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와 대장암 연결고리는 바로 '장내 미생물’
현대인에게 만성 스트레스는 암이나 뇌혈관질환의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가 어떻게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이어지는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중국 과학자들이 대장암에 스트레스가 미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스트레스와 대장암의 연결고리는 바로 '장내 미생물'이라는 연구결과다.
양진린 중국 쓰촨대 위장암·간질환학과 교수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가 대장암 진행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장내 세균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라는 점을 확인하고 연구결과를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2024년 유럽 소화기학회 위크'에서 발표했다. 만성 스트레스가 장내 미생물 균형을 깨뜨려 대장암 진행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인에게 자주 발생하는 암 중 하나인 대장암 예방, 치료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여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만성 스트레스, 장내 유익균 줄여 면역반응 약화
대장암은 사망률이 높은 암종 중 하나다. 통계청의 2023년 암 사망 데이터에 따르면 대장암은 폐암, 간암에 이어 세 번째로 사망률이 높은 암종이다. 고령화, 식습관, 신체활동 부족, 비만 등으로 대장암 발병률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장암을 예방하거나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총 칼로리 섭취량을 줄이고 섬유소를 충분히 섭취하며 흡연, 음주 등 나쁜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스트레스 관리와 장내 미생물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우선 반코마이신, 암피실린, 네오마이신, 메트로니다졸 등 항생물질의 칵테일 요법을 대장암 쥐 모델에게 적용해 장내 미생물을 박멸시켰다. 항생물질은 미생물 발육을 억제하는 물질이고 칵테일 요법은 3가지 이상의 약물을 병용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뒤 연구팀은 대장암 쥐에게 ’대변 이식술(FMT)‘을 시행했다. FMT는 건강한 개체의 대변에서 유익한 균을 정제한 뒤 이식을 받는 개체에게 주입하는 시술이다. 이를 통해 대장암 쥐가 건강한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갖게 만든 상태에서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를 가했다.
그 결과 만성 스트레스는 대장암이 증식하는 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을 향상시키는 데 필수적인 유익한 장내 세균을 감소시켰다. 특히 유산균의 일종인 락토바실루스가 감소했다.
연구팀은 ”만성 스트레스를 받는 쥐의 대장암 진행은 유익한 장내 세균이 감소했기 때문일 수 있다“며 ”유익균이 줄어들면 암에 대한 신체 면역반응이 약화돼 암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락토바실루스가 신체의 항종양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포독성 T세포(CD8+ T) 수치와 대장암 진행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기 위해 쥐가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락토바실러스를 투여했다. 세포독성 T세포는 종양 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림프구의 일종이다.
쥐의 변을 분석한 결과 락토바실루스는 담즙산 대사를 조절하고 세포독성 T세포의 기능을 향상시켰다. 담즙산은 미생물과 상호작용해 장내 미생물 구성을 변화시키고 암의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락토바실루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쥐의 종양 형성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 락토바실루스, 대장암 치료 열쇠...자연 방어 능력 강화
앞서 국내 연구팀도 장내 유익균과 대장암 발병의 연관성을 확인한 논문을 발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이 지난 1월 국제학술지 ’장과 간‘에 게재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대장암 환자보다 건강한 대조군의 장내에 유산균, 낙산균 등 유익균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많았다.
몸에 해로운 유해균과 대장암의 연관성도 확인됐다. 2019년 영국국립암연구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장내에 박테로이달 세균이 많으면 대장암 발병 위험이 2~15% 증가한다.
쓰촨대의 이번 연구에서는 만성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 대장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락토바실루스 기반 치료법이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기존 항종양 약물과 락토바실루스 보충제를 결합하면 만성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대장암 치료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특정 미생물이 치료의 잠재적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유산균과 같은 장내 유익균을 회복하면 대장암에 대한 신체 자연 방어 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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