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미국 월드컵. 축구가 한 나라의 희망을 짊어지던 시대, 콜롬비아 대표팀의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자책골 하나로 세계 축구사의 비극적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 그는 총탄에 쓰러져 생을 마감했다. 그 사건은 지금도 ‘축구와 폭력, 그리고 사회적 압력’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1994년 6월 22일, 콜롬비아와 미국의 조별리그 경기. 전반 34분, 미국의 존 하크스가 올린 크로스를 걷어내려던 에스코바르의 발끝에서 공은 엉뚱하게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책골이었다. 이 골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이어졌고, 콜롬비아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았다.
당시 콜롬비아는 월드컵 전부터 다크호스로 꼽히며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팀이었다. 하지만 예상 밖의 패배와 탈락은 국민적 분노와 실망으로 번졌다.
콜롬비아 사회는 마약 카르텔과 불법 도박 세력이 얽힌 혼란의 시기였다. 경기 결과에 거액을 건 조직들은 선수들에게 살해 협박을 가했고, 대표팀 감독은 에콰도르로 피신해야 할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했다. 에스코바르는 경기 후 귀국했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냉담했고, 일각에서는 직접적인 위협이 감지됐다.

1994년 7월 2일 새벽, 메데인의 한 술집. 에스코바르는 여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뒤 주차장에서 차량으로 향했다. 그때 괴한들이 다가왔다. “자살골 고맙다”며 조롱 섞인 말을 내뱉은 뒤, 총성이 울렸다. 범인은 총을 쏘며 매 발마다 “골!”이라고 외쳤다. 에스코바르는 여섯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향년 27세.

범인으로 체포된 이는 전직 경호원 움베르토 무뇨스 카스트로였다. 그는 1995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4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항소와 감형 과정을 거쳐 형량은 26년으로 줄었고, 2005년 모범수로 인정받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불과 11년 만의 석방이었다.

공범으로 지목된 다른 인물들의 신원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범인이 3인조였다고 증언했으나, 수사는 카스트로 한 명에게만 집중되었다. 이 때문에 사건이 축소 처리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마약 카르텔의 배후 개입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았다.

에스코바르의 피살 소식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콜롬비아에서는 수십만 명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FIFA와 국제 언론은 이 사건을 “축구가 폭력에 희생된 비극”으로 규정했다. 그의 죽음은 ‘자살골’이라는 표현 대신 ‘자책골’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의 젠틀맨’이라 불릴 만큼 품성과 실력에서 존경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자책골 하나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폭력과 불법 세력이 장악한 사회 구조 속에서 빚어진 참극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금도 묻는다. 스포츠가 과연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의 무게를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사회는 선수들에게 어떤 책임과 압박을 지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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