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론·블록딜·펀드…서진시스템의 자본 조달 방정식

서진시스템의 베트남 공장 전경. /사진 제공=서진시스템

통신장비 케이스 기업 서진시스템이 연이은 자금 조달 및 지배구조 정리에 나섰다. 금융권과 공조해 재무적투자자(FI)의 엑시트를 지원했다. 이어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활용해 회사에 자금을 공급할 예정이다. 회사는 3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수혈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생산을 위한 시설·운영자금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풋옵션 해소와 FI 정리…최대주주, 블록딜 추진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서진시스템 최대주주 전동규 대표는 기존 FI인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 등과 맺었던 3000억원 규모 풋옵션(매수청구권) 해소에 나서고 있다. 회사는 공격적인 메자닌(CB·BW)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과 대규모 설비투자(CAPEX)로 인한 현금 유출이 맞물리며 최대주주의 풋옵션 이행 자금 마련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근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이 브릿지론을 제공하며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브릿지론은 대규모 자금 조달 전 일시적으로 자금을 연결해 주는 '가교' 성격의 단기 대출을 뜻한다. 전 대표가 당장 3000억원 규모의 거액을 마련하기 어렵자 두 증권사가 임시로 자금을 대여해 기존 FI의 지분을 대신 인수함으로써 후속 투자자를 찾을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당초 IB 업계에서는 브릿지론을 위해 설립된 두 투자 기구(에스제이밸류업, 시스테마제일차)의 잔여 물량 400만주 전량이 신한·하나증권과 SKS PE가 조성하는 펀드로 통째로 이관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거래 구조는 시장 매도와 펀드 이관을 병행한 ‘투트랙’ 방식이다. 에스제이밸류업은 지난 19일 보유 중이던 서진시스템 200만주를 주당 6만4774원에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하며 첫 단추를 끼웠다. 해당 물량은 특정 투자자에 매도되지 않고 시장에서 소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시스테마제일차가 보유한 200만주는 펀드로 이관된다. 전체 물량 가운데 절반은 시장에서 소화돼 대출 상환에 활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펀드에 편입되는 구조다. 서진시스템 관계자는 "에스제이밸류업이 처분한 블록딜 물량은 브릿지대출 조기 상환을 위해 시장에 매도했다"며 "시스테마제일차 보유 물량은 펀드로 이관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 대표의 담보 관련 채무 총액은 지난 1월 말 3936억원에서 최근 1228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부담과 반대매매 우려를 덜어낸 딜 구조로 평가하고 있다.

오버행과 담보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자금 조달의 초점은 성장 재원 확보로 이동했다. 전 대표는 내달 11일부터 7월 10일까지 보유 주식 250만주(지분율 3.92%)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해 1687억원(주당 6만7500원)을 확보한 뒤, 이를 회사에 전액 대여할 계획이다.

블록딜 대상은 전 대표가 보유한 지분 가운데 담보 설정이 없는 물량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통상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자본시장에서 엑시트 신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거래는 매각 대금이 회사 대여금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지분 처분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ESS 수주 확대에 공격적 투자…향후 과제는

생성형 AI(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시각화하고 기자가 최종 검토·확인 과정을 거쳐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은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서진시스템이 지분 희석과 블록딜 할인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조달 속도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확대가 자리한다.

회사는 최근 에이스엔지니어링과 1870억원 규모 ESS 설계·제조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 2월에는 SK온과 2조원 규모 장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플루언스에너지, 포윈에너지 등 글로벌 고객사 수주도 확대되고 있다.

서진시스템은 최근 토러스자산운용·네오영 등이 참여한 유상증자와 전 대표로부터 조달한 합산 3500억원 규모 자금을 미국 텍사스·인디애나·조지아 거점과 베트남 생산설비 확장에 투입할 계획다. 회사는 빌드블록과 협업해 설계부터 출하까지 '메이드 인 USA' 생산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시장 관심은 조달 자금 규모보다 실행력과 수익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1700억원 규모 전 대표 블록딜의 안정적인 수요 확보에 따른 오버행 우려 해소와 할인 부담 최소화가 관건으로 꼽힌다. 중장기적으로는 대규모 CAPEX가 외형 성장에을 넘어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돼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서진시스템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원을 넘어섰지만 영업이익률은 1%대에 머물렀다. 자본 재편과 대규모 조달이 실질적인 이익 창출 구조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진시스템 관계자는 "글로벌 고객사 주문 증가에 따라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기관 중심의 장기 조달 절차보다 시간을 단축해 투자 기회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라며 "대여금은 ESS, 반도체, 블룸에너지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데이터센터, 우주항공 등 시설 및 운영자금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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