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군함 시장, 서로 물어뜯다 놓칠라”…집안싸움 벌이는 K조선 투톱
‘과열경쟁’ HD현대重∙한화오션
캐나다 필리핀 호주 사업 등
방산 갈등 격화돼 불똥 우려
獨·佛 등 국가 차원 집중 지원
韓정부, 컨트롤타워 역할 방기
“분쟁 발생시 조정 권한 있어야”
최근 폴란드와 방산협력에 나선 한국 방산업체들이 단연 유력한 수주 후보군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었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의 선진 방산업체들은 유럽 해양환경에 적합하다는 특징을 앞세워 국가별로 똘똘 뭉쳐 대응하는 반면 K-방산은 ‘집안 싸움’에 골몰하느라 허송세월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과열경쟁과 상호비방은 폴란드 군사당국의 평가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폴란드 잠수함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필리핀과 호주의 각각 10조원 이상 규모 군함 구매사업도 사정이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하는데 민간에 개입한다는 시비가 일까봐 뜨뜻미지근한 입장”이라면서 “말로만 방산수출 200억달러 달성을 외칠 게 아니라 어찌됐든 양사를 중재해서 수출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지적했다.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구매사업은 규모 측면에서 양사가 공동사업에 나서야만 수주가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협력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장 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한 개 업체 ‘캐파’로는 할 수 없는 사업 규모”라며 “컨소시엄을 짜서 들어가야 하므로 지금 같은 갈등 상황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에서 원팀으로 참여하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잠수함 분야에서는 한화가 압도적으로 실적이 좋으니까 그런 얘기를 한다”라며 “호주의 호위함 입찰에서는 공동 참여 얘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프랑스의 국영 군함제조업체 ‘나발 그룹’은 스코르펜급 잠수함으로 오르카 프로젝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스코르펜 잠수함은 프랑스가 수출용으로 특화시킨 모델로 전세계 5개국 이상이 운용 중인 베스트셀러 잠수함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의회 연설에서 한국산 대신 유럽산 무기를 사자고 주장했다. 유럽방위산업전략(EDIS)은 역내 국가들이 유럽산 무기 비중을 2030년까지 50%로 증가시키고 EU 내부의 무기 거래 규모를 현재 15%에서 35%로 늘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방위산업 수출은 정부의 정책적 외교적 뒷받침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대규모 방산수출을 계기로 해당 국가와의 외교·군사적 고위급 교류는 물론 연합연습 등으로 협력면을 넓힐 여지도 키울 수 있어 안보에 직접적인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국내 방산기업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수출 실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조정할 수 있는 공식적인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해 운영 중인 ‘사업조정제도’와 유사한 방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방산업체 사이의 분쟁을 조정, 중재하기 위해 정부가 비공식적인 개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분쟁이 발생한 양측에 권고라도 내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한 법·제도 보완을 위해 국회와 정치권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잠수함 전단장을 지냈던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 예산으로 기술 개발하고 성장한 업체들의 갈등을 정부가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잠수함 건조에 들어간 기술은 정부에 지적재산권이 있다”고 강조했다.
방산업계에서는 정부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일단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보유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애매하게 원팀으로 묶기보다는 기업이 가진 경쟁력과 역동성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만들고, 1차로 경쟁을 통과한 기업이 사안별로 정부와 단단한 원팀을 이뤄 개별 수주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게 더욱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프로젝트별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일단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전에 예선통과 개념인 ‘숏 리스트’에 포함된 기업이 정부와 진정한 의미의 ‘원팀’을 꾸린다면 민관협력의 시너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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