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4.2조 손실 감수하며 '썩은 살' 도려냈다

류종은 2026. 1. 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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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테네시 공장 독자운영…EV·ESS 공략 시동
순차입금 1년 새 6조원 급감
SK온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의 미국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 커머스 배터리 생산 시설. 사진=SK온

SK이노베이션이 미국 포드(Ford)와의 배터리 합작법인을 재편하며 4조2000억원 규모의 회계상 손실을 선제적으로 반영하는 '빅배스'를 단행했다. 이는 장부상 자산 가치를 깎아내는 대신 약 5조4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부채를 포드 측에 넘겨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결단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28일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2025년 4분기 및 연간 경영실적' 발표 행사를 개최하고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이 19조67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했고, 영업이익의 경우 67.5% 늘어난 2947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25년 연간 실적은 매출액 80조2961억원, 영업이익 4481억원을 달성했다.

4.2조원 손상과 5.4조원 부채의 맞교환…재무구조 대수술

SK이노베이션 2025년 4분기 및 연간 경영실적. 출처=SK이노베이션

이번 경영실적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지난해 4분기 영업외손실이다. 영업외손실은 배터리 사업 관련 손상 등으로 전분기 대비 적자폭이 확대된 4조6573억원을 기록했다

. 이번 대규모 영업외손실의 핵심은 SK온이 포드와의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BOSK)'를 해산하고 공장 소유권을 나누기로 합의하면서 발생한 4조2000억원 규모의 일회성 손상차손이다.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에 대응해 양사는 켄터키주 공장 2곳을 포드가 전량 인수하고, 테네시주 공장 1곳(45GWh)의 소유권을 SK온이 독자적으로 가져가는 자산 재편에 합의했다.

4조2000억원은 켄터키 공장 자산을 포드에 넘기며 장부 가격을 현재의 낮은 시장 가치에 맞게 현실화한 것으로 실제 현금 지출이 없는 비현금성 비용에 해당한다. SK온은 장부상 손실을 감수하는 대가로 켄터키 공장 건설을 위해 빌렸던 약 5조4000억원(약 38억달러) 규모의 부채와 이자 부담을 포드에게 모두 이전하는 실익을 확보했다.

SK이노베이션은 대규모 장부상 손실을 기록했음에도 순차입금(22조5110억원)을 2024년(28조5266억원)보다 6조원 이상 줄였다. 서건기 SK이노베이션 재무본부장은 "이번 손상 인식은 회계 기준에 따라 자산 가치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회성 조정일 뿐"이라며 "1분기 중 포드의 부채 인수가 완료되면 당사 재무구조는 연말 대비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루오벌SK 테네시 공장 전경. 사진=SK온

전략적 측면에서 SK온은 이번 결단을 통해 포드에만 묶여 있던 생산 능력을 해방시켜 고객사 다변화와 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게 됐다. 독자 소유하게 된 테네시 공장은 포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완성차 업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배터리 공급을 목표로, 2028년 가동할 예정이다.

기존 합작법인 명의로 승인받았던 92억달러(약 13조1542억원) 규모의 미국 에너지부 대출은 각 사의 독립된 법인으로 나누어 재구조화될 예정이다. 이런 조치는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침체 속에서 양사가 선택과 집중을 위해 공장을 쪼개 가진 결과로 분석된다. SK온은 포드 의존도를 낮춰 생존력을 높이는 길을 택했고 포드는 생산 라인을 직접 통제해 비용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사업별 희비 교차 속 '전기화'로 2026년 반등 정조준

SK이노베이션 2025년 4분기 사업부문별 경영실적. 출처=SK이노베이션

지난해 사업 부문별 실적을 보면 석유와 윤활유, E&S 사업이 전사 수익성을 견고하게 지지했다. 석유사업은 2025년 연간 매출액 47조1903억원, 영업이익 3491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4분기에만 정제마진 상승에 힘입어 474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윤활유사업은 연간 607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SK이노베이션 E&S 사업도 연간 6811억원의 견조한 이익을 거뒀다.

반면 배터리와 소재 사업은 전기차 시장 위축과 보조금 정책 변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고전했다. 배터리사업은 유럽 판매 확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기차 구매 보조금 폐지에 따른 판매량 감소로 연간 93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소재사업 역시 북미향 물량 감소와 연말 재고 조정 여파로 연간 233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으며 화학사업은 아로마틱 계열의 시황 부진 탓에 연간 23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SK온 2025년 4분기 경영실적. 출처=SK이노베이션

미래 성장 동력과 수익성을 보완하기 위한 자원 개발 및 신사업 분야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석유개발사업은 중국 17·03 광구의 성공적 운영 등에 힘입어 연간 3997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전사 현금 창출에 기여했다. 호주 깔디따-바로사 가스전의 첫 LNG 카고 선적 성공은 향후 원가 경쟁력 있는 물량 도입을 통해 LNG 밸류체인을 강화할 중요한 자산이 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총 2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글로벌 ESS 프로젝트 수주를 목표로 삼아 수익성을 보완할 계획이다.

서 본부장은 "2026년을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선언하고 전력 생산부터 솔루션까지 아우르는 전기화 전략을 본격 추진하겠다"며 "AI 데이터센터용 전력 솔루션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재무 건전성 조기 회복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27일 2025년 회계연도에 대한 무배당을 결정했다. 이는 당장의 현금 유출을 줄여 재무적 내실을 다지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류종은 기자 rje312@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