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못난이 디자인" 쌍용이 무쏘 대체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차
페이스리프트란 '마이너체인지' 또는 '부분변경'이라는 말과 구분 없이 쓰이기도 하는 이 용어는 피부를 당겨 주름을 없애는 비교적 간편한 성형 수술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차량 출시 후 오랜 시간이 경과했을 때, 외관이나 실내 구성을 일부 수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아시다시피 자동차는 세대 교체가 최소 수년에 이를 만큼 길기 때문에 그사이 상품성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쓰입니다.
전편 오피러스에 이어 이번에도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로 약간이나마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이 모델'이 떠올랐는데요. 혼란스러운 회사 분위기를 반영한 듯한 디자인으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차이자 그나마 잘생겼던 못난이 삼형제의 두 번째 모델, 이번 시간에는 쌍용의 중형 SUV 카이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프로젝트 'D100'으로 개발된 '카이런'은 새로운 고급 SUV 렉스턴의 출시로 포지션을 낮춘' 뉴 무쏘'를 대체하고 '현대 산타페', '기아 소렌토'와 경쟁하기 위해 투입된 차세대 중형 SUV였습니다. 차명은 무한대를 의미하는 수학 용어 '카이'와 달리는 사람 '러너'의 합성어로 '무한 질주'라는 지극히 쌍용스러운 뜻을 담았죠. 일각에서는 2002년 출시된 '포르쉐의 첫 번째 SUV 카이엔을 의식해서 지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카이런'이라는 새로운 차명을 쓰면서 독보적인 이미지로 수많은 충성고객을 양산한 무쏘 브랜드를 사장시키는 악수를 뒀어요. 에쿠스 출시 이후 강제로 포지션이 낮아진 현대 그랜저처럼 무쏘가 가진 고급 SUV 이미지를 격하시키는 것이 아까웠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외관은 무쏘의 스타일을 일부 반영해 날카로우면서도 듬직한 인상이었습니다. 중세 기사의 투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전면부는 뒤이어 공개된 '신형 S클래스'와 유사한 날카로운 헤드램프와 앞모습 전체를 가로지르는 가로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 투구의 리벳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안개등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죠.
측면은 사선으로 치켜올라가는 캐릭터 라인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줬고, 견고한 디자인의 18인치 대형 알루미늄 휠로 남다른 존재감을 어필했습니다. 볼륨감이 돋보이는 펜더 라인과 경사진 D필러는 무쏘에서 이어진 디테일이었어요. 또 SUV라면 두꺼운 스키드 플레이트나 어두운 플라스틱 가니쉬를 덧대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원톤으로 깔끔하게 칠한 차체로 유럽 SUV 같은 세련미가 돋보였죠.
비교적 양호한 전면과 측면에 비해 후면부는 파격 그 자체였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방패 모양의 '오각형 리어램프'.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파격적인 스타일이었고, 왜 여태 어디에도 없었는지 알 것만 같은 게 문제였습니다. 노골적인 오각형은 전면과 측면의 날렵한 인상을 방패로 쳐내듯 묘하게 불쾌한 느낌을 줬고, 아래로 뾰족한 청바지 뒷주머니를 연상케 해 호불호가 크게 갈렸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무쏘를 디자인했던 영국 RCA의 '켄 그린리' 교수와 쌍용 디자인팀이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이었는데요. 쌍용 디자인팀의 스타일이 좀 더 많이 반영됐지만 욕은 억울하게도 켄 그린리 교수가 다 먹었죠. 하지만 카이런의 이 파격적인 스타일도 연이어 꽂힐 필사기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했어요.
실내 역시 외관의 파격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운전자 중심의 비대칭 센터페시아는 고리타분한 우드그레인을 배제하고 어두운 플라스틱과 우레탄 소재로 꾸며 도시적인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달리는 SUV, 'Sports Activity Vehicle'을 전면에 내세운 모델답게 시트 포지션을 제외하면 정통 SUV라기보다 스포츠카에 가까운 분위기였어요. 그중에서도 세로로 배치된 디지털 시계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또 체어맨과 렉스턴 등 고급차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프리미엄 메이커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던 쌍용차답게 운전석 메모리 시트와 10개 스피커의 5.1채널 DVD 내비게이션, 현대·기아 모젠에 대응하는 텔레메틱스 시스템 '에버웨이'. 심지어 나중에는 체어맨에나 있던 '전자식 주차브레이크'와 후륜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까지 장비해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첨단 고급 사양으로 무장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버튼을 큼지막하게 만들어 조작 편의성도 좋았죠.
사이드&커튼에어백과 경사로 저속주행장치, '전복 방지장치'를 적용하는 등 안전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뒷좌석 리클라이닝, 센터 암레스트와 컵홀더를 제공하는 2열은 무난했고 문제는 벌칙 의자에 가까운 3열이었는데요. 과거 7인승 승합차 혜택을 받기 위해 1세대 싼타페, 무쏘 등을 비롯한 구형 SUV들이 이렇게 어거지로 3열 시트를 넣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관련 규정이 강화되면서 무용지물이 됐는데도 카이런은 이 방식을 채택해서 욕을 먹었죠.
