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하는 철학, 두 손으로 만드는 예술 - 도예가 '도화 김소영'
최근 산티아고 순례와 자신의 작업, 삶에 관한 에세이, 『나는 여전히 걸어가는 중입니다』를 펴낸 도화 김소영 도예가는 현재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음 꿈을 꾸고 있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살아가는 작가, 브릭스 매거진에서 도화 김소영 도예가를 만나 그의 책과 여행, 작업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Q. 『나는 여전히 걸어가는 중입니다』가 출간되고 두 주가 지났군요.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는 꽤 됐지만, 본업에 밀려 드디어 출간을 하게 됐네요. 저는 도자기를 구워서 작품을 하고 그림을 그려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인데,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로 책을 쓰게 되었어요. 물론 책에는 작업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지만요.
책을 출간한다는 게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 아이가 태어나는 느낌? 이제껏 강연은 많이 해 왔지만 이 책이 전달하는 내용은 온전히 저의 이야기니까요. 편한 점이라면 사람들이 저한테 왜 맨날 산티아고만 가냐, 도자기는 어떻게 하게 됐냐, 귀촌은 왜 했던 거냐, 혼자 갔냐,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이제는 책 읽으시면 다 있어요, 하면 되니까 심플해졌다는 거예요. 책을 읽고 전시장에 오는 분들도 만나게 되고, 이래저래 새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Q. 책과 관련한 개인전이었지요?
네, 제 열 번째 개인전이었는데, 전시 제목도 책 제목과 같이 〈나는 여전히 걸어가는 중입니다〉였어요. 제 지나온 삶에 대한 표현을 책에 담았다 보니, 전시에서도 책과 맞닿아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을 선보였어요.
작년 11월, 12월 작업을 아예 뒷전으로 미루고 책만 썼어요. 작업을 일단 내려놓는다는 게 저한테는 아주 큰일이에요. 도예가로 생활을 이어간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래도 글에만 집중하지 않고서는 마무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책을 읽으신 분들이 전시에 오시고, 전시에 오신 분들이 책을 읽게 되니까 책을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마지막 아홉 번째 순례는 언제 다녀오신 건가요?
작년 5월에 갔으니까 원고를 거의 다 끝내놓은 상태에서 갔다 온 거지요. 이렇게 온전히 저의 이야기로 책을 쓰니까 부담이 많이 되더라고요. 봐도, 봐도 계속 틀린 게 나오고, 뭔가 바꾸고 싶고, 그러다 보니 11월이 넘어가는데도 출판사에 글을 못 보냈어요.
제가 좀 단순한 편이라 여행할 때는 여행만 집중하고 책 쓸 때는 책에만 집중하고, 당시 하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여행은 여행대로 편하게 다녀왔고, 글은 글대로 집중해서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었지요.
Q. 도예가 싫어서 울었다는 이야기가 책에 있더군요.
아빠가 미술을 하셨고, 엄마와 아동미술학원을 운영하셔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어요. 저는 수채화를 하고 싶었는데, 성격이 좀 급해서 터치를 계속 하는 거예요. 아빠가 너는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공예과에 가라 하셔서 수채화를 포기하고 공예과에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하다 보니 섬유가 나은 것 같아 선택했는데 떨어져서 도자기로 배정된 거예요. 매년 인기 과목이 달라지는데 그해 다들 섬유로 몰렸던 거지요. 도자기는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Q. 도예가가 될 결심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결심을 했다기보다는, 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열심히 하는 편이거든요. 저는 정말 기억이 안 나지만 친구들 말로는 제가 과사무실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대요. 제가 대학교에 와서 원하는 것을 못 하게 된 거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4년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냥 열심히 했어요.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열심히 하자, 그러다가 도예를 잘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좋아지게 된 거지요.
