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반문섭.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태조 왕건>,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 당대 최고 인기 사극에서 맹활약했다.
검술과 무술 장면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사극의 대가'라는 별명까지 안겨줬다.

1970년대 중반부터 영화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 해에 많게는 8편까지 촬영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당시 한 작품 출연료가 300만 원. 당시 새로 지은 돌벽집 한 채가 330~340만 원 정도였던 시절, 집 한 채 값을 한 작품에서 벌 만큼 위상이 높았다.
지금으로 치면 톱스타 반열에 오른 셈이다.

그러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삶은 예기치 못한 사업 실패로 무너졌다.
칼국수 가게부터 액세서리 장사까지 여러 사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16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됐다.

"연기고 뭐고 삶 자체가 싫어졌다"는 말처럼 긴 시간 깊은 실의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도 멀어졌고 결국 이혼까지 이르렀다. 손주를 다섯 살 무렵 본 이후로 지금껏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고 한다.

삶이 무너진 뒤, 그가 선택한 곳은 산속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유해를 모신 수목장 곁에 5평 남짓한 컨테이너를 마련해 들어갔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으로 시작한 이곳 생활은 불편함 투성이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며 담담히 버텨내고 있다.
"자식 잘되는 모습 보지 못하고 속으로 얼마나 우셨을까"라며 매일 어머니 묘소를 찾아 문안드리는 모습에 그간의 속상함과 후회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제는 약초꾼으로 산다.
5년째 이어지는 산속 생활은 겨울에도 멈추지 않는다. 눈 덮인 산속에서 잔나비걸상, 말굽버섯, 사냥 산삼 등을 찾아 나선다.
약초를 캐는 손길엔 아직도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혹시라도 뿌리가 다칠까 흙을 살살 걷어내며 꺼낸 산삼을 바라보며 "이렇게 크기까지 얼마나 추위를 견뎠겠냐"고 말한다.

지금은 하루 종일 산에서 캔 약초를 읍내에 있는 지인 식당에 가져다 팔며 생활비를 마련한다.
평소 따르는 동생 같은 지인들은 선뜻 그의 약초를 팔아주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능이버섯, 더덕, 겨우살이 등으로 끓인 백숙을 나눠먹으며 잠시 외로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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