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천재' 마이크 트라웃의 시간이 저물어간다

마이크 트라웃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마이크 트라웃(32)이 또 쓰러졌다. 건강하게 시즌을 보내는 듯 했던 트라웃은 왼 무릎 반월판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식이다. 시즌 종료는 아니지만, 복귀일은 미정이다.

트라웃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였다. 10년 넘게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출발부터 범상치 않았다. 신인 자격을 갖춘 2012년에 30홈런 49도루를 달성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30홈런 40도루 시즌을 만든 선수는 14번째. 하지만 신인 선수가 이 기록을 선보인 건 트라웃이 처음이었다. 만장일치 신인왕을 수상한 트라웃은 MVP 투표에서도 1위표 6장을 획득하며 2위에 올랐다.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한 미겔 카브레라가 1위였다.

2012년은 예고편이었다. 이후 트라웃은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4년에는 통산 첫 번째 MVP를 거머쥐었다. 2016년과 2019년에도 MVP를 추가하면서 역사상 10명밖에 없었던 MVP 3회 이상 수상자가 됐다. 당시 27세 시즌이었던 트라웃은 스탠 뮤지얼 다음으로 어린 MVP 3회 이상 수상자였다.

MVP 3회 이상 수상자

7회 - 배리 본즈
3회 - 지미 팍스 / 조 디마지오 / 스탠 뮤지얼 / 요기 베라 / 로이 캄파넬라 / 미키 맨틀 / 마이크 슈미트 / 알렉스 로드리게스 / 앨버트 푸홀스 / 마이크 트라웃


과거 메이저리그는 한 분야에 특화된 선수들도 대우를 받았다. 파워와 스피드, 정확성, 수비 등 골고루 잘하는 선수가 드물었다. 모두가 '파이브툴 플레이어'를 꿈꿨지만, 모두가 파이브툴 플레이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트라웃은 특별했다. 트라웃은 모든 분야에 능한 선수였다. 마치, 야구를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트라웃이 첫 번째 MVP를 받았을 때 돈 베일러 타격코치는 "그의 마지막 MVP 수상이 언제일지 궁금하다"고 말하면서, 트라웃의 전성기가 오래 이어질 것을 우회적으로 암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트라웃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 생겼다.

트라웃의 첫 MVP 트로피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트라웃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 연속 MVP 5위 안에 들었다. 배리 본즈와 앨버트 푸홀스가 MVP 5위 안에 총 11번, 10번 이름을 올렸지만, 트라웃처럼 9년 연속 사수하지는 못했다. 즉,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하려면 트라웃부터 넘는 것이 통과 의례였다. 참고로 2020시즌 트라웃은 아직 30세가 되기 전이었다(28세).

9년간 MVP 투표 순위

1위 - 3회
2위 - 4회
3위 - 0회
4위 - 1회
5위 - 1회


최근 메이저리그는 선수 평가에 '승리기여도'를 적극 활용한다. 승리기여도는 타격과 수비, 주루가 전부 반영된 종합 지표로, 해당 선수가 대체 선수 대비 팀에 얼마나 많은 승수를 안겨줬는지 알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이 승리기여도를 점점 비중 있게 다룬다. 사무국이 저연차 선수들에게 보너스를 배분할 때도 승리기여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트라웃은 이 승리기여도의 화신이다. 승리기여도가 트라웃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2011-20년 메이저리그 야수 승리기여도는 아래와 같다.

73.7 - 마이크 트라웃
48.8 - 버스터 포지
42.0 - 앤드류 매커친
41.7 - 조시 도널슨


승리기여도 2위와 3위의 차이는 6.8이다. 버스터 포지는 베이스런닝은 조금 떨어지지만, 포수 포지션에서 비롯된 가산점과 뛰어난 타격으로 많은 승리기여도를 쌓았다. 다재다능한 앤드류 매커친도 승리기여도가 높은 유형이며, 조시 도널슨도 공격과 수비가 균형 잡힌 3루수였다. 세 선수는 각각 MVP 출신으로, 리그를 지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웃은 나홀로 다른 세계에 있다. 포지와의 승리기여도 차이가 무려 24.9다. 1,2위 차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같은 기간 제이디 마르티네스의 승리기여도가 24.9였으니, 포지와 마르티네스가 합쳐야 트라웃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사실 트라웃이 승리기여도에서 현역 선수와 경쟁하는 건 불공평하다. 트라웃은 까마득한 옛 전설들과 붙어도 밀리지 않았다. 28세 시즌까지의 승리기여도 순위를 소개한다.

78.6 - 타이 콥
76.4 - 로저스 혼스비
74.8 - 미키 맨틀
73.7 - 마이크 트라웃
71.0 - 지미 팍스


트라웃의 위엄이다. 타이 콥과 로저스 혼스비, 미키 맨틀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이다. 트라웃보다 아래에 있는 지미 팍스도 명예의 전당 선수다. 트라웃은 2020년이 코로나로 인한 단축 시즌이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ESPN>은 '27세 시즌까지 트라웃의 평균 승리기여도를 고려하면 트라웃이 충분히 1위에 올랐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참고로 트라웃은 27세 시즌까지의 통산 승리기여도가 역대 1위였다(트라웃 71.2, 콥 68.8).

