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헤즈볼라 수장 살해…이란 "모든 무슬림, 헤즈볼라 지원해야"

김효진 기자 2024. 9. 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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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보복 압력 가중·서방에 대화 손짓 중 딜레마에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살해하며 중동이 예측불허의 격랑 속으로 빠져 들었다. 역내 가장 중요한 대리 세력인 헤즈볼라가 큰 타격을 입으며 이란은 방관할 수 없는 입장에 놓였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을 보면 이스라엘군이 전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주거용 건물 공습으로 나스랄라를 제거했다고 밝힌 뒤 헤즈볼라도 나스랄라 사망을 확인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본부가 이 지역 주거용 건물 지하에 있었다며 헤즈볼라가 레바논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외신은 이스라엘이 주거용 건물 폭격에 건물 지하까지 파괴하는 초대형 벙커버스터 폭탄을 대거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공개한 나스랄라 제거 작전에 투입된 전투기 영상을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한 <뉴욕타임스>(NYT)는 전투기에 2000파운드(907kg)급 초대형 벙커버스터 폭탄이 최소 15대 탑재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공습 현장 피해 규모 또한 2000파운드급 폭탄 피해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나스랄라 제거를 위해 수십 개의 탄약을 몇 초 만에 쏟아 부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8일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살인자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했다"고 확인하며 "누군가 당신을 죽이려 하면 먼저 그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나스랄라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가 헤즈볼라로부터 빼앗은 역량을 빠르게 재건했을 것"이라며 나스랄라 살해 이유를 밝혔다.

또 나스랄라 제거가 헤즈볼라와의 거의 1년간 분쟁으로 인해 피난민이 된 북부 국경 주민들을 귀환시킬 뿐 아니라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돕지 못하게 해 가자지구에 잡힌 인질 석방 또한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성명에서 이란을 향해 "아야톨라(이란 최고지도자) 정권에 말한다. 누구든 우릴 공격하면 우리도 그들을 공격한다. 이란이나 중동에 이스라엘의 팔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경고했다.

이란이 지원하는 역내 반미·반이스라엘 무장 단체를 일컫는 '저항의 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헤즈볼라 수장 사망으로 이란의 분쟁 직접 개입 위험이 커졌다.

28일 아예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성명을 통해 나스랄라 사망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저항 전선의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더 파괴적이 될 것"이라며 "모든 무슬림은 레바논 국민과 명예로운 헤즈볼라 편에 서서 도움과 자원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5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이란은 나스랄라 암살 관련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다만 이란은 온건파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당선 뒤 핵합의 복원 관련 서방과 대화하고자 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던 상황이어서 나스랄라 암살이 이란에 딜레마를 안겼다는 분석이다. 나스랄라 사망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란이 직접 대응에 나서 지역 전쟁이 촉발될 경우 서방과의 대화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23일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덫"을 놓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조 바이든 정부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담당한 외교관이었던 앤드루 밀러는 <워싱턴포스트>(WP)에 상황이 "미지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란의 주요 전략 자산(헤즈볼라)이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것은 처음이지만 이란은 여전히 지역 분쟁을 경계하고 있다. 이란은 대응할 것이지만 그 시기, 방법, 규모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수장을 포함해 다수의 지도부가 제거됐지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천명했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28일 성명에서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을 지키고 레바논과 명예로운 국민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과 전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헤즈볼라는 이날 예루살렘 지역을 향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에서 날아 온 발사체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또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CNN을 보면 레바논 보건부는 28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레바논에서 최소 33명이 숨지고 19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레바논 보건부는 일주일간 이스라엘 공습으로 레바논에서 여성 56명, 어린이 87명을 포함해 1030명이 죽고 6352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레바논 보건부 집계는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29일에도 이스라엘군은 간밤 레바논에서 수십 개의 헤즈볼라 목표물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레바논에 대한 소규모 지상 작전이 이미 시작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ABC 방송은 2명의 미 당국자들이 이스라엘군의 국경 지대 헤즈볼라 진지 제거를 위한 소규모 지상 작전이 이미 시작됐거나 임박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CNN 도 미국이 이스라엘이 북부 국경으로 병력을 이동함에 따라 레바논에 대한 제한적 지상 침공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미 당국자 등을 인용해 보도했다. 방송은 다만 해당 당국자 등이 이스라엘이 지상 침공에 대한 결정을 완전히 매듭지은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28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전날 이스라엘 공습으로 살해된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죽음에 항의하는 반이스라엘 시위가 열린 가운데 참여자들이 나스랄라의 이미지를 손에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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