 역시 내년에 수요가 늘어날 12단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진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