트라웃은 30세가 되기도 전에 명예의 전당 커리어를 만들었다. 트라웃의 종착역이 어디일지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불청객이 트라웃의 앞을 가로막았다. 부상이었다.

부상으로 결장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2021년 트라웃은 종아리 부상으로 4개월 넘게 결장했다. 베이스런닝 중 인대가 부분 파열됐다. 당초 복귀까지 6∼8주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는데, 통증이 재발하면서 복귀가 미뤄졌다. 그 사이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탈락한 에인절스는 트라웃을 굳이 무리시키지 않았다. 그 해 트라웃은 5월18일 경기가 마지막이었고, 결국 처음으로 MVP 후보에 들지 못했다.

이듬해 트라웃은 허리 척추 부상으로 빠졌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척추는 크게 경추와 흉추, 요추로 구성되는데, 트라웃은 흉추의 TH5(Thoracic spine) 뼈 부위에 염증이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부위에 신경이 손상되면 늑골이나, 폐, 횡경막이 자극을 받아 호흡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호흡 곤란을 호소하기도 했던 트라웃은 한 달이 더 지나서야 돌아왔다(복귀 후 40경기 타율 0.308 16홈런, OPS 1.056).

트라웃은 작년에도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스윙 과정에서 유구골 골절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전반기는 81경기를 나섰지만, 후반기는 단 한 경기만 출장했다. 지난 3년간 전체 486경기 중 237경기만 나오면서 절반 넘게 이탈했다(경기 출장 비중 48.8%).

이러한 가운데 올해도 상당 기간 뛸 수 없게 됐다. 이상 징후가 감지된 건 지난 화요일 필라델피아전이었다. 7회 땅볼로 1루에 나간 트라웃은 2루 도루에 성공한 후 폭투로 홈까지 들어왔다. 그런데 이미 3회 때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올해는 트라웃에게 대단히 중요한 시즌이었다. 지난 3년간 부상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했다. 트라웃은 올 시즌 <MLB네트워크>가 발표한 중견수 순위에서 4위까지 밀렸다(1위 애런 저지, 2위 훌리오 로드리게스, 3위 루이스 로버트 주니어). 설상가상 오프시즌 동안 '에인절스는 지금이라도 트라웃을 트레이드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트라웃이 부활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에인절스는 오타니 쇼헤이가 팀을 떠났다. 심지어 지역 라이벌 다저스로 이적했다. 보란듯이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트라웃과 오타니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오타니가 온 이후 에인절스는 오타니의 팀이 됐다. 트라웃보다 오타니가 더 주목받았다. 공교롭게도 트라웃이 MVP 순위에서 배제되자, 그 자리를 오타니가 메웠다. 2021년 MVP였던 오타니는, 2022년 MVP 2위에 이어 지난해 두 번째 MVP를 차지했다. 두 선수는 WBC에서도 투타 맞대결을 펼치며 동료이자 경쟁자로서 묘한 관계를 형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 점은 '건강한 트라웃'은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타자라는 사실이다. 트라웃은 지난 3년간 조정득점생산력이 163이었다. 리그 평균(100)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1000타석 이상 들어선 226타자 중 트라웃보다 더 좋은 기록을 보인 타자는 애런 저지뿐이었다. OPS 0.962이 역시 저지(1.017)와 오타니(0.964)만이 트라웃보다 높았다.

2021-23 조정득점생산력 순위

179 - 애런 저지
163 - 마이크 트라웃
163 - 요르단 알바레스
157 - 오타니 쇼헤이
155 - 후안 소토


하지만 건강한 트라웃은 올해도 '만약'으로 남게 됐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어졌다. 더욱 아까운 건 트라웃이 현재 홈런 10개로 공동 1위에 있기 때문이다. 트라웃은 데뷔 후 한 번도 홈런왕에 오른 적이 없었다.

에인절스도 상황이 복잡해졌다. 애매한 노선의 에인절스는 전면 리빌딩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트라웃을 넘겨야 한다. 그런데 트라웃이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 돌아온다고 해도 무릎 수술 후유증이 우려된다. 이는 자칫 운동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선수가 세월과 수술의 이중고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에인절스로선 마지 못해, 또 어쩔 수 없이 트라웃을 계속 안고 가야 한다. 트라웃의 12년 4억2650만 달러 계약은 2030년이 돼야 끝이 난다. 트라웃의 38세 시즌이다. 그때까지 트라웃은 연봉 3545만 달러를 수령한다. 이대로라면 악성 계약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복귀 후 무릎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수비를 하지 않는다면 가성비는 더 떨어진다.

과연, 트라웃은 웃으면서 돌아올 수 있을까. 수술 소식을 알리면서 눈물을 보인 그의 모습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써 내려 간 선수의 말로를 보는 듯 했다. 너무나도 찬란했기에, 또 너무나도 처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