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월드컵 유니폼에 담긴 의미

월드컵 기간이면 대회 개최국은 글로벌 유니폼 전시장이 된다. 각양각색 유니폼은 이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호다. 애국심의 발로든 선망이든, 팬들은 유니폼을 입는 행위를 통해 팀과 자신을 일체화한다.
이런 식이다. 색깔에 권위가 생긴다. 예를 들면 노랑이다. 노란색은 순진함이나 미숙함 혹은 겁쟁이라는 이미지를 포함하지만 축구에서는 다르다. 월드컵 최다 우승팀의 영광과 전통을 상징한다. 펠레와 지코가 입고 뛰었던 노랑 유니폼에는 브라질 축구 특유의 찬란하고 쾌활한 에너지가 묻어 있다. 그런가 하면 하늘색과 흰색이 교차하는 스트라이프는 ‘절대 메시’를 보유한 팀(아르헨티나)의 자부심을 뜻한다. 그 위로 월드컵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마라도나가 겹쳐 보이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심플하기 그지없는 흑백 조합은? 선 굵고 강한 독일 축구 이미지 그대로다. 프랑스의 파랑에는 지네딘 지단의 우아함에 킬리앙 음바페의 힘과 젊음이 투사된다. 그들을 칭하는 이름마저 ‘레블뢰(Les Bleus, 푸른색 군단)’이다.
색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프로 클럽들이 유니폼에 상징색을 적용할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축구 종족〉에 따르면, 우선 선수들이 눈에 잘 띄어야 한다. 녹색 그라운드에서 선명하게 구분되는 색깔이어야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적과 아군을 뚜렷이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두 팀의 유니폼 색깔이 비슷하다면 관전 자체에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이른바 ‘원정 유니폼’이라고 하는 세컨드 유니폼을 만든다. 상징색의 주 컬러가 아닌 다른 색을 활용한 유니폼이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고려도 색깔에 반영한다. 눈에 잘 띄는 색은 선수들이 패스할 때 동료를 잘 알아보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 팀에게는 위협적이다. 흰색이 선수를 거대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거나 빨강이 공격성과 위협감을 극대화한다는 종류의 연구도 흔하다. 같은 이유로 회색이나 갈색 같은 색은 유니폼에 거의 쓰이지 않는다. 실제로 명장 알렉스 퍼거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던 시절 사우샘프턴과의 경기 도중 하프타임에 유니폼을 갈아입게 한 사례도 있다. 당시 맨유 유니폼 색깔이 회색이었는데, 선수들이 동료를 식별하기 어려워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반전에만 0-3으로 끌려갔던 맨유는 하프타임에 특단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3-6으로 졌다. 이후 다시는 그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프로팀과 달리 국가대표팀 유니폼에서 주 컬러(홈 유니폼)를 정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거의 국기 색상을 차용한다. 독일은 흰색 바탕에 검정·빨강·골드를 포인트로 활용한다. 스페인은 빨강을 기반으로 노랑을 덧댄다. 브라질은 노란색 바탕에 파란색과 녹색을 깃이나 소매 등에 적용한다. 한국은 태극기의 태극 문양 중 양을 뜻하는 빨강이 주 컬러다.
유니폼을 논할 때 색깔만큼 화제를 모으는 것은 디자인이다. 국가별 유니폼 변천사에서 색깔이 상수라면 디자인은 호감도를 좌우하는 변수라 할 수 있다. 2018 월드컵에 참가한 나이지리아가 대표적이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국기의 녹색에서 명도를 높인 그린 컬러 바탕에 흰색 ‘V’자 패턴을 적용했는데 ‘힙함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았다. 월드컵 공식 스토어마다 나이지리아 유니폼이 매진될 정도로 최고 인기 상품이었다.
사실 100여 년 가까이 축구 유니폼 디자인은 순수하고 평범했다. 변형이라면 줄무늬를 적용하는 정도였다. 1970년대에야 팀 엠블럼을 넣었고, 1980년대에는 제조사의 로고가 들어가는 자리도 생겼다. 참고로 대표팀 유니폼에 엠블럼이 국기를 대신하는 이유가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가가 아닌 ‘축구협회’들의 국제적 대표 기구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전사 프린트’ 방식(특수용지에 이미지를 프린팅한 후 고온으로 압착해 도안을 원단에 전이하는 방식)으로 유니폼에 디자인을 가미할 수 있게 됐다. 이후로 축구 유니폼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유로1988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과 1990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팀이 착용한 유니폼은 혁명을 몰고 온 수준이었다. 기하학적 패턴에 국기 색상을 적용한 디자인으로 용품 시장에서 극찬을 받았다. 또한 유니폼이 ‘일상룩’으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힙합 신의 아티스트, 패션모델 등이 축구 유니폼을 즐겨 입게 된 계기였다.
1990년대 말부터는 각국의 고유 문화나 전통 문양을 덧입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는 아즈테카 문양을, 한국은 태극 문양이나 건곤감리의 변형 혹은 엠블럼의 호랑이를 상징하는 줄무늬 등을 활용해왔다.

9월19일에는 2022 카타르월드컵에 입고 나설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유니폼이 공개됐다. 축구대표팀 공식 후원사인 나이키에 따르면, 이번에는 도깨비라는 한국 전통 캐릭터를 재해석했다. 홈 유니폼에는 도깨비에서 착안한 강렬한 붉은색을 적용했고, 상의와 하의가 만나는 도깨비 꼬리 그래픽에 열정과 투지를 담았다. 어깨 부위의 물결무늬는 호랑이의 줄무늬를 형상화한 패턴이다. 원정 유니폼은 파격에 가깝다. 이전 유니폼에서 쓴 적 없는 색깔과 디자인이다. 검정 바탕에 하늘·땅·사람의 조화를 상징하는 삼태극 색상의 패턴이 강렬하다. 개인적으로는 상의 깃 아래 인장처럼 자리한 ‘대한민국’ 네 글자가 인상적이었다. 역대 대표팀 유니폼에서 이 자리에 들어간 글자는 ‘KOREA’이거나 ‘투혼’이었다. 불굴의 투지나 정신력을 강조하던 시절을 지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자랑스러울 수 있는 변화상이 반영된 것 같아 흥미롭다. 유니폼 공개 행사에 참석한 황희찬 선수(울버햄튼)는 “새로운 유니폼을 갑옷이라 생각하고 경기에 임하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디자인과 함께 기술의 진화는 필연적이다. 월드컵이 장외에서 엄청난 마케팅 전쟁과 과학기술의 경연장으로도 유명한 무대이고 보면, 유니폼은 경기장 안팎을 오가는 신기술의 집약체다. 월드컵마다 스포츠 브랜드들이 제시하는 유니폼의 소재와 핵심 기능은 경량성, 흡습성, 통기성으로 압축된다. 한국 대표팀 유니폼에는 열과 땀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위에 흡습성과 통기성을 강화하는 섬유 드라이핏(Dri-FIT) ADV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 장외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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