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지 5년. 이제 AI는 R&D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기술이다. 보다 진보된 AI 플랫폼 보유 여부에 따라 해당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주요 지표로도 활용된다.
K-바이오는 올해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에서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융합형 AI 모델을 보유한 신테카바이오를 시작으로 파로스아이바이오 등은 AI 개발 플랫폼이나 AI로 발굴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통해 파트너사와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선택 아닌 필수' 된 AI 신약 개발
통상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15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기본적으로 조 단위 연구비용이 투입된다. 하지만 시간과 돈을 들인다고 해서 신약 개발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반면 AI를 활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어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진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신약 개발에 AI를 활용한 결과 평균 15년의 개발 기간을 7년, 3조원의 비용을 6000억원 규모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 시간은 절반 이상, 비용은 5분의1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AI를 이용한 신약 개발 첫 성공 사례는 홍콩의 인실리코메디슨이다. 2019년 AI 기반 약물 개발 플랫폼을 통해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선도물질 ‘INS018-055’를 단 46일 만에 발굴했다. 인실리코메디슨은 2023년 INS018-055로 임상 2상을 시작했다. 만약 임상 3상까지 통과한다면 AI가 치료 표적부터 약물 설계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한 최초의 ‘AI 신약’이 된다.
이후 글로벌 제약사들은 AI 신약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사노피는 인실리코메디슨과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지네틱 립과 AI 신약 개발 계약을 맺었다. 머크는 자체적인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개발해 다른 제약사에 공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AI 신약에 대한 임상 시험이 잇따라 시작됐다. 산테카바이오, 파로스아이바이오, 온코크로스, 닥터노아바이오텍 등 바이오 벤처들은 AI 기술로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있다. JW중외제약, 유한양행, 대웅제약 등 국내 대형 제약사들 또한 자체 AI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바이오 업체들과 협업하면서 AI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JPM에서도 몇 년 전부터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해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깜짝 등장해 신약 개발 비전 및 생성형 AI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 ‘바이오네모’를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바이오네모를 통해 생성형 AI를 바이오 임상 및 연구 분야로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통상 신약 개발에는 임상을 포함해 10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AI를 활용한 신약은 이 기간을 대폭 줄여준다”며 “결국 개발 비용도 낮아지고 다양한 신약 개발이 가능해지는 만큼 이제 제약에서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신테카바이오, 신규 AI 플랫폼으로 빅파마와 협력 모색
AI 신약개발 전문기업 신테카바이오는 정종선 대표가 직접 출격해 파트너링 미팅을 가졌다. 회사에 따르면 30개 이상의 글로벌 바이오사와 미팅을 통해 10여개 회사와 추후 비즈니스 사업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신테카바이오는 올해 JPM에서 융합형 AI 언어모델 플랫폼 'SaaS'를 공식 런칭하면서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텍의 큰 주목을 받았다.
SaaS는 원래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합성신약 후보물질 발굴 AI 솔루션인 ‘딥매처’와 신생항원 예측 AI 솔루션 ‘NEO-ARS’을 각 모듈별로 쪼개서 서비스하는 개념이다. 이 플랫폼은 구글 알파폴드가 예측한 단백질 구조 2억개와 알려진 모든 3차원 구조은행 데이터, 100억개 이상의 화합물 라이브러리 등 바이오 빅데이터 기반으로 질환 타깃의 유효물질이 나올 때까지 무한 반복 생성할 수 있다.
기존 제약사들이 통상 100회, 200회 돌려서 유효물질을 찾는데도 시간이 최소 1달에서 많게는 수년까지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혁신적인 차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신약개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전망이다.
신테카바이오는 새롭게 런칭한 SaaS가 그동안 발굴이 어려웠던 항체·약물접합체(ADC)와 타겟 단백질 분해(TPD) 유효물질 발굴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종선 신테카바이오 대표는 “새롭게 준비한 SaaS는 고객사가 원하는 플랫폼 서비스만 사용할 수 있게 모듈화해 AI신약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였다”며 “JPM에서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개발하는 신테카바이오에도 관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파로스아이바이오, AI 신약 파이프라인 L/O 추진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이번 행사에서 신약 파이프라인 소개와 함께 기술이전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한혜정 파로스아이바이오 최고혁신책임자(CIO) 및 미국법인 대표가 직접 투자자들을 만난다.
파로스아이바이오의 주요 AI 신약 파이프라인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치료제 'PHI-101'과 난치성 고형암 치료제 'PHI-501'이다. 두 물질 모두 AI 신약개발 플랫폼 ‘케미버스’를 통해 발견했다.
PHI-101은 FLT3 단백질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AML 치료제로 임상 1상 종료 단계에서 재발·불응성, 치료 효능과 안전성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미국혈액학회(ASH)에서 발표된 긍정적인 임상 결과는 조기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으며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PHI-501은 난치성 고형암 대상 전임상 연구 결과에서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해당 연구 결과를 미국암연구학회(AACR)와 유럽종양학회 표적항암요법 학술대회(ESMO-TAT)에서 발표한 바 있으며 올해 상반기 내 PHI-501의 임상 1상 시험계획(IND) 제출을 준비 중이다.
한혜정 파로스아이바이오 CIO는 “이번 콘퍼런스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과 다양한 협력 기회를 모색하고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며 “기술이전을 통해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과 조기 상용화를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천상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