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폭과 교통사고의 공통점은?”…삼성 중대재해 판단 근거 봤더니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분석하는 장비를 정비하던 작업자 2명이 기준치를 넘는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들이 작업 중 노출된 방사선량은 각각 94시버트(Sv), 28Sv로 방사선 관련 종사자에 적용하는 연간 안전치인 0.5Sv의 약 188배, 55배를 웃돕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방사선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안전 장비인 '인터락'의 전선이 잘못 연결돼 있어 사고 당시 인터락이 작동하지 않은 거로 드러났는데요.
두 사람은 사고 뒤 5개월 가까이 지난 시점인 현재도 병원 치료를 받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치료를 이어가야 할 거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고를 '중대재해'로 볼지를 놓고 삼성과 정부 측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삼성 측은 대형 로펌 4곳(율촌·김앤장·지평·화우)의 의견서를 제출하며 이번 사고가 '부상'이 아닌 '질병'이라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고용노동부가 삼성 측 주장과 달리 이번 사고를 '부상'으로 보고, 중대재해라고 최종 결론 내린 사실이 KBS 보도로 알려졌죠.
KBS가 정부 판단의 근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관련 기사] [단독] 삼성전자 방사선 피폭 ‘중대재해’ 판단…“질병 아닌 부상” (24.10.11. KBS 뉴스라인 W)
■ 6개 기관 자문받은 정부…만장일치로 '중대재해' 결론
오늘(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고용노동부는 9월 23일부터 10월 7일까지 2주 동안 모두 6곳에서 의학·법률 자문을 받았습니다.
대한방사선방어학회·대한재난의학회·대한직업환경의학회 등 전문학회 3곳과 정부법무공단 및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명 등 법률 자문 3곳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6곳은 '만장일치'로 이 사건이 '질병'이 아닌 '부상'이라 산안법상 중대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전문학회들은 일시적 과도한 방사선(X선)에 피폭돼 발생한 피부 손상은 '부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습니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국제기준에 따라 살펴봐도 방사선에 의한 화상은 '외상성 손상'으로 분류된다고 했습니다.
법률 전문가들도 재해 원인과 상병명인 '화상'의 문언적 부합성 등을 고려하면 재해자의 상태는 방사선에 의한 '업무상 부상'으로 산안법상 중대재해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 "방사선 피폭은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 같은 것"
자문 결과를 읽다 보니 특히 눈에 띄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직업병 진단·연구의 대표학회인 대한직업환경의학회와 국내 노동법 전문가인 법학전문대학원 A 교수는 이번 재해가 왜 '질병'이 아닌 '부상'인지를 설명하며, '암'과 '교통사고'를 각각 예시로 들었습니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부상의 대표적 사례로 자동차 사고로 인한 골절이 있다"며 "일회적 사고성 노출, (물리적 에너지 등에 의한) 외부적 원인, 원인 노출과 건강 영향 발생까지 짧은 경과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질병의 대표적 사례는 암"이라며 "대개 만성·반복적 노출, 인체 내부의 병리학적 변화, 원인 노출과 발병까지의 상대적으로 긴 시간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구분했습니다.
이 같은 기준에 비춰보면, 피폭 사고는 ▲국소 방사선 노출로 인한 일회적·사고성 재해이며 ▲피부 손상의 주된 원인이 X선 에너지로 인한 외부 피폭인데다 ▲사고 발생과 발병까지의 기간이 급성으로, "질병보다는 부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습니다.
A 교수 역시 "부상과 질병의 개념을 분별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바로 '요인의 소재'와 '재해 결과 발생의 만성성 여부'"라고 짚었습니다.
부상은 신체적 침해 요인이 외부에 존재하며, 재해가 짧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것이라며 예시로 '지게차 충돌'(직접 원인)에 의한 '골절'(부상)을 들었습니다.
반면, 질병은 신체적 침해 요인이 직·간접 요인으로 각각 존재해 인과관계의 연결성을 따지게 되며, 어느 정도 시간의 소요가 전제되는 재해 결과를 말한다고 했는데요.
예시로는 '방사선 피폭(간접원인)'에 따른 '세포 변이(직접 원인)'로 '암(질병)'이 발생한 경우를 들었습니다.
A 교수는 "피폭이 직접적 원인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곧바로 화상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는 ▲원인의 외부성과 ▲재해결과 발생의 찰나성에 비춰 사고 재해로서의 속성을 가지는 '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 "삼성 주장대로면, 사업자가 제재 회피하는 공백 발생"
한편, 법무부 산하 정부법무공단은 이번 사건을 '부상'이 아닌 '질병'으로 볼 경우 법률적 관점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공단은 방사선 피폭 등으로 화상 등 상처가 발생하면 일단 '업무상 부상'에 해당하며, 이 부상이 원인이 돼 건강장해가 발생하고 오랜 기간 이어지면 향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 때문에 "방사능 피폭이 '부상'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질병'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엄격히 나눠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 요건 충족 여부를 따질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공단은 "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 여부를 판단할 때 '부상'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질병'에 해당하는지를 엄격히 구분하게 되면부상을 원인으로 해 질병에 이르렀는데도 질병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제재를 사업자가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안전보건상 제재를 회피하는 공백 지점이 발생하는 문제가 존재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삼성 측 주장대로 중대재해가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법적 모순과 공백을 짚어낸 겁니다.
이에 대해, 김주영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이번 자문 결과를 반영해 '부상'이 맞고 '중대재해'가 맞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며 피해자들의 의견에도 부합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법률을 교묘하게 탈피해 중대재해의 책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없어야 하며, 정부는 노동자 안전 보호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과태료 부과 절차 시작…11월 말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전망
삼성 측은 앞서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이번 사건이 중대재해로 판단될 경우 이의절차를 밟겠다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이 지난 7일 삼성 측에 중대재해 미신고에 따른 과태료 3,000만 원에 대한 자진 납부 절차를 안내했는데, 자진 납부 기간인 지난 17일까지 과태료는 납부되지 않았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다음날인 18일에 과태료를 정식 부과했고, 삼성 측은 부과 고지서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데요. 삼성 측이 이의제기할 경우 과태료 부과 절차는 법원에서 결론이 날 때까지 중지됩니다.
다만, 중대재해 원인 조사는 과태료 부과와 관계없이 진행됩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라는 결정이 내려졌으니, 이제 근무자 등을 상대로 다시 참고인 조사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주목받는 건 향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입니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인데요.
법적 요건에 따라 만약 두 작업자의 치료 기간이 6개월 이상, 즉 11월 28일까지 이어질 경우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마침, 내일(22일)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 윤태양 삼성전자 최고 안전책임자(CSO·부사장)가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앞서 윤 부사장은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내부적으로도 이 부분('질병'인지 '부상'인지)에 관한 치열한 갑론을박이 있었다"며 "법령 해석을 받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는데요.
그 사이 고용노동부의 공식 법령 해석이 나왔습니다. 윤 부사장은 이제 어떤 입장을 내놓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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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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