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고증 부실한 이유 전문가에게 물어봄

이 장면을 보라. 사극을 보다 보면 꼭 등장하는 이런 편지, 보통은 배우가 우리말로 읽어주거나 내레이션, 자막으로 처리하기 마련이다. 과연 제대로 쓰인 걸까. 유튜브 댓글로 “사극에 나오는 문서들은 정말 내용에 맞게 쓰인 건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케바케’다. 방송사가 공들여 만드는 정통 대하사극의 경우 나름 체계적인 고증과 감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대부분 제대로 된 고증을 거쳐 소품이 만들어지지만, 외주 제작사가 만드는 경우는 꼭 그렇진 않다고 한다.

<주몽><정도전> 등 수많은 사극 자문에 참여했고, 지금도 <고려거란전쟁> 자문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에게 물어봤는데 첫째, 대본 단계에서 자문이 포함되는 경우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수부장
“일단은 대본이 기초잖아요. 편지글이나 문서 같은 경우에는 어떤 현감이 조정에 보낼 장계를 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작가 분이) 글을 써주시고 장계 내용 같은 경우에도 대강 중요한 내용은 적어주세요. 적는 과정에서 자문 선생님이 계시면 자문 선생님한테 의논을 하죠.”

둘째, 소품 제작 때 제작팀에서 자문을 반영하기도 한다.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수부장
“소품팀이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품팀이 한문을 잘 모르니까 자문하는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어떤 형식으로 만드는지 해서 소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있고요.”

셋째, 문서가 많이 등장하는 사극은 아예 서예·한문 자문을 따로 두기도 한다.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수부장
“문서 같은 게 많이 들어가면 아예 서예 자문 선생님 모셔 가지고 (먼저) 역사 자문 선생님한테 어떤 문서 형식이라든가 내용 같은 걸 자문 받아서 (그 뒤에) 서예 (자문) 선생님한테 맡겨서 서예 선생님이 작성을 해 주시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런 과정은 잘 지켜지는 경우도 있지만, 외주 제작사가 만드는 작품일 경우는 그냥 제작사 소품팀에서 자문 없이 알아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수부장
"그런 것들을 다 지키는 사극이 있는 반면에 아니면 그냥 소품팀에서 알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요.”

대충 만들다 난리가 난 사례도 있는데, 2021년 KBS2에서 방송된 <달이 뜨는 강>은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서찰 장면에 중국 간체자를 사용했고, 문법마저 현대 중국어식으로 쓰여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 사극은 KBS에서 방영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외부 제작사에서 만든 걸 사와서 방영만 한 것이었다.

근래 들어 시청자의 눈이 더 날카로워지기도 했는데, 글자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 종이 뒷면에 비친 것까지 잡아내는 시청자도 있다고 한다.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수부장
“시청자분들이 먼저 아세요. 요새는 캡처 다 되고 확대 다 되니까 쭉 읽어보다가 말 안 되는 거 있으면 바로바로 잡아내시고”

정통 대하사극은 이런 논란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다. 일반 사극보다 훨씬 철저한 고증을 거치기 때문인데, 이건 애초 기획과정부터가 달라서 가능한 일이다.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 편수부장
“대하사극 같은 경우에는 작가님이 기획하는 게 아니라 회사(방송사)에서 기획을 하잖아요. 회사에서 담당자가 기획을 하고 적당한 작가님 모셔서 공부부터 시작해요.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권위자이신 선생님들 모셔서 수업, 그러니까 공부를 같이 하고 다음에 그 결과물 갖고 토론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준비 기간이 길어요.”

하지만 사극 매니아들에겐 아쉽게도, 근래엔 방송사가 직접 제작하는 게 아니라 외부 제작사가 만들어 방영만 방송국이 하는, 이른바 ‘양산형 사극’ 비중이 늘다보니 고증의 질도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 고증이 철저한 정통사극은 왜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걸까. 결국 돈 문제인데, 일단 정통사극은 제작비 규모 자체가 일반 드라마와 비교불가다. 일례로 일반 드라마 제작 비용이 15~30억원 정도인데, 현재 방영 중인 <고려거란전쟁>은 32부작에 불과한데도 제작비는 270억원 규모다.

<고려거란전쟁> 제작팀 관계자
“현대극에 비해 지방 촬영이 많고, 촬영 준비, 정리 등 촬영 외에도 필요한 게 많습니다. 미디어 제작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기존 대비 두 배 이상의 시간과 비용이 소모됩니다”

<고려거란전쟁> 제작진에 따르면 거란족 의상을 재현하기 위해 국내 미술팀이 몽골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현지를 방문해 자문을 받았고, 무기는 몽골 징기스칸 박물관의 자료를 반영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사극은 제작비 회수 면에서 오히려 다른 드라마보다 근본적으로 훨씬 불리하다. 요즘은 사극에도 중간광고가 붙어서 맥을 끊는데 고려거란전쟁의 주인공급 성장캐릭터인 현종 역할 배우가 중간광고에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는 거다. 

갈수록 정통사극이 사라지는 제작환경이 악순환을 부르기도 한다. 제작비 중엔 소품 비중이 큰데, 예전에는 방송사 자체적으로 사극을 자주 만들었기 때문에 소품을 재활용해 비용을 낮출 수 있었던데 반해, 이젠 제작하는 일 자체가 드물다 보니 그럴 수도 없어졌다. 어찌어찌 돈을 마련한다해도 제작 인력 자체를 구하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이것 역시 악순환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