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에겐 여름이란 그늘을 찾아 떠나는 계절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그 무더위 속에서만 피어나는 풍경을 만나기 위한 시간이다. 경남 산청의 ‘덕천서원’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이곳에는 7월부터 9월까지 붉고 선명한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일명 백일홍이 서원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무려 400년을 버텨낸 이 나무들의 자태는 보는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늘 아래 잠시 머물게 만든다.

산청군 시천면에 위치한 덕천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학문을 닦던 장소로, 이후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서 깊은 공간이다.
이 서원 정원에는 수령 400년에 달하는 배롱나무들이 무리 지어 서 있고, 그 키는 8m를 훌쩍 넘는다. 구불구불한 줄기는 마치 초가지붕처럼 우거져 그늘을 만들고, 여름 한철엔 분홍과 붉은빛 꽃이 수놓아진다.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백일홍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하는 시기에는 사진작가와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덕천서원의 공간은 전통 서원의 배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앞쪽에는 강당과 재실이, 뒤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는 단순한 건축양식을 넘어 조선시대 유학의 가치를 반영한다.
이 구조 안에서 백일홍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함께 품은 존재로 자리한다. 매해 같은 자리에서 다시 피는 꽃은 그 자체로 자연의 신비이며, 전통의 맥을 잇는 조용한 증인이 된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공간은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로,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여름 여행지의 큰 장점이다.

배롱나무는 이름 그대로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다. 7월 초부터 하나둘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9월 초까지 장장 석 달 넘게 꽃을 피운다.
한 송이의 생명이 짧은 대신, 나무 전체는 매일 새로운 꽃으로 채워지며 붉은 풍경을 이어간다.

덕천서원의 배롱나무 정원은 경남 지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와 역사적 깊이를 자랑한다.
인공적인 손길 없이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정원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작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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