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순위였던 '현대무벡스' 지분...현대엘리베이터, 유동화로 수익 기대

/사진=현대엘리베이터

현대엘리베이터가 다음 달 현대무벡스 지분 일부 매각을 앞두고 거래방식을 저울질하고 있다. 시세 상승으로 장내매각을 검토했지만 자산운용사 등에서 인수 의사를 타진할 가능성이 커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도 고려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무벡스 지분 유동화로 예상 밖의 현금화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현대무벡스 주식은 장내에서 주당 1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앞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분 매각을 결정한 당시보다 약 10% 오른 수준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달 24일 이사회를 열고 현대무벡스 지분 4.07%를 매각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배당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산효율화를 적극 검토하기로 한 데 따른 조치다. 다만 현대무벡스 지분은 단기간에 처분할 의사가 없었다. 유동화 순서상 가장 후순위로 생각했지만 갑자기 주가가 오르면서 매각 적기로 판단한 것이다.

현대무벡스는 물류자동화 업체로 일반제조사를 비롯해 자동차 등 모빌리티 업체와 이차전지 업체 등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레퍼런스를 늘리는 가운데 최근 '노란봉투법' 같은 법 규제로 로봇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팩토리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면서 주가가 오르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거래소를 통해 시장가로 팔되 정규거래 직후 진행되는 '시간외매매'와 특정 주체와 협의된 가격에 지분을 넘기는 '장외매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현대무벡스 주가가 오른 만큼 어느 쪽을 택해도 현대엘리베이터에 유리하다. 만약 시간외매매에서 당일 종가로 매각할 경우 상당한 시세차익이 예상되기도 한다.

지난해 현정은 회장은 쉰들러홀딩스 AG와의 분쟁에서 패한 후 현대엘리베이터에 지급해야 할 배상금 일부를 현대무벡스 주식 2475만463주로 변제했다. 이에 이번 유동화 계획은 대물변제로 받은 지분의 일부를 되파는 셈이다. 당시 현 회장으로부터 주당 약 3500원에 넘겨받았기 때문에 다음 달까지 주가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3배 이상의 차익실현이 가능하다. 14일 종가 기준으로 810억원 규모의 현금화가 예상된다.

다만 실제로 장내매매에 나선다면 심리적 저지선이 발동돼 단기간에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시세보다 할인된 가격을 받더라도 블록딜이 안전할 수 있다. 이미 매각계획이 공시됐기 때문에 자산운용사 등의 러브콜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세보다 할인된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기회라 여러 자산운용사에서 관심을 보일 것"이라며 "소액주주 보호 차원에서도 블록딜이 안전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무벡스 지분 외에 연지동 사옥도 약 4500억원에 처분했다. 잇따른 자산효율화는 표면적으로 주주환원 재원을 마련한다는 목적에 따른 것이지만, 재무적투자자(FI) 자금 회수를 염두에 둔 계산이 깔려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인 현대홀딩스컴퍼니는 2023년 메트로폴리탄홀딩스 등을 대상으로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을 발행해 약 3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메트로폴리탄홀딩스는 사모펀드회사인 H&Q가 세운 특수목적회사다. 올해 11월 현대홀딩스컴퍼니는 H&Q가 인수한 RCPS를 되살지 여부를 정하는 콜옵션 기간이 도래한다. 이 옵션의 1차 행사기간은 2027년 5월로 만료되기 때문에 현대홀딩스컴퍼니는 1년여의 시간을 벌 수 있다.

현대무벡스 지분, 연지동 사옥 매각대금 등이 내년도 배당을 위한 재원임을 고려할 때 현대엘리베이터가 지급한 배당금은 결국 현대홀딩스컴퍼니의 콜옵션 행사 대금으로 쓰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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