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면]0.001초라 억울하다? 육상이 답해주는 공정의 잣대

오광춘 기자 2022. 7. 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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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초. 찰나보다도 짧은 시간입니다. 1000분의 1초의 순간이 세계 육상계를 시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앨런은 0.001초의 저주에 빠졌습니다. 허들 남자 110m 결승에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사진=AP연합뉴스)
미국의 데번 앨런이 그 시간의 덫에 걸렸습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허들 남자 110m 결승에서 0.099초의 반응 시간으로 출발대를 박차고 나갔는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그냥 봤을 땐 경쟁자들보다 더 빨리 뛰어나간 느낌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출발선에 놓인 전자기기는 부정 출발 신호를 보냈습니다. 육상 규정상 반응 시간이 0.1초 미만으로 찍히면 부정 출발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0.099초, 기준보다 1000분의 1초 빨라서 바로 실격됐습니다. 0.1초는 인간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출발 총성에 반응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정 출발의 기준점이 됐습니다. 2009년 연구에선 사람은 총성이 울리고 0.08초부터 반응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세계육상연맹의 룰은 여전히 0.1초를 기준점으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앨런은 0.099초의 출발 반응시간을 기록해 실격됐습니다. 출발반응 기준시간 0.1초보다 0.001초 빨랐기 때문입니다. (사진=EPA연합뉴스)
앨런은 결국 뛰어보지도 못하고 트랙을 떠나야 했습니다. 0.001초가 만들어낸 억울한 실격이라는 동정도, 시대에 뒤떨어진 육상 규정의 빈틈을 꼬집는 비판도 이어집니다.
#0.5cm. 손톱만큼 작습니다. 그 두께가 문제였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율리마르 로하스는 세계선수권대회 멀리뛰기엔 나설 수 없습니다. 한 달 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자격을 따냈는데, 그 때 신은 신발이 반칙을 했습니다. 신발 밑창이 기준보다 0.5cm 높았기 때문입니다. 멀리뛰기 신발 밑창 두께는 2cm를 넘을 수 없는데 로하스는 세단뛰기 신발인 2.5cm 높이의 신발을 신었습니다. 밑창이 두꺼우면 탄성이 늘어나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있어 그 기준을 엄격히 제한합니다. 로하스는 그 룰을 어겼습니다. 0.5cm는 다른 선수들보다 불공정한 이점을 얻었다는 지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베네수엘라 로하스는 여자 세단뛰기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멀리뛰기엔 나설 수 없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물론 로하스는 이번에도 주종목인 세단뛰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세계선수권 3연속 우승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육상의 까다로운 규정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룰은 정정당당한 경쟁을 위한, 모두의 약속입니다. 누구나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누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가는지를 겨룹니다. 시대와 맞지 않다고 해도 아직 룰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켜야할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공정'이 시대의 화두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듣는 공정의 기준조차도 그때그때 다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정치의 장에선 신박한 공정의 논리가 정치적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안으로 향하는 기준과 밖으로 향하는 기준이 모호할 때가 있으니까요. 물론 스포츠와 세상은 같을 수 없죠. 그러나 때때로 스포츠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곤 합니다. 불과 0.001초 빨리 뛰어나가서 억울하게 실격된 선수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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