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 구조 변화가 경제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다. 노년 세대에 집중된 자산이 흐르지 않고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아플까봐 혹은 오래 살까봐 걱정인 고령층은 소비보다 저축을 선호하고, 안전한 금융상품에만 돈을 묶어두려 한다. 생활비, 부동산 보유세, 건강보험료 같은 필수 지출 외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국회예산정책처 등 연구 기관들은 오래 지속되는 내수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인구 고령화를 꼽는다. 한국은행은 고령 인구 증가 여파로 가계 평균 소비는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0.7%씩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산 쌓아놓고 지갑은 닫고 사는 노년층

한국 자산 지도에서 노년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토대로 보면 60세 이상 가구주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 규모는 2023년 기준 3890조원으로, 2015년 대비 133% 증가했다. 전체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0%에 육박한다. 반면 39세 이하 청년 가구주의 순자산 규모는 같은 기간 918조원에서 1160조원으로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 국가로 진입한 일본을 보면 이런 추세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일본은행(BOJ)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 2200조엔 중 60%를 60세 이상 노년층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고령층 보유 자산은 순환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경제 성장에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0년대 일본에서 방송 출연, 강연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최고령 쌍둥이 자매인 킨(金)·긴(銀) 할머니는 “출연료를 어떻게 하냐”는 토크쇼 진행자의 질문에 “노후에 대비해 저축한다”고 답했다. 100세가 넘는 고령층에도 경제적 안정은 노후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일본은 가계 금융자산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고령 세대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2023년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 따르면, 70세 이상 2인 가구의 가계 지출은 월 25만엔(약 228만원) 수준이었다. 전 연령대 평균인 29만4000엔보다 4만엔 가량 적다.
고령층의 통장 잔액은 계속 불어난다. 2023년, 70세 이상 가구의 저축 잔고는 전년 대비 3.8% 증가한 2503만엔에 달했다. 전체 연령대 평균인 1904만엔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반면 청년층은 내집마련으로 대출을 내면서 현금 흐름이 적자 상태다. 40세 미만 가구의 평균 저축액은 782만엔에 불과한 반면, 평균 부채는 저축의 2.2배인 1757만엔에 육박했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2분기 우리나라 60세 이상 가구주의 평균소비성향(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5.7%였다. 100만원을 벌면 65만7000원을 쓴다는 의미다. 2012년만 해도 60세 이상 가구주의 소비성향은 75%에 달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 여파로 지갑을 닫는 노인이 늘면서 소비성향은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시원하게 펑펑 쓰는 미국 베이비부머

노년층이 보유한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 경제가 활력을 잃고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연령대별 소비성향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금융 전문가는 “미국 연령대별 소비성향을 분석해 보면 청년기와 노년기에 높고 중장년기에는 낮은 U자형 곡선을 그린다”며 “연금 소득이 넉넉한 미국의 고령층은 전 연령대 중 소비성향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경제 활동기에 노후 대비를 철저히 한 미국 베이비부머들은 은퇴 후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베이비붐 세대는 퇴직연금과 부동산 등의 자산 가치가 수십 년간 상승하면서 큰 경제적 여유를 누리게 됐다. 2023년 9월 기준 베이비붐 세대의 총자산은 78조 달러(10경8500조원)에 달해 다른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베이비붐 세대가 자녀 양육비로 쓰던 돈을 골프, 콘서트, 클래식 자동차, 스카이다이빙 등에 쓰면서 미국 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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