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 브레이커] M&A 거래에서 비밀유지계약 체결 시 고려 사항
고효정·채수평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인수합병(M&A) 딜 브레이커(Deal Breaker) 사유가 될 수 있는 법률 이슈를 전합니다.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 당사자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체결되는 계약은 무엇일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들의 경험상 초기 단계에서는 양해각서(MOU)와 비밀유지계약(NDA)을 맺는 경우가 많다.
사실 NDA는 M&A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거래관계에서 폭넓게 이용된다. 계약 당사자들 사이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밀이 오가게 되면 당연히 NDA가 따라오는 것이 수순이다. 그렇다면 M&A 거래 과정에서 체결되는 NDA에는 주로 어떠한 내용이 들어가고, 일반적인 NDA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도록 하자.
비밀유지계약의 주요 내용
우선 일반적으로 NDA에서는 비밀정보의 이용 목적을 한정한다. 계약 당사자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이유가 무엇인지 명시함으로써, 그 범위를 넘어서는 비밀정보의 사용은 계약 위반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M&A 과정에서 체결되는 NDA에는 거래의 대략적인 구조(예를 들어 경영권 인수, 신규 투자 유치 등)가 언급되며, 그에 수반되는 가치평가와 실사를 위해 정보가 제공된다는 점이 명시된다. 그외의 목적으로 정보를 이용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둘째, 비밀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자의 범위가 제한된다. M&A 계약에서는 특히 비밀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을 꼼꼼하게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를 받아보는 대상에 국내외 계열회사 소속 인원, 유한책임사원(LP) 등 외부 투자자나 인수금융 기관을 포함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전문가(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 등 자문사)를 활용할 경우 개별 전문가로부터 비밀유지 서약을 받을지, 정보를 받는 인원을 특정인으로 리스트업해 제한할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정보보호의 필요성이 클수록 비밀정보를 제공받는 자를 더 엄격하게 규정한다.
셋째, 비밀정보의 반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 M&A 딜이 중단되는 경우 기존에 제공된 자료들을 어떻게 반환하고 폐기할지를 구체적으로 정한다. 당사자들이 M&A에 관한 본계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하더라도 NDA를 거래 종결 전, 혹은 그후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기간에 적용되는 정보의 보관이나 반환에 관한 사항도 고려해 별도 규정을 두게 된다.
넷째, NDA는 특수한 형태의 손해배상이나 위약벌 조항을 함께 두는 경우가 많다. 비밀정보가 유출됐을 때 정보제공자의 손해 규모를 직접적으로 추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M&A 과정에서는 우호적으로 거래를 진행하기 위해 일반적인 손해배상 조항 외에 다른 손해배상 또는 위약벌 조항을 두지 않고 NDA를 맺기도 한다. 반면 비밀유지가 상당히 중요한 거래에서는 특정 비밀정보의 유출에 대한 위약벌을 강하게 규정하기도 한다.
M&A 과정에서 체결되는 NDA는 통상적인 NDA에 포함되는 내용과 함께 M&A 거래의 특성을 감안한 조항들로 구성된다. 이는 어느 정도 정형화돼 있으며, M&A 기회에 자주 노출된 기관투자가들은 별도 양식을 마련한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M&A 거래 당사자들은 NDA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형적인 계약이라는 이유로 검토를 소홀히 하면 여러 이슈를 놓칠 수 있다. M&A 과정에서 비밀유지의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 때 문제되는 법적 문제들을 살펴봐야 한다.
건점핑과 정보교환 담합 우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부분은 ‘건점핑(gun jumping)’이다. 건점핑은 달리기 경주에서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있기도 전에 뛴다는 뜻으로,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이 이뤄지기 전에 거래가 종결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경쟁당국은 기업결합 승인 전까지는 거래가 종결된 것처럼 행동하는 행위 전반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합병 당사회사 사이에서 가격, 거래처 리스트 등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거나, 인수후통합(PMI) 작업을 위해 여러 계약을 선제적으로 체결하고 이행하는 행위들은 금지될 수 있다.
해외 매출이 있는 회사 간에 M&A를 추진할 때는 건점핑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지 충분히 검토해 NDA를 체결해야 한다. 건점핑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실무상 ‘클린팀’을 따로 두고 그 내용을 NDA에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클린팀은 가격, 생산 물량, 가동 능력 등 경쟁상 민감할 수 있는 정보를 제한된 인원에 한해 한정된 목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물론 클린팀의 합의로 건점핑 이슈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보의 접근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비밀정보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각국의 규제를 준수할 수 있다.
클린팀에는 매수인의 임직원과 외부 자문사 중 한정된 인력만 참가하며, 이들은 클린팀 구성원이 아닌 자에게 비밀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클린팀에는 제한된 시간 동안 현장 데이터룸 접근을 허용해 출력된 자료(hard copy)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클린팀에 참여했던 자는 M&A 종료 이후에도 일정 기간 경쟁 사업자의 판매, 마케팅, 원재료 구매 및 조달 등 특정 업무에 종사하지 못한다.
현행 한국 공정거래법은 사전기업결합신고 대상인 M&A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 전에 기업결합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막고 있으나, 그 전에 정보교환이나 PMI 행위를 차단하는 규제를 두고 있지는 않다. 다만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들이 M&A를 추진하면서 정보를 교환할 때는 ‘정보교환 담합’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 간 정보교환이 개입된 부당한 공동행위 심사지침'에 따르면, 사업자 간에 “가격, 생산량, 상품·용역의 원가, 출고량, 재고량, 판매량, 상품·용역의 거래조건 또는 대금·대가의 지급조건”을 교환하기로 합의한 것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라면 담합 규제의 대상이 된다.
상장회사 M&A와 공정공시
상장회사의 M&A를 추진하는 경우에는 공정공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NDA를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 공정공시제도는 상장회사가 공시되지 않은 중요 정보를 기관투자가 등 특정 대상에 선별적으로 제공하려 할 때 이를 공시하도록 해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다. 상장회사의 경우 M&A 거래 추진 사실 자체가 공정공시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M&A 과정에서 주고받는 정보가 아직 공시되기 전이라면 마찬가지로 공정공시 이슈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M&A를 위한 NDA를 명시적으로 체결하고 기업 정보를 잠재적 매수자에 제공한다면 이는 공정공시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보게 되므로 NDA가 필수적이다.
기존에 체결한 계약상 비밀유지의무 위반 우려
대상 회사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해 비밀유지 의무를 지는 경우가 많다. 거래관계에서 체결되는 대부분의 계약에 비밀유지 약정이 포함돼 있고,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NDA가 자주 활용되기 때문이다. 회사가 거래 또는 사업 관련 정보를 잠재적 인수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계약 위반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회사가 거래 계약을 잠재적 인수인에게 공개하기 전에 거래계약의 상대방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하거나 면책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M&A 거래 당사자 사이에 강도 높은 NDA가 체결되므로 그에 따라 비밀이 제한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신뢰하고 상대방의 동의 없이 거래계약을 잠재적 인수인에게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에서 비밀유지가 매우 중요한 거래 계약이거나, 계약 상대방이 비밀유지에 상당히 민감한 경우라면 M&A 초기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해 리스크를 낮출 필요가 있다. 특정 거래 계약은 클린팀만 접근할 수 있도록 정하거나, 거래 상대방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다.
남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