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시보·사람일보 잇단 압수수색 "위기 정권, 언론 공안탄압"

김예리 기자 2024. 10. 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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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자주시보 기자들, 지난 4일 사람일보 박해전 대표 압수수색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 인용도 이적표현물? 한국언론 문닫아야"
"5·18 당시 국가범죄 피해자에 또다시 국보법 칼날 들이대"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22일 자주시보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한 경찰 수사관이 한 기자의 전자기기를 분해하는 모습. 사진=김영란 자주시보 기자 페이스북

경찰이 최근 자주시보 대표와 기자 4명에 대해 언론 활동을 문제 삼아 압수수색했다. 앞서 '용공조작 사건' 피해자이기도 한 사람일보의 박해전 대표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와 경북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지난 22일 오전 8~9시께 서울과 경북 고령에 있는 자주시보 전·현 기자와 대표 등 4명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은 최대 밤 10시경까지 5~13시간에 걸쳐 이뤄졌다고 한다. 서울청 안보수사대는 서울 중랑구와 강북구에 있는 자주시보 전·현 기자와 고령군의 김병길 자주시보 대표 자택을, 경북청은 경기 가평의 현직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자주시보 측에 따르면 영장에는 자주시보 보도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가 적시됐다. 문경환 기자는 정세분석 코너 '아침햇살', 나머지 3명의 대표와 전·현직 기자들이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소개한 보도가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를 위반했다는 혐의이다.

김영란 자주시보 기자에 대해선 국보법 7조에 더해 한국계 재일동포 단체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과 기고 게재를 위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국보법 8조(회합·통신) 위반이 추가로 적용됐다. 한통련은 박정희 정권 당시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해 김대중 석방과 박정희 퇴진 등 민주화운동을 해외에 알리는 활동으로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경찰은 기자들 자택에 있던 휴대전화와 외장하드, USB, SD카드 등 저장장치, 노트북 컴퓨터 등 전자 기기들을 압수수색했다. 일부 전자기기는 분해해 저장정보를 추출하기도 했다.

김영란 기자는 통화에서 “영장엔 김병길 대표와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한 것을 공모행위라고 적은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대표와 연락을 수시로 하지 그러면 안 하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공안기관은 현재 국보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 '충북동지회'가 북한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지령에 자주시보 기사를 공부하라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 압수수색 영장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도 말했다.

김 기자는 “우리나라 언론사 중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을 다루지 않는 곳이 없다. 언제나 한반도엔 북한의 영향력이 있고, 국민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북한의 주장을 확인하고자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정부가 무인기 사건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에선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주시보는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 촛불 집회를 매일같이 보도하고 정부 비판 기사를 써왔다. 정권이 위기에 몰리는 상황에 퇴진 투쟁을 알리는 언론사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국보법을 수단 삼아 탄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주시보 탄압 규탄 기자회견'이 23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경찰청 앞에서 촛불전진 등 주최로 진행됐다. 촛불전진 유튜브 갈무리

지난 4일엔 인터넷신문 사람일보의 박해전 대표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박 대표는 전두환 정권 당시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이기도 하다. 경기북부경찰청 안보수사2대 소속 4명의 경찰관은 경기 성남에 있는 서버관리업체 인스정보미디어를 압수수색했다. 수사대는 이 업체가 보관 중인 사람일보 서버 개설등록정보를 수색했다.

경찰은 박 대표에 대해 국보법 7조(찬양·고무)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박 대표는 압수수색검증영장에 2018년부터 사람일보 사이트에 게재한 64건의 정치평론 글과 보도 기사가 이적표현물로 규정됐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인용 보도도 범죄사실로 포함됐다.

박 대표는 통화에서 “영장을 보니 2019년 국보법 철폐 긴급행동 월례집회에서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국가범죄를 청산하라고 연설한 글을 이적동조로 포함시켰더라”라며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이어 “사람일보의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인용 보도는 KBS, MBC, 연합뉴스 보도와 미국의 NK뉴스 보도자료를 참조했다. 이를 이적표현물 반포로 문제 삼는다면 공영방송을 비롯한 한국언론 모두가 문을 닫으란 얘기”며 “그런 면에서 언론3단체(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가 이번 압수수색에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UN) 고문방지협약에도 고문조작 국가범죄 재발방지를 위한 그 수단을 모두 폐기하라고 돼 있다”며 “(압수수색은) 또다른 국가범죄이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통령의 평화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1조, 66조, 21조를 위배하는 반헌법 폭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번 압수수색을 두고 “대한민국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고문조작 국가범죄로 확인하고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된 사건 피해자들이 피해 회복을 요구하고, 국가범죄 도구 폐지와 재발방지를 요구한 것에 또다시 국보법의 칼날을 들이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9년, 전두환 정권이 5·18 민주화운동 직후 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처벌한 '아람회 사건'이 용공 조작이었다는 재심판결이 확정됐다. 2011년엔 박 대표를 비롯한 피해자와 유가족 37명에 국가가 9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박 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유혈진압 관련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반국가단체로 규정됐고 물고문·집단구타를 당한 뒤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박 대표는 이후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고 노무현 대통령후보 시민 사회특보, 문재인 대통령후보 정책특보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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