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거장의 미공개 유작, 18년 만에 개봉했다

▲ 영화 <겨울 이야기> ⓒ 와이드 릴리즈(주), 시네마뉴원

[영화 알려줌] <겨울 이야기> (Winter Story, 2004)

글 : 양미르 에디터

한국 영화사가 격변하던 1950년대에 등장한 신상옥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최대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예술이다.

감독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이 통달한 무엇인가가 분명히 하나쯤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는 1960년대, 한국 영화의 황금기와 함께 수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성춘향>(1961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년), <연산군>(1962년)과 같은 작품들이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과 함께 제작 인프라를 마련했고, '신 필름'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폭발적인 역량을 드러냈다.

한편, 1978년 아내이자, 배우인 최은희와 함께 납북된 이후,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서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불가사리>(1985년) 등의 작품을 만들어 북한 영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그중 고려 시대 민담을 기반으로 만든 괴수물 <불가사리>는 2000년 7월 한국에서 상영되며, 국내 극장에서 상영(지상파 TV에서도 방영됐다)된 최초의 북한 영화로 기록됐다.

이후, 신상옥 감독은 1986년 최은희와 함께 탈북에 성공했고, 국내 복귀작으로 'KAL기 폭파 사건'을 담은 반공 영화 <마유미>(1990년)를 연출했다.

주로, 신상옥 감독은 인간에 대한 고민과 사람의 삶, 두 가지를 영화의 주제로 놓았는데,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와 진솔한 감정, 리듬감 넘치는 편집 등은 여전히 회자하고 있다.

신상옥 감독은 199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됐으며(그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이었다), 2002년에는 프랑스 도빌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체제로 의해 고통받는 삶을 살았으나, 숨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영화만을 위해 살아온 신상옥 감독의 미공개 유작 <겨울 이야기>가 지난 1월 18일 개봉했다.

<겨울 이야기>는 1970년대 일본 노인 복지제도의 근간을 뒤엎고, '개호보험' 제도의 도입을 끌어낸 아리요시 사와코 작가의 밀리언셀러 <황홀한 사람>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아내의 죽음 이후 치매가 찾아온 '김노인'(신구)과 집안의 맏며느리로 아픈 시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며느리(김지숙)의 이야기를 담았다.

간병 가족의 시선에서 치매 노인의 삶과 돌봄 의무의 부담감, 사회의 무관심함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노년기의 애환을 담아낸 작품인 것.

<겨울 이야기>는 지난 2004년 촬영이 종료됐으나, 2006년 건강 악화로 인한 신상옥 감독의 타계 이후 미공개 유작으로 남게 됐다.

이에 아들 신정균 감독과 당시 촬영감독이었던 조동관 촬영감독 등 후배 영화인들이 뜻을 모아 오래된 필름을 복원하고, 편집을 마무리해 완성됐으며, 2004년 제작 이후 무려 18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신정균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아버님의 작품 중 유일하게 개봉을 못했던 영화였다"라면서, "아들이자 감독으로써 그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드디어 개봉하게 되면서 모든 게 해소되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다"라며 벅찬 감정을 전했다.

신정균 감독은 "나와 조동관 촬영감독이 한 것은 최종적으로 영화를 갈무리하는 것뿐이고, <겨울 이야기>는 신상옥 감독님의 손길이 하나부터 열까지 안 닿은 것이 없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어머니(최은희 배우)께서는 신상옥 감독님의 건강 상태를 우려하시며 제작을 만류하셨지만, 감독님께서는 어머니 몰래 작품을 준비하실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셨다"라면서, 영화를 제작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며느리'를 맡은 김지숙은 다양한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여러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먼저, 현장이 주택가 한가운데라 식사 메뉴가 마땅치 않았는데, 소품으로 준비했던 식은 통닭을 스태프 모두와 나눠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지숙은 "중요한 장면 촬영이 있을 때마다 최은희 선생님이 오셨다"라면서, "두 분이 그 장면을 위해 카메라 뒤에서 의논하고 계신 모습을 바라보는 게 내 인생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두 분이 작품을 위해 고민하고, 함께 의논하던 모든 것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라면서,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조동관 촬영감독도 "그는 고등학교 시절 스승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내가 함께한 그분의 작품이 유작이 될 줄은 몰랐다"라면서, 뭉클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조동관 촬영감독은 "영화 속에 눈이 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되게 긴 거리를 달리며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건상 아주 짧은 사거리 하나에서 촬영한 것"이라면서, "당시 감독님께서는 사거리 안에서 몇 가지 장소를 지정해 주셨다. 후에 편집본을 보니 아주 넓은 거리를 달린 것처럼 나왔다. 나는 이때 감독님께 영화 편집에 대해 배웠고, 그래서 진짜 감독이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겨울 이야기
감독
신상옥
출연
신구, 김지숙, 문혁, 이명희, 황만익
평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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