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예측 실패하고도 추경편성 외면… 또 ‘기금 돌려막기’

이희경 2024. 9. 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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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세수 펑크’ 원인·전망
2023년 예결위 “세입전망 다시 해야” 권고
기재부 “특이사항 없다”며 그대로 유지
전문가 “감세 효과 감추려고 과대 추계”
당국, 가용재원 활용해 자체 대응 입장
여유 기금 전용 등 편법 논란 재연 예고
국회 예산 심의·확정권 무시 지적 나와

지난해(56조4000억원)에 이어 올해도 3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세수결손이 발생한 건 무엇보다 정부가 경기 예측에 실패한 탓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8월 ‘2024년 국세수입 예산안’을 발표하고 올해 세수를 367조3750억원으로 예상한 뒤 이 전망치를 수정하지 않았다.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지난해 11월 “거시경제 상황이 달라진 부분을 감안해 2024년도 세입전망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지만, 기재부는 “경제위기 등 특이사항이 없다”며 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심각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김윤상 차관과 대화하며 자료를 보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올해 법인세수에 영향을 미치는 지난해 하반기 경기는 정부 예상대로 ‘상저하고’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두고 작년 7월 2.4%로 전망했다 10월에는 2.2%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기재부가 작년 3분기 기업실적 자료를 반영해 법인세를 재추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이에 대해 “앞으로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경제 상황의 변동이 크지 않더라도 만약에 국회에서 필요하면 결과를 보고드리겠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더불어 경제규모 확대로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증대돼 세수오차가 확대됐다고 부연했다.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재원 대책에 관심이 쏠린다. 소매판매액 지수가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하락하는 등 내수 부진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이에 대응해야 할 정부 지출이 세수 펑크로 제약받을 수 있어서다. 기재부는 가용재원 등을 최대한 활용해 자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대신 지난해처럼 기금 여유재원 등을 이용한 ‘돌려막기’로 세수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기재부는 다만 지난해와 달리 구체적인 세수결손 대응방안을 먼저 확정하는 대신 국회 등과 협의해 추후에 대책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예산에 대한 국회 심의·확정권이 작년에 이어 또다시 무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수결손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사업 지출계획이 조정되면 국회가 당초 심의·확정한 방향과 다르게 예산 집행이 이뤄질 수 있는 탓이다.
정부의 임의적인 기금 전용·차입 등에 따른 각종 부작용 역시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정부는 각종 편법 논란을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작년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재부와 협의해 기금운용계획을 자체 변경해 우체국보험적립금으로부터 2500억원을 차입,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수입으로 추가했다. 대규모 세수결손으로 기금 간 ‘은행’ 역할을 하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예탁분이 줄어들자 우체국보험적립금을 끌어다 쓴 셈이다. 우체국보험적립금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로 조성돼 보험금 등의 지급을 위한 민간 재원의 성격을 지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가 우체국보험적립금을 세수결손 대응 목적으로 직접 활용하는 것은 적립금 목적과 상이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추경을 편성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국가재정법상 추경 사유는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으로 규정돼 세수부족 우려만으로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다”며 “구체적인 (세수결손 대응) 방안은 국회의 지적사항 등을 충분히 고려해 관계부처 협의 등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 현안보고에서 ‘외국환평형기금 운용계획을 (작년처럼) 또 변경할 생각인가’라는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의 질의에 “현재 단계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일단 외평기금은 세수결손 대응 선택지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또 “코로나19 이후 4년간 세수추계 오차가 반복된 상황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해마다 9월 세수 재추계를 정례화하고, 전문기관 참여 등을 통해 정합성을 높이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정부가 잇단 감세 조치에 따른 세수 감소효과를 감추기 위해 관행적으로 과대 추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감세에도 세수가 많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려다 보니 전망치가 계속 올라가는 것”이라며 “내년 세수가 좋지 않다고 하면 감세안 통과가 안 되다 보니 그걸 감추려고 수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정당국 안팎에서는 국세수입과 연동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5조3000억원 정도 줄고, 지방자치단체 교부세도 4조2000억원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종=이희경·김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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