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응원봉이 케이팝에 던진 질문 [콘텐츠의 순간들]

광장의 분노는 비단 ‘불법 계엄령’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기에, 우리는 그 분노에서 다양한 집단의 입장을 경험해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를 형형색색으로 밝힌 ‘아이돌 응원봉’의 불빛은 ‘안티페미니즘’ 정권에 대한 여성 청년들의 분노를 상징하고, 동시에 그들의 문화가 케이팝과 동기화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특정 아이돌의 팬이 되어 ‘팬덤’이라는 작은 사회를 부단히 겪어온 이들에게 케이팝이란 자신이 시민으로 속한 사회의 격변을 감지하는 또 하나의 감각 체계이다.
그러나 응원봉을 흔들고 목청껏 케이팝을 부르는 집회의 풍경과 그 응원봉을 제작해 빛을 유도하던 세계의 침묵을 번갈아 보면 자연스레 질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가 체화한 케이팝은 산업으로서의 케이팝과는 무관한 재전유의 산물일까? 나는 좋아하는 만큼 이해하기 위해 이 야속한 침묵의 원인을 정치적 발언을 탄압하는 여론에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파고들수록 확실해지는 것은 케이팝 ‘업계’가 여전히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을 환원하는 일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연말 가요 시상식만큼 케이팝을 만드는 이와 케이팝을 수용하는 이 사이의 거리를 포착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가수들이 수상 소감을 통해 팬들에게 공을 돌릴 때를 제외하면 요즘 열리는 가요 시상식 대부분은 케이팝 팬들에게서 케이팝을 멀어지게 만드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2024년 11월 열린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net Asian Music Awards·MAMA) 역시 7년 만에 컴백한 지드래곤과 세계적 스타인 브루노 마스와 로제의 ‘아파트(APT.)’ 무대가 개최 전부터 화제가 되었으나, 막상 시상식을 진심으로 즐기는 국내 케이팝 팬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2010년 이후 케이팝 시장의 성장과 함께 ‘국내’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무대를 넓힌 MAMA는 올해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차례, 일본 오사카에서 두 차례 총 세 번에 나누어 시상식을 진행했다. MAMA가 이처럼 해외에서 시상식을 조각내어 개최하는 이유는 해외 케이팝 공연의 티켓 수익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높게는 장당 50만원 내외로 형성된 해외 공연의 티켓 가격은 주최 측에겐 높은 수익과 더불어 ‘다양한 국가의 관객들에게 더 좋은 케이팝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는 명분까지 안긴다. 그러나 정작 국외 케이팝 팬들은 턱없이 비싼 티켓 가격에 원성을 쏟아내고, 섭외된 가수들은 시상식이라는 명목으로 인해 제대로 된 출연료도 받지 못하며 무리한 해외 스케줄을 강행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소외된 국내 케이팝 팬들은 국내 음악 시상식에 대한 신뢰를 접은 상태다. 케이팝 시장의 팽창으로 공연 형태의 가요 시상식은 계속해서 늘어나 현재 언론사, 방송사, 음반 유통사 등이 주관하는 국내 가요 시상식만도 20여 개에 육박한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시상식에 참여할 수 있는 가수는 없다. 그러나 가수와 소속사는 ‘보복 보도’나 ‘출연 제재’가 두려워 쉽게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중이 원하는 시상식의 올바른 ‘권위’
2022년 뉴진스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두루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MAMA에 출연하지 않은 뒤 해당 시상식에서 어떤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이후 뉴진스는 엠넷의 음악 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 출연도 제한당했다. 이렇듯 참석 여부가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이 되다 보니 국내 가요 시상식은 언제부턴가 의미 불명의 상들을 급조해 참석한 모든 이에게 트로피를 주기 시작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대상’을 가려내는 기준 역시 오직 ‘매출’이다 보니, 국내 케이팝 시상식의 수상자와 작품은 대중에게 큰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2024년 MAMA 시상식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은, 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빅 블러(BIG BLUR)’라는 자체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타 장르 콘텐츠에서 낸 음악적 성과를 제대로 포섭하지 못한 대목이다. 2000년대 하이틴 감성을 건드려 신드롬을 일으킨 〈선재 업고 튀어〉는 2024년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다. 원작, 연출, 각본,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좋았기에 가능한 결과이지만, 비교적 기대작이 아니었던 작품이 초반부터 강력한 힘을 얻은 것은 1, 2화 에피소드에 삽입된 김형중의 ‘그랬나 봐’와 윤하의 ‘우산’ 같은 음악 덕분이었다. 그러나 MAMA는 해당 작품이 가진 문화적 추동력을 축소하고 주인공이었던 배우 한 사람의 무대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단편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것은 배우, 방송인으로 구성된 ‘스타’ 호스트와 시상자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안배하는 MAMA 구성 전반에 관한 지적이기도 하다. 시상을 하던 배우 이지아의 랩 공연도 역시 그러하다. 관객과 시청자는 그가 어떤 계기로 그 큰 무대에 설 수 있었는지 끝까지 납득하지 못했다. 시상식의 공정성을 좌우하는 것은 수상 작품에 대한 심사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MAMA는 ‘음악’이 주인공이어야 할 자리를 스타들의 인기로 메우면서 사람들이 시상식에 기대하는 권위를 스스로 훼손했다.
대중이 결국 원하는 것은 시상식의 올바른 권위다. 앨범 판매량과 음원 성적 같은 수치상 결과가 수상을 좌우하지 않는 권위, 작곡·작사·편곡·연주 등 음악의 깊고 넓은 면면을 심사하는 권위, 장르에 관한 폭 넓은 수용으로 케이팝에 갇힌 지금의 시상식을 점차 해방할 수 있는 권위, 과거의 음악들과 부지런히 소통하며 우리 음악의 역사를 두텁게 만들 권위가 필요하다. 케이팝, 나아가 한국 음악 산업의 지속적인 미래는 이러한 권위를 통해 ‘음악’과 ‘대중’이라는 본질에 파고드는 시상식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케이팝을 체화한 우리 세대에겐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음악이 만드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을 대중에게 전하는 고집스러운 잔치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지만 가장 가난한 시상식인 ‘한국대중음악상’은 2024년 20주년을 맞았다. 2017년 해당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를 바로 경매에 부쳤던 가수 이랑은 인디 음악 시상식이지만 한국의 MAMA에 필적하는 타이완 ‘골든 인디 뮤직 어워드(Golden Indie Music Awards·GIMA)’에 참석해 그 규모를 부러워하며 인상적인 스피치를 남겼다. ‘올바른 권위를 가진 시상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알기 위해 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한국은) 밖에서 보면 화려하기만 한 케이팝의 나라이지만 상업 음악과 인디 음악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독립 창작자들의 생존 자체가 무척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언어로 ‘지금’을 이야기하는 창작자들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각자 알아서 생존하기만을 기대하면 안 될 것입니다. 서로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와 창작의 쾌락, 고통을 더 많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의 창작과 성장의 동력은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옵니다. 앞으로도 이 땅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음악을 자주 듣고 싶습니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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