그렇다고 졸업을 하면서 바로 도예가로 살려 했던 건 아니에요. 도자기로 만들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회사에 들어갔어요. 해외 구매대행 쇼핑몰에서 일하다 아는 분 카페에서 반년 정도 매니저를 했어요. 지금껏 바라 온 삶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지요. 그래도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입사 원서를 계속 넣었어요. 한 100군데는 넘을걸요? 홍보 마케팅 일을 배워보고 싶어서 그 분야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도자기를 만들던 사람이 관련도 없는 일에 지원을 하니 다들 의아했겠지요. 그때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러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렸어요. 오래전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읽고 순례길을 동경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생 때도 배낭을 메고 울릉도며 제주도며 틈틈이 여행을 다녔어요. 나름 순례길 준비를 한 거지요. 그렇게 첫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면서 도예가로 살게 된 거예요.
Q. 첫 유럽 여행이 명소를 찾아다니는 배낭여행이 아니라 순례길이었군요.
제가 보기와는 달리 어디 돌아다니는 걸 잘 하지 않아요. 국내도 안 가 본 데가 많고요. 대신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해요. 말하자면, 순례길에 꽂힌 거예요. 다른 데는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순례길을 1년에 한 번씩 가고, 그것도 한 번 가면 한두 달이니까, 할 일은 많은데 그 시간을 내려면 다른 데 시간을 쓸 수가 없잖아요. 사실 다른 건 다 포기하고 살아요.
Q. 평소 순례길을 걷기 위한 운동이나 준비를 따로 하시나요?
걷는 준비 없이 첫 순례길 떠났다가 죽을 맛을 봤어요. 그때는 순례길 떠날 비용을 벌어야 해서 운동할 여력이 없었어요. 그때의 깨달음으로 다음에는 1년 반을 준비했어요. 딱히 운동을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원래 수영을 좋아했고, 헬스장에서 조금씩 근력 운동을 하고 있어요. 달리기나 걷는 연습은 전혀 하지 않아요. 산티아고에서 걸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무릎을 좀 아끼는 편이에요. 순례길 여파로 항상 무릎에 물이 좀 차 있어요. 제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가 제가 중간 없이 모 아니면 도로 살고 있대요. 걷는 일도 산티아고에 다 몰아서 하는 거지요.
Q. 처음 여행에서 자금 마련을 위해 카네이션 도자기를 만들어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대학 때 공예 트렌드 페어라고, 플리마켓 같은 데서 소소하게 머리끈, 귀걸이 같은 걸 만들어서 팔아 봤어요. 제 도자기를 사람들한테 팔아보는 첫 시도였지요. 팔 수 있다는 확신까지는 아니고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정도의 경험이었어요.
카네이션을 만들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친구랑 전화로 어버이날에 도자기로 뭔가를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카네이션 어떠냐고 해서 만든 거예요. 일단 시들지 않고, 브로치를 만들어 달아 줄 수도 있어 신선했어요. 사람들이 도자기 하면 항아리, 식기를 먼저 생각하잖아요. 제가 그 쟁쟁한 작가들 사이에서 경쟁이 될까 싶어서 아무도 안 해 본 거를 하자, 액세서리를 만들면 내가 개척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접시나 컵은 크고 흙도 많이 들어요. 반대로 액세서리는 작고 흙도 적게 들어요. 당시 제 작업실이 되게 작기도 했고,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을 종합했을 때 그게 가장 좋다고 결론을 내린 거예요.
Q. 카네이션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나요?
하고는 있는데 어버이날 선물 문화가 바뀌어서 카네이션보다 돈, 건강식품, 그런 추세잖아요. 다양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서, 카네이션은 저의 시작이고 아직도 소중한 자식과 같지만, 아무래도 비중은 전보다는 낮아졌어요.
Q. 작품 판매는 보통 어떤 방식으로 하시나요?
원래는 SNS에 올려서 판매했고요, 몰도 따로 있어요. 오프라인은 전시회에서 주로 판매가 되고요.
인터뷰 | 이주호
사진 제공 | 도화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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