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KOVO컵 우승! 최다 6회!

대한항공이 또 한 번 ‘정답’을 보여줬다. OK저축은행을 3-0으로 꺾고(25-21, 25-23, 25-16) 3년 만에 KOVO컵 정상 복귀, 남자부 최다 6번째 우승. 스코어는 깔끔했고, 내용은 더 단단했다. 무엇으로 이겼는지, 무엇을 남겼는지가 뚜렷한 우승이었다.

먼저 코트 위 이야기부터 짚자. 결승 1세트는 팽팽했다. 18-19로 뒤지던 순간, 대한항공은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통째로 가져왔다. 전광인의 오픈과 송희채의 후위를 연달아 막아내며 22-19. 그 한 번의 ‘벽’이 세트를 갈랐다. 2세트도 비슷했다. 19-19에서 김민재의 블로킹이 다시 흐름을 바꿨고, 끝은 상대 서브 범실로 마무리. 마지막 3세트는 14-13에서 속공-오픈-세터 한선수의 블로킹까지 3연속 득점이 터지며 일찌감치 승부가 기울었다. 결승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간단했다. “서브로 흔들고, 블로킹으로 틀어막고, 연결은 한선수가 잡는다.” 교과서 같은 배구였다.

개인 퍼포먼스도 탄탄했다. 임재영이 서브 에이스 3개를 포함해 최다 15점, 김준호와 서현일이 나란히 13점. 그리고 MVP는 당연히 한선수였다. 속도를 무리하게 끌어올리지 않으면서도 타이밍을 한 박자씩 앞서게 만드는, 그 노련함이 결승 내내 빛났다. ‘라이징 스타’로 뽑힌 김준호는 말 그대로 물이 올랐다. 어려운 볼에서도 과감했고, 결정 포인트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이게 컵대회의 가장 큰 수확이다. 베테랑은 본대로 해주고, 젊은 자원은 한 단계 올라오는 것. 팀이 새 시즌을 낙관할 근거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이 우승의 더 큰 의미는 코트 밖에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4연속 통합우승’의 질주를 멈추고, 챔프전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 후 꺼낸 카드는 ‘리셋’이었다. 핀란드 출신 틸리카이넨과 작별하고,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었던 레전드 헤난 달 조토 감독을 초빙했다. 그리고 강도 높은 훈련과 밤샘 분석으로 팀을 다시 깎아 만들었다. 한선수의 표현대로 “물 마실 틈도 없을 만큼” 밀어붙인 두 달. 훈련이 끝나면 다들 말없이 엎드려 숨만 돌릴 정도였다. 그 과정이 결승 사흘 연전(준결승-결승)에서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증명됐다. “강팀은 체력만큼 멘털도 끝까지 유지한다”는 헤난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전력분석 역시 집요했다. 준결승 전날 밤, 삼성화재를 한 번도 직접 상대해보지 못한 공백을 영상으로 메웠고, 경기 후에는 곧바로 숙소로 복귀해 OK저축은행 자료를 재정리했다. 결승 당일 기자회견에 5분 늦게 들어온 이유도 분석 회의 때문이었다. 이런 과한 디테일이 결국 1·2세트의 미세한 승부처에서 작은 우위를 만들어냈다. 컵대회 같은 단기전에서는 이런 1~2포인트의 경험치가 곧 트로피다.

물론 이번 대회는 ‘파행’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과 일정 충돌로 외국인·아시아쿼터, 세계선수권 참가·예비 엔트리의 주축 여러 명이 뛸 수 없었다. 나콘라차시마의 귀국, 현대캐피탈의 중도 하차까지 겹치며 순수 국내진 위주의 ‘테스트 무대’가 됐다. 그렇다고 우승의 값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환경에서 드러나는 건 팀의 뼈대다. 대한항공은 뼈대가 더 굵고, 더 건강했다. 세터를 중심으로 한 연결, 서브-블로킹의 시스템, 그리고 백업의 경쟁력. 그게 리그로 이어지는 힘이다.

OK저축은행도 박수받아야 한다. 부산으로 연고를 옮긴 뒤 신영철 감독과 첫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왔다. 송희채, 신장호가 이끌고, 팀 전체가 끈기를 보여줬다. 다만 감독 스스로 말했듯 ‘속공’이 당장 풀어야 할 과제다. 중앙이 살아나야 사이드가 쉬워지고, 랠리가 길어질수록 범실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컵대회의 교훈을 시즌 개막까지 얼마나 촘촘히 채우느냐가 관건이다.

대한항공의 다음 숙제는 ‘세대교체의 속도 조절’이다. 한선수, 곽승석, 정지석으로 상징되는 황금 코어를 그대로 의지할 수는 없다. 이번 컵대회는 리그에서 쓸 새 카드들—김준호, 서현일, 김선호, 임재영—이 실제로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였다. 헤난 감독이 말했듯, “마무리 해줘야 하는 공격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번엔 그 용기가 나왔다. 이제는 이 용기를 긴 시즌 동안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드는 게 코칭스태프의 일이다. 체력, 멘털, 역할 합의(세트 초반·중반·클러치의 볼 배분)를 더 정교하게 설계하면, 대한항공은 다시 ‘봄 배구의 주인공’ 자리에 서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승을 통해 확인한 키워드를 다시 정리해보자. 대한항공은 강한 서브, 높은 블로킹 조직, 침착한 연결, 두꺼워진 벤치로 이겼다. 여기에 미친 듯한 훈련, 집요한 분석, 뚜렷한 세대교체 방향이 결합했다. 성과와 과정이 맞물린, 보기 드문 ‘완성형 컵 우승’이다. 컵대회 최다 6회라는 타이틀은 숫자 이상의 뜻을 갖는다. 2007년에 시작된 그 역사가 2025년에 다시 이어졌고, 그 사이 팀은 여러 번 얼굴을 바꾸면서도 ‘대한항공다움’을 잃지 않았다.

시즌은 곧 시작이다. 컵대회는 성적표가 아니라 예고편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대한항공의 예고편은 충분히 설렜다. 강해진 기본기, 새로워진 활력, 더 단단해진 마음가짐. 이 세 가지가 리그에서도 유지된다면, 대한항공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설 것이다. 그리고 팬들은 또 한 번, 한선수의 침착한 손끝과 젊은 선수들의 과감한 스윙이 만드는 ‘항공 배구’를 즐길 준비를 하면 된다. 리셋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실행만 남았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