당시 경쟁차인 '싼타페 CM', 'GM대우 윈스톰'이 온전한 3열을 갖추고 나오면서 그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됐고, '없으니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트렁크 바닥이 전체적으로 높아지면서 중형 SUV 중 가장 평평한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캠핑, 차박 등 다양한 레저 활동에서 활용도가 높았습니다. 중형 SUV의 3열은 사실상 편하게 탈 만한 공간이 아니기도 하고요. 여기 사람 태우면 사이 안 좋아져요.
한편 연이어 등장한 컴팩트의 SUV '엑티언'이 동일한 레이아웃을 사용하면서 카이런 오너와 소비자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패밀리룩이라고 보기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구성이었죠. 파워트레인은 렉스턴에 쓰였던 직렬 5기통, 2.7L 디젤 엔진을 시작으로 직렬 4기통 2.0L를 추가, 총 두 가지로 구성했고요. 5단 수동변속기와 '벤츠 5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렸습니다.
특이하게도 2.7L 모델은 변속기에 따라 구성을 달리했는데요. 수동은 구형 엔진을, 자동 모델은 출력을 개선한 신형 디젤 엔진을 탑재해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 신형 모델을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상위 모델인 2.7L '하이퍼' 모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았어요. 경쟁사의 신제품들이 속속 '전륜구동', '모노코크' 설계를 적용한 것과 달리 카이런은 상위 모델 렉스턴처럼 후륜구동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을 고수했는데요.
이로 인해 높은 시트 포지션으로 탁 트인 시야, 연약한 도심형 SUV들과 달리 통뼈에서오는 넉넉한 견인능력과 안정적인 오프로드 실력이 돋보였습니다. 파트타임 4륜구동까지 더해져 거친 길을 누빌 일이 많은 현장직 소비자나 캠핑, 낚시 등 레저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았어요.
다만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의 단점 역시 고스란히 답습했죠. 무거운 프레임은 2톤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선사했고, 당연하게도 주행 성능과 승차감, 연비 면에서도 불리했어요.
이 차급이 패밀리카로 주로 쓰이는 것을 떠올리면 멀미를 유발하는 2열 승차감은 분명한 약점이었습니다. 2007년 연식변경 모델은 USB 오디오, 뒷좌석 열선 시트 등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옵션을 추가 적용하고요. 하이퍼 트림에만 제공하던 '후륜 멀티링크'를 하위 트림에도 옵션으로 제공해 승차감과 주행안정성을 소폭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또 최고급형 하이퍼 모델에는 기존 파트타임 사륜구동을 AWD 시스템으로 변경했는데요. 험로 주행이나 승객 탑승, 물건 적재 등으로 뒤쪽이 가라앉았을 때 이를 보정해 주행성능을 보완할 수 있는 후륜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까지 탑재해 상품성을 크게 끌어올렸죠. 야심차게 출시한 카이런은 출시 3일 만에 5천여 대가 계약되는 등 열띤 기대감으로 출발했지만요. 이후 판매량이 하락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선택을 주저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외관 디자인이 가장 큰 패인이라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어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회사이기에 눈에 띄는 생김새로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전략이었지만 열정이 너무 과했습니다. 이 밖에도 '세단이 울고 간다', '실키 드라이빙' 등 광고에서는 안락하고 부드러운 주행감각을 내세운 것과 달리 날카로운 디자인과 바디 온 프레임의 투박한 승차감이 두드러졌고요. 여러모로 차량의 성격과 마케팅까지 중구난방인 당시 쌍용차의 집안 분위기처럼 혼란스러운 차량이었습니다.
해외 시장 성적도 기대 이하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수출을 개시한 2006년 유럽에서만 '1만 5천여 대' 가까이 팔려 순항하는 듯 했으나 이후 판매량이 반토막으로 떨어졌죠. 그래도 동유럽과 러시아 등 쌍용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일부 수출 시장에서는 카이런의 신선한 스타일과 뛰어난 내구성이 호평받으면서 적지만 꾸준한 수요가 이어졌어요. 한편 모기업인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카이런을 기반으로 SUV를 만들어 자국 시장에 판매할 계획을 세웠는데요.
'뱃지 엔지니어링' 방식의 수출이 아닌 중국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고, 관련 기술을 이전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는데요. 하지만 이에 대한 라이센스 비용으로 개발비의 1/10 수준에 불과한 '240억 원'이라는 헐값을 지불했고, '계열사 간 불공정계약'이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열악했던 쌍용차의 간을 빼먹었던 '상하이차 먹튀 논란'이 이때 불거졌죠. 이 사람들은 기어코 카이런을 베껴 만든 SUV를 출시해 중국 시장에 판매하였습니다.
카이런 이야기는 곧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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