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장우진 맞대결, 몽펠리에서 한국 4강 확정…“재밌는 경기 약속”

35세의 어깨가 아직 뜨겁다. 몽펠리에의 조명이 밝아질수록 이상수는 더 또렷해졌다. 카낙 자와의 16강은 초반부터 “닥공”의 원형을 보여줬다. 1게임 11-8, 2게임 11-8. 빠른 포핸드가 라인을 쓸고, 짧은 백드라이브가 각을 세웠다. 하지만 경기는 늘 한 번쯤 흔든다. 3게임 듀스에서 11-13으로 밀렸고, 4게임은 4-11로 순식간에 내줬다. 많은 선수가 여기서 주저앉는다. 이상수는 달랐다. 5게임 첫 랠리부터 다시 앞으로 들어가며 템포를 잡았다. 리시브를 낮게 눌러 3구를 먼저 만들고, 첫 스윙으로 코너를 찍었다. 11-7. 풀게임 혈투 끝에 3-2. 스코어만 보면 위태로웠지만, 마지막 세트의 내용은 오히려 담백했다. “초반부터 강하게 밀겠다”는 마음을 그대로 공에 실었고, 점수가 벌어지자 한 박자 더 단정해졌다. 노련함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이 승리로 ‘한솥밥’ 8강이 성사됐다. 하루 먼저 린윈루를 3-2로 꺾은 장우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기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1게임 2-11. 하지만 2게임을 12-10으로 엮어내며 리듬을 되찾았고, 4·5게임을 11-6, 11-6으로 마무리했다. 둘의 길은 다르게 시작했지만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그래서 이번 8강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기대된다. 누가 올라가든 한국 단식 4강이 확정이다. 팬 입장에서는 마음 편한 밤이지만, 동시에 설레는 밤이기도 하다. 한 코트에서 지금의 에이스와 베테랑의 ‘닥공’이 맞붙는다. 오래 버틴 선수와 지금 가장 뜨거운 선수가 서로의 속도를 시험한다. 이런 장면은 자주 오지 않는다.

이상수의 이름 앞에는 늘 ‘베테랑’이 따라붙는다. 그 단어는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가혹하다. 따뜻한 이유는 그가 한국 탁구의 시간을 오래 지탱해왔기 때문이다. 리우, 도쿄를 거치며 대표팀을 이끌었고, 지난해 종합선수권 남자 단식 우승으로 국내 정상에 다시 섰다. 가혹한 이유는 그 단어가 언제나 ‘마지막’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시즌을 끝으로 라켓을 놓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갈 생각을 밝혔다. 인천 WTT 챔피언스에서 르브룅, 린가오위안, 린윤주를 넘고 한국 선수 최초로 챔피언스 준우승을 만들었을 때, 많은 팬이 “아직 끝이 아니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몽펠리에 8강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닫으려던 문 앞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공을 세게 밀어 넣고 있다.

오늘의 경기만 놓고 보면, 이상수가 이긴 포인트는 단순했다. 낮은 리시브, 빠른 첫 스윙, 분명한 코스. 카낙 자가 길게 끄는 랠리를 원할 때 오히려 짧게 끊었고, 라인에서 버거워질 때는 한 뼘 안쪽으로 코스를 틀어 기회를 다시 만들었다. 3게임 듀스를 내준 뒤 일시적으로 흔들렸지만, 5게임 들어 첫 세 포인트를 강하게 잡으면서 주도권을 돌려받았다. 경험 많은 선수의 경기는 이런 순간에서 갈린다. “불안할 때 첫 선택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는 것. 이게 35세의 힘이었다.

장우진과의 8강은 기술보다 속도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우진은 2-11로 시작한 경기를 12-10으로 묶어 돌려세우는 데 능하다. 긴 랠리에서 갑자기 한 박자 앞당기는 타이밍, 리시브의 길이를 감추는 습관이 좋은 선수다. 이상수는 단단한 하체와 포핸드의 직선으로 그 템포를 끊어낼 수 있다. 초반 5포인트에서 누가 먼저 웃느냐가 특히 중요하다. 듀스를 가면 장우진의 가볍고 빠른 리듬이 유리할 수 있고, 초반부터 라인을 찍어 점수를 벌리면 이상수의 노련함이 빛난다. 팬으로서는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좋은 습관을 그대로 들고 나와 정면으로 부딪히면 된다. 그 자체로 좋은 경기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한국 남자 탁구가 국제 상위급 대회에서 ‘브래킷’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쪽에서는 장우진이, 다른 한쪽에서는 이상수가 자리를 만들고, 어디선가 이상수가 쌓아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후배가 틈을 파고든다. 대표팀의 시간은 이렇게 이어진다. 누군가의 라스트 댄스가, 누군가의 첫 무대와 맞닿는다. 몽펠리에의 8강 코트는 그 교차점이다. TV 앞으로 모여든 팬들이 편히 즐길 수 있는 밤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이상수의 인터뷰도 좋았다. “2-0까지는 괜찮았는데, 3게임을 듀스로 내주면서 힘이 빠졌다. 5게임에서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려 했다.” 결과론이 아니라, 실행의 언어다. “장우진을 이기려면 내가 잘 쳐야 한다”는 말도 담백했다. 상대의 약점을 찾기보다, 자신의 장점을 먼저 꺼내겠다는 뜻이다. 그게 이상수였다. 중국 톱랭커들과 맞붙던 시절에도, 그는 늘 정면을 택했다. 그래서 진 날에도 팬들이 박수쳤고, 이긴 날에는 더 큰 소리를 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선수의 자세가 이렇게 또 상대를 긴장하게 만든다.

8강 당일의 디테일을 하나만 더 보태자. 이상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서브의 첫 구질과 리시브의 첫 높이다. 이 두 가지가 낮고 분명하면, 3구가 열린다. 3구가 열리면, 그 다음은 포핸드의 일이다. 장우진에게 중요한 건 반대로 첫 두 포인트에서의 변주다. 같은 폼으로 길이만 바꾸거나, 같은 길이로 회전만 바꾸는 작은 차이가 이상수의 발을 묶을 수 있다. 결국 승부는 작은 반복의 정확도에서 갈린다. 큰 무기가 아니라, 작은 습관이 판을 바꾼다. 그걸 아는 두 사람이 한 코트에 선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35세의 베테랑이 “닥공은 녹슬지 않는다”며 끝까지 질주하는 모습, 그 옆에서 대표팀의 간판이 웃으며 맞붙는 장면. 결과가 어찌 되든, 이건 한국 탁구에 남는 밤이다. 이상수의 라켓이 마지막을 향해 가는 길이라면, 그 마지막도 역시 그의 방식으로 끝나면 좋겠다. 낮게, 빠르게, 분명하게. 팬들은 그 한 문장의 탁구를 오래 사랑해왔다. 그리고 그 문장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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