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유방의 `대풍가`(大風歌)와 조조의 `단가행`(短歌行)… 詩에 뛰어났던 황제들

강현철 2025. 2. 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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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7월 방한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라고 했다. "거센 바람이 물결 가르는 그때가 오면,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 헤치리라"라는 뜻으로,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인생의 험난함을 노래한 '행로난'(行路難)의 한 구절이다. 한중 관계가 잘 풀릴 것이란 희망을 담은 말이다.

중국은 시(詩)와 문장(文章)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 주석이 외국의 정상들과 만날때 옛 시나 경전의 구절을 인용해 속뜻을 피력하는 건 이런 문예(文藝)의 전통때문이다. 시에 대한 숭상은 멀리 기원전 470년경에 만들어진 '시경'(詩經)으로까지 올라간다. 시경은 서주 초기부터 춘추시대 중기까지 고대 중국의 풍토와 사회를 배경으로, 그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노래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이다. 모두 305편이 전하는데 중국의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교양이기도 하다. 공자는 시경에 실린 삼백편의 시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역대 황제 중에서도 시를 잘 지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 유방의 '대풍가'(大風歌)와 항우의 '해하가'(垓下歌)

춘추전국시대의 난세를 평정하고 진(秦)에 이어 다시 대륙을 통일한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대풍가'(大風歌)를 남겼다. 사마천 '사기'(史記)의 고조본기(高祖本紀) 및 '한서'(漢書) 본기(本紀) 1권에 실려 있다. 한 나라를 세운 유방의 늠름한 기풍(氣風)이 자간(字間)에 흘러넘친다.

大風歌(대풍가)

大風起兮雲飛揚(대풍기혜운비양·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威加海內歸故鄕(위가해내귀고향·위세가 천하에 더하여져 고향으로 돌아오네)

安得猛士兮守四方(안득맹사혜수사방·어찌 용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지 않을손가)

유방이 스스로 황제라 칭한뒤 회남왕(淮南王) 경포(경布)를 물리치고 돌아오던 중 고향인 패(沛) 땅을 지나다가 친족과 옛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자신도 술에 취해 축(筑)을 두드리면서 함께 불렀다는 노래다. 호방하고 의기 충전해 패업을 달성한 황제가 맹장을 찾아 천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다. 이 시는 높은 기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당 태종 이세민, 시선 이백, 태평천국을 세우고 농민 봉기군을 이끈 홍수전 등이 모두 '대풍가'를 좋아했고, 즐겨 읊으며 자신의 기개와 포부를 나타내기도 했다.신유학(新儒學)을 정립시킨 주희(주자)도 극찬한 바 있다.

길거리 건달 출신이었던 유방은 탁월한 용인술과 리더십으로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유방은 스스로 "나는 군막에서 전략을 짜고 천 리 밖에서 승리를 다투는 일은 (군사·軍師) 장량을 따르지 못하오. 그리고 내정의 충실, 민생의 안정, 군량의 조달, 보급로 확보를 도모하는 일은 소하를 당하지 못하오. 아울러 백만대군을 자유자재로 지휘하며 승리를 거두는 능력 또한 한신에 비교되지 못하오. 이 세 사람은 나를 능가하는 호걸들이오. 하지만 나는 그 호걸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였소. 이것이야말로 내가 천하를 얻은 비책"이라고 했다.

반면 유방과의 천하 쟁탈전에서 패해 해하(垓下)에서 한군(漢軍)에 포위당한 초패왕 항우의 '해하가'(垓下歌)는 대풍가와 정반대로 싸움에 진 왕의 쓸쓸한 감정이 물씬 풍긴다.

垓下歌(해하가)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時不利兮추不逝(시불이혜추불서·때가 불리해 오추마는 나아가지 않네)

추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사기'는 항우가 유방을 맞아 해하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던 날, 군사는 몇 남지 않고 군량이 떨어져 사면초가에 몰렸을때 사랑하는 우미인(우희)과 술을 한잔 하며 이 시를 읊었다고 했다.

◇시에 일가견 있었던 조조

삼국지의 영웅 위무제 조조도 시로 이름을 날린 왕이다. 전란과 민생의 고통을 노래한 '호리행'(蒿里行)과 '해로행'(瀣露行) 등은 후세까지 널리 읊어지고 있다. 특히 유명한 시는 '단가행'(短歌行)이다. 208년 조조가 오(吳) 손권(孫權) 및 촉(蜀) 유비(劉備)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전투를 벌일 무렵 달빛이 밝은 장강(양자강)의 밤경치를 바라보는데 새들이 울며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뱃전에 서서 취중에 지어 부른 노래다. 비분강개하면서도 장중한 어조로 인재에 대한 갈구와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웅심(雄心)을 드러내고 있다.

