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넥스트 스텝] 대체 불가능한 'HBM 1등', 삼성 따돌릴 전략은?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정문.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올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을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내년부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 경쟁 D램 제조사들이 HBM 공급량을 확대하고 나서면서 SK하이닉스 역시 전사적인 역량을 HBM에 집중하고 있다. 선제적인 투자로 공정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늘리는 한편 HBM을 비롯한 수주형 메모리반도체에 최적화된 사업 구조로 조직을 재편했다.

서버 D램 시장서 삼성 턱밑 추격

SK하이닉스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사진=SK하이닉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성능을 높인 메모리반도체다. 정보가 오가는 길을 말하는 대역폭(Bandwidth)을 넓혀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통해 발생하는 많은 정보 처리를 더욱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최근 엔비디아의 'H100'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연산을 보조하는 특수 GPU는 한 번에 수많은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고성능 메모리반도체가 함께 탑재되는데 이때 5개의 HBM이 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4세대로 분류되는 HBM3를 독점 공급하면서 올해 초기 시장의 수혜를 온전히 누렸다. 삼성전자보다 무려 1년여 앞서 HBM3의 공급을 시작하면서 엔비디아, AMD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세계 HBM 시장 점유율 절반(50%) 이상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에도 삼성전자와 시장을 양분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최신 제품인 HBM3를 중심으로 주도권을 확보했지만 삼성전자는 이보다 구세대 제품을 중심으로 수주를 누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HBM 공급역량을 바탕으로 선두 삼성전자와의 격차도 좁혀가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3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매출 기준 점유율 34.3%를 확보해 선두 삼성전자(38.9%)와의 차이를 전분기 9.5%포인트에서 4.6%포인트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HBM은 최신 D램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5와 비교해 최소 7배 이상 비싸게 거래된다. SK하이닉스의 HBM 약진은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3분기에는 HBM을 바탕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리며 삼성전자에 앞서 D램 사업에서 적자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1분기 적자로 돌아선 이후 2개 분기 만이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D램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하며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전후공정 모두 최첨단 기술력 투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비교 (자료=각사, 트렌드포스)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부터 엔비디아에 HBM3 공급을 시작하며 SK하이닉스를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내년부터 공급을 시작할 5세대 'HBM3E'의 생산물량이 이미 완판됐다고 언급했다. 앞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역시 내년 생산할 수 있는 HBM이 이미 예약됐다고 언급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HBM 수요 업체가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까지 첨단 HBM 물량 확보를 마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HBM 시장 경쟁이 내년을 기점으로 심화하는 흐름이다.

SK하이닉스는 HBM 선두 주자인 만큼 품질과 성능의 우위,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의 경쟁력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내년 상반기 중 엔비디아의 'B100'에 공급할 HBM3E는 업계 최선단으로 꼽히는 10나노미터(㎚) 5세대(1b) D램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와 동일한 1b D램 기반으로, 삼성전자는 비교 열위에 있는 4세대(1a) 공정으로 5세대 HBM 시장에 대응할 예정이다. 선단 D램을 활용하면 그만큼 성능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SK하이닉스는 후공정 부문에서는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다르게 독자적인 '어드밴스드 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MR-MUF)'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수직으로 D램을 쌓으며 사이 공간을 특수 소재로 채워서 붙여주는 공정이다. 경쟁사의 열압착(TC) 기반 비전도성접착필름(NCF) 공정보다 열전도율을 높이는 동시에 공정을 간소화해 생산 효율도 개선됐다.

향후 HBM의 D램 적층 단수가 12단 이상으로 높아지면 후공정 부문에서 품질과 안정성을 잡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가 기술 패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16단 이상으로 HBM의 적층 구조가 진화하게 되면 차세대 기술인 '하이브리드 본딩' 활용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D램과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할 때 붙이는 '마이크로 범프'라는 소재를 제거하는 기술이다. 중간 물질을 없애고 D램을 적층하게 되면 전체 반도체 높이에 대한 부담을 없애면서도 성능을 계속 확장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D램 3사는 HBM4부터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할 계획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후공정뿐만 아니라 전공정 과정에서 별도 기술이 적용된다. 해당 공정에서 생태계를 먼저 확보하느냐가 중장기적인 기술 경쟁력을 가를 요인이 될 전망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에 적용할 별도 장비와 소재 개발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SK하이닉스는 단수에 따라 HBM4에서 하이브리드 본딩과 MR-MUF를 모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난도가 없고 안정성이 낮은 하이브리드 본딩은 고단수 HBM 생산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기존 공정을 활용해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메모리반도체 불황으로 설비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면서도 HBM 투자를 계속 확대했다. 국내 충북 청주에 있는 M15 공장에서 HBM 생산라인 확대를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완공이 예상되는 신규 공장(M15X)에도 대규모 HBM 생산라인이 추가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차세대 '스페셜티' D램 역량 집중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공장 전경과 김주선 SK하이닉스 AI 인프라(Infra) 사장. (사진=SK하이닉스)


최근 발표된 SK하이닉스의 조직개편에서도 HBM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최근 메모리반도체의 특수화를 화두로 제시하며 사업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범용제품(Commodity)으로 인식된 메모리반도체를 고객별로 차별화된 스페셜티(특수) 제품으로 혁신해 가겠다"며 "과거 방식을 벗어나 고객을 만족시키는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HBM은 고객과 계약을 기반으로 가격과 물량이 정해지는 만큼 사전에 고객에게 필요한 성능과 생산능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영업 분야에서 굵직한 경험을 쌓아온 김주선 사장을 승진시키고 회사의 스페셜티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이끌 'AI 인프라' 조직의 장으로 앉혔다. AI 인프라 아래에는 차세대 메모리반도체를 발굴하는 'AI & 넥스트', HBM 사업을 총괄하는 'HBM 비즈니스' 조직이 자리했다.

HBM 전담 조직을 만들고 전사적인 영업 역량을 집중하는 행보는 향후 도래할 수주형 메모리반도체 사업 역량을 조기에 확보하겠다는 판단이 깔렸다. HBM에 이어 AI 시장 확대와 함께 급부상하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프로세싱인메모리(PIM) 등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시장은 현재 수요가 생산능력을 월등히 웃돌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모두가 수혜를 누릴 가능성이 높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객과 협력관계가 공고한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수주가 이어질 것"이라며 "SK하이닉스 역시 차세대 HBM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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