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밀려 사라진 106번 버스…새벽 노동자 “살기 더 팍팍”

이준희 기자 2024. 10. 1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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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간 의정부~서울 종로 잇던 106번
재건축 등으로 인구 늘어난 지역에 투입
대체 버스 기존 노선과 달라 시민들 불편
지난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에서 출발하는 106-1번 버스에 탄 승객들이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 정류장에서 내리기 위해 세 정거장 전부터 하차 준비를 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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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12도까지 떨어진 지난 10일 새벽 4시.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에서 출발하는 106-1번 버스에 승객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날 기자를 제외하고 버스에 탄 승객은 모두 36명.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대체로 청소·경비 업무를 위해 이른 새벽 출근해야 하는 이들과 공사 현장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장사를 위해 서울 강북구 수유동 수유시장, 미아동 숭인시장으로 향하는 상인들이다. 수유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최아무개(64)씨는 “지금 시간에 입에 풀칠하러 가는 게 아니면 왜 이 버스를 타겠느냐”고 했다.

의정부 106-1번 버스는 지난 8월3일 운행을 시작했다. 52년 동안 의정부와 서울 종로를 잇던 서울 106번 버스가 같은 날 운행을 중단하면서 의정부시가 급하게 마련한 임시 대체버스다. 이른 아침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수요가 많아 새벽 4시 첫차는 두대를 동시에 운행한다. 서울시가 106번 버스 노선을 폐지한 이유는 재건축과 신규 택지 조성 등으로 인구가 늘어난 지역에 투입할 버스를 늘리기 위해서다. 의정부시와 주민들이 “106번 버스는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는 이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노선 폐지 계획을 철회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라진 버스들은 대신 서울 강남구와 강동구에 새롭게 생긴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대체버스는 기존 106번 노선과 달라 시민 불편이 크다. 기존 106번 버스는 도봉산역~도봉역~방학역~쌍문역~수유역~미아역~미아사거리역~혜화역 등 지하철 1·4호선 역을 포함해 종로5가까지 운행했다. 덕분에 시민들은 이 버스만 타면 이른 아침 출근 시간에 환승 없이 서울에 있는 일터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106-1번 버스는 도봉산역 앞에 있는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를 끝으로 다시 의정부로 돌아간다. 서울 북동부 지역으로 출근하던 승객들은 이제 일터에 가기 위해 다른 버스로 환승해야 한다.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이들에겐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버스 정류장에 106번 버스의 노선 폐지와 106-1번 버스의 운행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준희 기자

미아동 인근 공사장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김용현(68)씨도 불편을 호소했다. 그는 “먹고살려고 ‘노가다’를 하니까 새벽차를 타는데 (106번 버스가 사라져) 너무 불편하다”며 “서민들 삶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의정부의 대체버스를 이용하면 환승센터에서 다른 서울 버스로 갈아탈 수 있다”고 했지만, 이 환승 때문에 김씨의 출근길은 긴장의 연속이 됐다. 자칫 갈아탈 버스를 놓치면 제시간에 일터에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벽 4시부터 출근 버스를 타야 하는 이들에게는 환승조차 가혹한 일이었다. 이런 불안은 버스 안에 짙게 깔려 있었다. 이날 버스에 오른 승객 36명 가운데 병무청 호원예비군훈련장 정류장에서 내린 1명을 제외한 35명은 모두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에서 하차했다. 승객들은 환승센터까지 서너 정거장이 남았을 때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 뒷문에 모여들었다. 종점에서 대다수 승객이 내리기 때문에 빠르게 하차하지 않으면 갈아탈 버스를 놓칠 수 있어서다. 버스에서는 “차가 완전히 멈춘 뒤 일어나 하차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이른 새벽 ‘출근 전쟁’을 벌이는 이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금세 흩어졌다.

경기 북부에서는 이처럼 최근 잇달아 서울로 가는 버스들이 사라지고 있다. 파주 교하신도시~고양~서울역을 잇던 9714번 버스는 8월30일을 끝으로 사라졌다. 기존에 심야(새벽 2시)까지 운행해 야근이나 회식 등으로 늦게 귀가하는 직장인들의 발이 되어주던 버스였다. 양주 장흥면~서울역을 잇는 704번 버스는 조만간 양주 구간이 사라질 예정이다. 장흥면 일대와 서울을 잇는 유일한 대중교통으로서 약 70년을 이어왔지만 구간 폐지가 결정되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파주 운정신도시~고양~불광역을 잇는 773번도 올해 안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버스업체의 인수, 수요 변화에 따른 노선 조정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돈이 안 되는’ 노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두고 버스 준공영제가 애초 도입 취지에 맞는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한겨레에 “준공영제는 민간 업체가 적자 노선을 함부로 조정하거나 폐지하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노선을 단축하거나 폐지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며 “세금으로 버스회사들의 이익은 보장해주면서도 공공성은 전혀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 정책위원은 “광역단위 시내버스가 시민 이동권과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를 구성하고 교통기본법 제정도 이뤄져야 한다”며 “공공성이 짙은 노선을 민간이 소유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용현씨를 태운 150번 버스가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이날 버스는 약 30분을 달려 새벽 4시30분께 마침내 종점인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나온 승객들이 순식간에 다시 환승센터로 빨려들어갔다. 마치 백화점 ‘오픈런’이라도 보는 듯했다. 허겁지겁 뛰어간 사람들은 출발 직전의 160번 버스에 가까스로 몸을 실었다. 김용현씨는 기자의 부탁에 못 이겨 대화를 나누면서도 눈은 불안한 듯 버스 정류장 쪽을 계속 바라봤다. 안절부절못하던 김씨는 이내 150번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서자 “이제는 진짜 가야 한다. 미안하다. 저걸 놓치면 큰일 난다”고 말한 뒤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김씨를 태운 버스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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