短歌行(단가행)

對酒當歌 人生幾何(대주당가 인생기하·술 마시며 노래하세 인생이 그 얼마인가)

譬如朝露 去日苦多(비여조로 거일고다·아침이슬 같은데 지나간 날들 괴로움 많았네)

慨當以慷 憂思難忘(개당이강 우사난망·슬퍼하며 탄식해도 근심 잊기 어려운데)

何以解憂 唯有杜康(하이해우 유유두강·무엇으로 그 근심 풀려는가 오직 술뿐일세)

(중략)

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네)

繞樹三잡 何枝可依(요수삼잡 하지가의·나무를 세차례 맴돌아도 어느 가지에 의지할 수 있을까)

山不厭高 海不厭深(산불염고 해불염심·산은 높음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깊음을 꺼려하지 않는다네)

周公吐哺 天下歸心(주공토포 천하귀심·주공은 손님이 오면 먹던 것도 뱉으니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네)

술을 대하는 조조의 태도는 900여년 후 이백( 李白)의 '장진주( 將進酒)나 '월하독작'(月下獨酌)과 비슷하다. 또 '월명성희 오작남비'(月明星稀 烏鵲南飛) 구절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송나라 소동파가 불후의 시 '적벽부'(赤壁賦)에서 인용했다.

조조를 이어 33세의 나이로 위나라의 실질적인 개국 황제로 등극한 조비(曹丕)는 문장이 뛰어나 40여편의 시를 남겼다. 아버지와 달리 조비는 남녀간의 애정이나 이별의 슬픔을 많이 노래했다. '연가행'(燕歌行)의 첫 구절은 가장 유명하다.

燕歌行(연가행)

秋風蕭瑟天氣凉(추풍소슬천기량·가을바람 소슬하고 날씨 서늘하니)

草木搖落露爲霜(초목요락로위상·초목은 시들어 떨어지고 이슬은 서리가 되네)

群燕辭歸鵠南翔(군연사귀곡남상·제비들은 작별 인사하고 고니는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念君客遊思斷腸(염군객유사단장·타향에서 떠도는 당신 생각에 애간장 끊어지네)

慊慊思歸戀故鄕(겸겸사귀련고향·돌아오고 싶은 생각에 고향 그리움 간절할 텐데)

君何淹留寄他方(군하엄류기타방·그대는 어이하여 타향에 그리 오래 계시나요)

◇ 100수 가까운 시를 남긴 당 태종

당 태종 이세민은 시를 많이 지은 황제로 유명하다. 청 강희제의 칙명에 따라 팽정구 등이 당시(唐詩)를 모아 엮은 한시집인 '전당시'(全唐詩) 1권에 실린 그의 시는 모두 98수다. 그의 시는 순행이나 수렵의 흥겨움, 경치의 아름다움, 그리고 궁중 생활을 묘사하는 등 주제가 다양하다. 하지만 시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못하다.

가장 뛰어난 작품으론 '행무공경선공'(幸武功慶善宮), '재행무공'(再幸武功)이 꼽힌다.

이밖에 망국의 군주가운데는 남당의 이욱과 남조 진(陳)의 진숙보가 시에 뛰어났다. 이욱은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로서의 비통한 마음을 처량한 어조로 시에 담았는데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송의 포로가 돼 3년간 생활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의 마지막 황제인 진숙보는 '옥수후정화'(玉樹后庭花)를 남겼다. 수 문제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는데도 후궁에 울려퍼진 '옥수후정화'는 대표적인 망국의 노래로 문학사에 기록됐다.

폭군이자 질투심이 강한 수 양제는 자기보다 더 뛰어난 시를 지은 문인들을 무참히 살해할 정도로 시에 집착한 황제다. 호방한 기상이 드러난 그의 시는 당시 문단에서 손꼽히기도 했다.

이밖에 한 무제 유철, 송 태조 조광윤, 송 휘종 조길, 명 태조 주원장, 청 성조 현엽 등도 시문에 능했다. 송 태조의 '영초일'(영初日)과 명 태조의 '국화시'(菊花詩)는 유명하다.

강현철 논설설징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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